“전염병 안고 외국 나가는 사람 제정신인가”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5.06.0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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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식 부재와 우리 정부 관리 부실에 중국·홍콩 불만 폭발

6월1일 중국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유언비어 하나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광둥(廣東)성 후이저우(惠州) 시 중앙인민병원 의료진이 보건 당국에 제비뽑기를 요구했다는 소식이다. 결혼하지 않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5월26일 홍콩을 거쳐 후이저우로 가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한국인 김 아무개씨(44)를 돌볼 사람을 제비뽑기로 선발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유언비어가 빠르게 퍼지자 광둥성 보건 당국은 즉각 부인했다.

중국 언론도 한 간호사와의 인터뷰를 전하며 “의료진이 처음에는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사명감을 갖고 진료에 매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중국 네티즌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의사와 간호사라고 해서 인간 말종 같은 방쯔(棒子:중국인이 한국인을 비하하는 욕)를 치료할 책임은 없다” “당장 한국 정부에 그 환자를 데려가도록 요구해야 한다” 등 김씨와 한국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심지어 “중국인 가운데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오면 한국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인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입원 치료 중인 중국 광둥성 후이저우 시 중앙인민병원 의료진이 치료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Imaginechina연합
중국인 79% “한국인에 부정적 이미지”

중국인들이 이렇듯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과거 사스(SARS) 공포를 처절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스는 2002년 광둥성에서 처음 발생해 홍콩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중국과 홍콩에서만 무려 640여 명이 목숨을 잃고 수천 명이 감염돼 대륙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신종 조류인플루엔자(AI)도 지금까지 중국에서만 12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런 트라우마 탓에 지난해 10월 중국 정부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프리카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대규모 의료진을 파견했을 때, 중국 네티즌은 “파견하는 인원 수를 줄여라”고 요구했다.

이런 중국인들의 반응을 마냥 타박할 수 없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5월30일 홍콩 보건 당국은 김씨와 같은 아시아나항공 OZ723편에 앉았던 한국인 여성 2명이 격리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같은 항공기에 탑승한 한국인 3명을 포함한 승객 18명을 사이쿵 휴양소에 격리했는데, 이 가운데 2명의 한국 여성이 격리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 뉴스를 접한 중국 네티즌들은 분노했다. “한국인이 뭐라고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는가”라는 비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홍콩 당국의 발표가 나온 후 홍콩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나서 여성들을 설득해 동의를 얻어냈다. 6월1일 코윙만(高永文) 홍콩 식품위생국장은 “애초 한국인 여성 2명이 격리를 거부한 것은 영어로 이뤄진 의사소통 과정에서 생긴 오해 때문인 것 같다”고 밝혔다. 홍콩 당국자의 설명에도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중국과 홍콩에서는 치명성 전염병에 걸린 자국민과 외국인을 본인 동의 없이 강제로 격리해 치료토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에서는 대상자가 격리를 거부하면 5000홍콩달러(약 72만원)의 벌금과 6개월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6월1일에는 김씨와 같은 OZ723편에 앉아 격리 대상이 된 또 다른 한국인 남성이 홍콩에 재입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남성은 홍콩 당국이 추적 조사하기 전인 5월29일, 광저우(廣州)에서 여객기를 이용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홍콩 정부는 이 남성의 정보와 행적을 한국 정부에 통보했으나, 격리되지 않은 채 홍콩을 다시 방문했다. 홍콩 당국은 이 남성의 입국을 확인하고 즉시 사이쿵 휴양소로 격리시켰다. 이에 따라 6월4일 현재 홍콩 내 격리자 수는 한국인 6명을 포함해 19명으로 늘었다.

일부 한국인의 시민의식 부재와 우리 정부의 관리 부실에 대한 중국인과 홍콩인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이는 홍콩 봉황망(鳳凰網)이 중국과 홍콩 네티즌 12만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6월2일까지 응답자 중 93.37%가 “자신의 질병 상태를 숨기고 중국에 입국한 한국인의 태도는 매우 무책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의 대응에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82.81%는 “한국의 관리·감독에 중대한 실수가 있었으므로 마땅한 해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인 감염자가 중국 방문을 강행한 것, 그리고 감염 환자와 같은 비행기에 동석한 한국인들이 격리를 거부한 행동에 대해 79.11%는 “한국인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주중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 네티즌이 한국을 비난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강도도 높아졌다”며 “사태가 별 탈 없이 넘어가면 진정되겠지만 중국인 감염자가 발생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5월 말부터 중국인들 입에 오르내린 ‘방쯔’는 본래 ‘몽둥이’라는 뜻이다. 일각에선 이 욕의 시초를 수양제와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패배했을 때로 지목한다. 당시 고구려군은 몽둥이를 들고 수·당의 패전병을 추격했다. 그 후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당군은 대략 20만명의 고구려인들을 당으로 끌고 갔다. 당군은 과거 겪었던 일에 대한 앙갚음으로 몽둥이질을 하며 고구려인들을 데려갔다. 중국에서 고구려는 줄곧 고려로 불려왔기에 ‘몽둥이로 때려야 할 고려 놈’의 뜻으로 ‘가오리방쯔(高麗棒子)’가 욕으로 불리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청(靑)대부터 가오리방쯔가 보편화된 역사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병자호란 뒤 청군은 조선인 포로 60만명을 끌고 갔다. 이들 중 일부가 반항하거나 말썽을 피우자, 상투 튼 조선인의 머리 모양을 비하해 방쯔라 부르게 됐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조선인 포로는 만주족이나 한족에게 노예나 다름없었다. 전쟁 포로로 붙잡혀가 종살이를 해야 했던 우리 선조들의 모진 고난을 생각하면, 가오리방쯔는 우리 입장에서 한이 서린 욕이다.

메르스 나비효과, 관광 산업 치명타

중국은 이미 우리 경제와 생활 속에서 필수불가결의 나라다. 우리나라와 중국·홍콩·타이완 등 중화권 국가 간의 수출입 거래는 전체 무역의 절반에 달한다. 지난해 610만명의 중국 관광객이 한국을 찾아 우리의 관광 및 유통 산업을 떠받쳤다. 더 이상 중국인을 무시해서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실제 메르스가 불러온 나비효과가 우리 관광 산업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통계에 따르면, 6월1일까지 한국 관광 상품 예약을 취소한 중국 관광객은 2000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타이완 관광객 500명도 한국 여행을 포기했다. 이는 하나투어·모두투어 등 대형 여행사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다. 중국인 전담 여행사가 한국 내 190여 개에 이르는 현실을 감안할 때 6월 예약 취소율은 15%(7만명 안팎)에 달할 전망이다. 메르스 사망자가 계속 늘어난다면 중국인이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그래서 한국을 험담하는 중국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무리 회사 일이 중요해도 타인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전염병을 안고 외국을 찾는 사람이 정상인가”라는 한 중국인 네티즌의 반문을 가슴깊이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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