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문 열고 들어가니 짝퉁 부품 ‘산더미’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5.2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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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현대·기아차 가짜 부품 시장 2억2000만 달러 달해

지난 1월 유명 수입차 상표가 붙은 이른바 ‘짝퉁’(모조품) 바퀴 휠을 중국 등지에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한 업자가 구속 기소됐다. 그는 1세트(4개)에 600만?700만원인 정품 가격의 10분의 1 수준인 60만?70만원에 짝퉁 휠을 팔다 덜미가 잡혔다. 문제는 이런 짝퉁 휠은 안전성을 인증받지 않아 운행 중에 자칫하면 휠이 바퀴 밖으로 밀려나거나 휠 자체가 깨지는 등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유럽 등과 달리 휠 부품 자체에 대한 안전 기준이 없다. 현재로서는 결함이 있는 짝퉁 휠을 만들더라도 상표법 위반 말고는 처벌할 근거가 없는 셈이다.

최근 중국 등지에서 만들어진 짝퉁 자동차 부품 등이 국내에 유입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짝퉁 부품은 중국 동부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있다. 필터·패드 같은 소모품부터 내비게이션·에어백 등 안전 기능 부품까지 종류도 광범위하다. 이들 제품은 순정 부품 대비 30~50% 저렴한 가격에 중국 전역에 유통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주요 항구도시와 국경도시를 경유해 해외로 수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짝퉁 부품’은 검증되지 않은 제조사가 저가의 재료와 모조품으로 ‘순정 부품’의 외형을 똑같이 본떠 만든 것을 말한다. 불량 부품이 ‘짝퉁’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순정품의 탈을 쓰고 소비자들에게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완성차 초기 설계 단계에서 함께 만들어져 자동차에 최적화되도록 각종 시험을 거친 순정 부품과 태생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품질이 떨어지고 내구성이 약할 수밖에 없다. 짝퉁 부품을 사용하면 부품의 질을 보장받을 수 없으며, 운행 시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 소비자들 역시 이러한 짝퉁 부품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2억원 상당의 현대·기아차 짝퉁 부품이 부산항을 통해 들어오다 적발된 바 있다. 현대모비스 측은 중국 내 현대·기아차의 짝퉁 부품 시장이 2억20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울산해양경찰서 관계자들이 압수한 중국산 짝퉁 자동차 부품 ‘타이밍 벨트’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아파트·농가 개조해 짝퉁 제조

‘디자인 유사품’도 짝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디자인 유사품이란 순정 부품의 외형 디자인을 그대로 베껴 중국 현지 업체들이 자체 상표를 부착해 판매하는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 상표권을 침해하는 ‘짝퉁 부품’ 단속이 확대됨에 따라 불법 제조사들이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이 같은 방법으로 유사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주로 아파트나 농가를 공장으로 개조한 곳에서 제조된 복제품이다. 이들 제품은 모조품과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순정품에 비해 저렴한 가격과 유사한 디자인을 앞세워 소비자들을 현혹하지만, 품질과 기능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조품이나 디자인 유사품은 자동차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가짜 삼성 갤럭시 및 애플 아이폰 부품을 국내에 판매·유통하고 미국에 밀수출한 일당이 검거됐다. 이들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사설 스마트폰 수리점을 운영하면서 2011년 9월부터 2015년 3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중국산 가짜 스마트폰 부품 2만3000여 점(정품 시가 51억원 상당)을 국내에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짝퉁 제품으로 인해 소비자가 피해를 받는 것에 비례해 국내 산업계 전반의 경쟁력도 덩달아 악화된다. 유사품 사용으로 인한 고장은 원제조사의 브랜드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유사품은 제품 개발 및 마케팅 등에 소요된 원제조사의 투자비용과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세를 이어가는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에 타격을 입힌다.

중국에서는 유사품에 대한 법적 기준이 현재까지 명확히 수립되지 않아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일차적으로는 불법 유통 경로를 통해 시중에 판매되는 유사품에 대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최근에는 이런 짝퉁 부품 근절을 위해 해당 기업이 발 벗고 나서는 사례도 생겨났다.

현대모비스, 공안과 합동 단속

현대모비스의 경우 모조품 유통 근절을 위해 중국 당국과 합동 조사를 벌여 지난해 총 86개의 짝퉁 부품 업체를 적발했다. 불법 모조품 생산 및 유통으로 연간 4000만 달러의 매상을 올리는 업체들이다. 현대모비스는 이번 적발을 통해 620만 달러에 달하는 모조품을 압수해 전량 폐기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지난해 단속했던 중국 한 부품업체의 경우 겉보기엔 평범한 부품 판매점이지만 내부에 숨겨진 비밀 문을 통과하니 거대한 창고가 드러났다”며 “와이퍼·오일필터 등 소모품부터 범퍼와 라디에이터 그릴까지 다양한 자동차 부품이 창고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고 말했다. 빼곡히 쌓인 부품의 포장에는 모두 현대모비스 순정 부품 스티커가 부착돼 있지만 이는 모두 중국에서 자체 제작한 ‘짝퉁 부품’이었다고 한다. 현대모비스는 소비자들의 잠재적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올해도 각 현지법인 및 중국 공안국과 함께 단속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해외 수출 거점으로 확인된 베이징·상하이·광저우·우루무치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집중 단속을 매월 실시할 방침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지속적인 단속에도 짝퉁 부품과 유사품의 유통을 완벽히 차단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시세보다 턱없이 싼 부품은 조심하고, 순정 부품을 증명하는 입체 홀로그램 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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