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언제나 부활하고 싶은 그룹이다
  • 이은주│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5.05.2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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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비바람 맞으며 꿋꿋이 버틴 록음악계의 전설 30년

“30년이 되고 보니 ‘부활’이라는 두 글자가 얼마나 거룩한 이름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돼요. 척박한 가요 시장에서 30년 동안 노래를 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영광이죠. 그동안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 만큼, 부활은 이제 나누고 돌려줘야 할 이름이라고 생각해요.”(김태원)

30년 전 ‘디 엔드’(The End)라는 팀으로 활동하던 김태원이 가수 김종서를 보컬로 영입하고 팀 이름을 ‘부활’로 바꾸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부활’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985년 7월3일 결성한 ‘부활’은 그 이름처럼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록그룹으로는 드물게 30년간 꿋꿋이 버텨왔다. 부활은 그동안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 <마지막 콘서트>(회상3) <사랑할수록> <네버 엔딩 스토리> 등 1980~2000년대 대중가요사에 한 획을 긋는 명곡들을 탄생시키며 한국 록음악계의 전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5월16일 그룹 결성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준비 중인 ‘부활’. 왼쪽부터 서재혁(베이스), 채제민(드럼), 김동명(보컬), 김태원(기타·리더). ⓒ 부활엔터테인먼트 제공
5월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합주실에서 만난 그룹 부활은 5월16일 열리는 30주년 기념 콘서트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리더인 기타리스트 김태원을 비롯해 채제민(드럼), 서재혁(베이스)과 최근 새로 영입한 보컬 김동명은 매일 새벽 2시까지 연습을 하면서 부활의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채제민은 1998년, 서재혁은 1999년부터 ‘부활’과 함께했다.

해체 위기 속에서도 ‘부활’이 30년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은 자신들의 음악을 사랑해준 팬들에게 공을 돌렸다. 김태원은 “바람과 나무처럼, 바다와 해변처럼 가수는 관객이 있어야 노래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위로를 받는다”며 “서로가 서로를 원할 때 생기는 에너지와 조화가 30년 동안 음악을 해온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부활’도 굴곡진 시간을 보냈다. 김태원은 지난 30년을 “우리는 늘 초반에 확 피다가 지는 세월을 반복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1, 2집이 히트했던) 초반 10년도 처음에 잠깐 확 꽃이 폈지만 나머지 7년은 힘들었다. 그다음 10년도 처음 2년 정도 만개하다 바로 졌다. 마치 거리의 젖은 낙엽 같았다”며 “제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한 5년 정도는 시들지 않는 꽃처럼 꽤 오래갔다”고 말한 후 웃었다.   밝음 뒤의 어두움은 더 짙었다. 8집 앨범 타이틀곡 <네버 엔딩 스토리>가 히트를 치면서 다시 부활했지만 록밴드가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1년에 행사 스케줄이 고작 두 번일 때도 있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팀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음악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다. 김태원은 “음악에 갇혀 있고 고립됐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검은색 선글라스 뒤로 진정성이 느껴졌다.

김재기 죽음 이후 음악 색깔 변화 

그동안 김태원의 삶에도 만만찮은 굴곡이 있었다. 1993년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3집 앨범 타이틀곡 <사랑할수록>을 부른 보컬 김재기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성격은 180도 바뀌었다. 그는 “내가 죽을 뻔하거나 누군가 죽는 충격을 경험하면 그렇게 된다. 1980년대에는 휘어지지 않는 철근처럼 고집이 강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부드러운 것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980년대 백두산·시나위 등과 함께 국내에 헤비메탈 유행을 주도하던 ‘부활’이 3집 이후 다소 부드러운 록발라드적인 성향으로 변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김태원은 “흔히들 록음악은 강한 저항을 떠올리지만 그것이 꼭 피켓이나 플래카드를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부드러움으로도 저항의 정신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원의 큰형과 작은형은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그의 집 턴테이블에서는 늘 LP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는 ‘레드 제플린’이 누군지 모르던 초등학생 때부터 록음악을 듣고 자연스럽게 기타를 잡았다. 덕분에 ‘부활’의 명곡 대다수가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김태원은 “따로 작곡을 배우지 않았지만 가슴 아팠던 기억을 떠올리면 가사가 되고 노래가 나왔다”며 “<네버 엔딩 스토리>는 꿈에서 본 내용을 가사로 썼고 멜로디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되면 떠오른다. 작곡은 괴롭지만 여전히 ‘할 만한 게임’”이라고 밝혔다.

부활은 올 하반기 14집 파트1을 내고 내년에는 파트2를 발매해 30주년 앨범을 완성할 계획이다. 이들은 올해 50주년을 맞은 ‘롤링스톤스’처럼 롱런하는 밴드가 되는 것이 꿈이다.

“밴드가 존재하지 않으면 대중음악은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봐요. 저도 기타 솔리스트 레이프 가렛이 아니라 ‘비틀스’나 ‘레드 제플린’ 같은 밴드를 보고 음악을 연구했으니까요. 10년 후면 저도 환갑이 되는데 어느 상황에서건 음악을 하고 있을 겁니다. ‘부활’은 언제나 부활하고 싶은 그룹이니까요.”(김태원)

 


‘부활’의 리더 김태원 ⓒ 부활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부활’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보컬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보컬이 자주 바뀌는 것이 팀 색깔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있지만 멤버들은 “보컬이 들어오면 싸우고 함께 공부하다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재미있다”고 입을 모은다. 베이스 서재혁은 “처음에는 보컬이 바뀌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30년이 되니까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록음악의 특성상 부활의 역대 보컬에는 20~30대가 많았다.

‘부활’의 1대 보컬은 가수 김종서다. 이태윤(베이스)과 ‘디 엔드’라는 팀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김태원은 1985년 ‘검은 진주’라는 팀에 있던 김종서를 보컬로 영입하면서 그해 7월 ‘부활’이라는 팀을 결성한다. 하지만 이듬해 김종서가 음악적인 이견을 보이면서 팀을 탈퇴해 시나위로 옮기게 되고 이승철을 2대 보컬로 세우게 된다. 처음에는 이승철의 곱상한 외모 때문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의 음색을 좋아하던 김태원의 강력 추천으로 합류했고 1986년 10월 첫 번째 앨범 <Rock Will Never Die>를 발매한다.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30만장이 팔렸다. 이듬해 11월 부활은 <마지막 콘서트>(회상3)가 수록된 2집 앨범을 냈지만 김태원이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하락세를 걸었다. 이승철도 솔로로 활동하며 팀을 떠났다.

그로부터 무려 6년 후에 발표된 3집 <기억 상실>은 지금까지도 김태원이 가장 애착을 갖는 앨범으로 꼽는다. 앨범에 수록된 <흑백영화> 역시 그가 가장 아끼는 곡 중 하나다. 3대 보컬 김재기가 음반 제작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했지만 그가 단 한 번 불렀던 <사랑할수록>이 녹음되어 있고 이 곡은 ‘부활’의 대표적인 타이틀곡이 된다. <사랑할수록>은 1993년 SBS <TV가요 20>과 KBS <가요 톱10>에서 각각 5주 연속,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큰 히트를 쳤고 10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김재기의 동생인 김재희가 4대 보컬로 합류해 4집 앨범 <잡념에 관하여>(1995년)를 냈고 1997년 5대 보컬인 박완규와 함께 낸 5집 앨범 타이틀곡 <론리 나이트>가 인기를 끌었지만 그 이후 상당 시간 정체기를 보낸다. 6대 보컬 김기연을 거쳐 7대 보컬로 미성을 지닌 이성욱이 발탁됐다. 2000년 발매된 15주년 앨범인 7집 <Color>에서는 김태원을 제외한 모든 구성원이 교체됐다.

8집 <새, 벽>은 15년 만에 이승철과 재결합해 녹음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네버 엔딩 스토리>는 <SBS 인기가요>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를 모았지만 두 사람은 이 앨범을 끝으로 다시 결별한다. 김태원은 아직도 종종 제기되는 이승철과의 불화설에 대해 ‘아름다운 관계’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승철은 내가 발굴한 사람이고 그 역시 ‘부활’에서 한 업적이 많은데 서로 아쉬우면 안 된다”면서도 “내가 속이 좁아서인지는 몰라도 그가 불편해할까 봐 30주년 기념 콘서트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활은 2003년 7대 보컬 정단과 함께 9집 앨범을 발표했고 2005년 김태원이 이승철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지목한 9대 보컬 정동하가 10집 앨범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지난해 말 정동하가 탈퇴한 후 발탁된 10대 보컬은 신인 가수 김동명이다. 고등학교 때 밴드 활동을 한 이력이 있는 김동명은 “앞서 거쳐간 선배들이 부담이 되지만 저도 저만의 색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총 10명의 보컬과 함께한 ‘부활’. 만일 김태원이 에릭 클랩튼처럼 노래를 좀 더 잘했다면 그룹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김태원은 “내가 노래를 잘했다면 이승철이나 고 김재기, 정동하는 지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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