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구멍에서 시작해 구멍으로 끝나는 거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5.1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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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펴내 글쓰기 과정 보여준 소설가 한창훈

“주인공이 사회 비판과 무관심의 대상이면 독자들이 별로 안 내켜 한다. 예전에 KBS <아침마당>에서 출연자가 어렸을 때 헤어진 가족을 찾는 것을 수요일마다 했다. 진행을 맡고 있던 이금희씨를 어쩌다 만난 자리에서 그 프로그램 관련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말하기를 ‘재수 없게 아침부터 눈물바람이다’며 불만을 표시한 시청자가 제법 있었단다. 얼마나 인생이 평안하고 즐거우면 타인의 아픔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왜 아침에는 울어서는 안 되는가 말이다. 내가 쓰는 이유는 그들이 애써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당대 이야기로 그런 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한창훈 작가(52)의 글쓰기가 ‘어디에서 출항해 어디에 닻을 내리는지’ 그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산문집이 나왔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처럼 그가 펴낸 것이 아니고 누가 한 작가를 관찰한 것처럼 소개한 이유는, 왜 쓰는지 물어본 데 대한 그의 답이 이랬기 때문이다.

“왜 쓰는가,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다. 옳기는 하겠지만 좋지는 않다. 왜 안 좋은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니까. 왜 사는가를 물어오면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봐야 하니까. 그렇게 하면 대부분 부끄럽고 쪽팔리니까.”

ⓒ 김무환 제공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만난 모든 이가 스승

한 작가는 ‘바다에서 밥을 꺼내 먹고, 바다를 마시고, 바다에서 살다 그만, 반쯤 바다가 되어버린 바다 사나이’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작품을 두고 바다와 섬, 항구 사람들의 질펀한 삶의 애환을 빼면 설명하기 어렵듯이, 이번 산문집 역시 ‘한창훈 문학’의 시원인 거문도와 여수, 부산 등지에서 작가가 고락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친척, 그리고 선후배 문인들과의 진하고 짠한 추억을 생생하게 풀어낸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장소는 한 작가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더러는 소설을 쓰지 않으면 못 배길 정도로 정서를 나누었던 창작의 원천이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만난 모든 이가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이자 조연이며, 그런 점에서 그들은 글쓰기의 스승이자 친구인 셈이다.

“친구도 없고 장난감도 변변찮은 시골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논다. 무릎이 까지면 자꾸 만져보고 딱지가 앉으면 그 딱지를 뜯어내며 혼자 논다. 시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한 작가에게 창작이란 곧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글쓰기임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섬에서 나고 자라 외진 곳을 떠돌며 변방의 말을 먼저 익혔고, 변방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글을 써왔다. 이는 도회의 고독한 심리를 서술하거나 자극적인 상상력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모진 현실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으로, 때로는 해학적이고 육감적으로, 때로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문체로 밀고 나간 글쓰기임을 보여준다.

“늙은 부부가 겨울 밤바다 한가운데서 알몸으로 껴안고 상대에게 체온 나눠주고 있는 모습을 나는 잠시 그려보았다. 부부의 애정보다도 더 깊은 차원의 그 무엇이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겨울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얼어붙은 남편을 위해 옷을 벗는 그들은 하나가 없으면 남은 하나도 곧바로 소멸해버릴 그런 존재였다.”

“글쓰기는 삶을 궁리하는 방법이었다”

그의 글쓰기의 원동력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글쓰기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중심만, 권력만, 웃는 것만, 달콤한 것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은 데서 한 작가의 글쓰기는 출발한다.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욕망과 만나고,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웬만한 책임은 피할 수 있는 소설이 대부분이다. 대중 속의 고독도 사람의 일이라 작가가 그곳으로 손을 뻗지 않으면 안 되지만, 너무 많이들 어두운 카페로 걸어 들어가버렸다. 개인의 우울이 사회의 비참보다 더 크고 강렬해져버린 것. 이른바 문학적이다. 그러나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정식으로 문학을 배운 적 없는 한 작가가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공장을 다니던 20대 중반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말로 써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때 스승이 일러준 백석의 <여승>이라는 한 편의 시는 그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내가 선생께 배운 것은 글 쓰는 기교가 아니라 삶을 궁리하는 방법이었다”고 돌아보는 한 작가.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들이 결국은 삶을 궁리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한 작가는 직접 낚시를 해서 회를 떠먹으며 “활어회는 우리나라에만 있단다. 서로 믿지를 못해 살아 있는 놈에 칼 대는 것을 봐야 한다나. 하지만 회는 적당한 시간 동안 냉장된 게 맛있다. 죽음의 시간이 주는 맛이다”고 말한다. 그런 그라서 인생에 대한 성찰이 엿보이는 한 대목도 육감적이고 ‘비문학적’이다. 

“아비의 구멍을 통해 들어간 반쪽이 나머지 반쪽을 만나 습하고 따뜻한 동굴에서 여물었다가 어미의 구멍을 통해 세상에 나왔고, 평생 구멍을 통해 흘리고 먹고 말하고 듣고 풀고 빨고 짜고 쏟고 싸고 끼고 누는 행위를 하다가 마침내 땅에 구멍 하나 파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더란 말인가. 인생 자체가 구멍에서 시작해 구멍으로 끝나는 거였다.”

그런 한 작가에 대한 소개도 재미있다. ‘남쪽 바다 먼 섬에서 태어났다. 사람을 볼 때 51점만 되면 100점 주자, 목마른 자에게는 물을 줘야지 꿀 주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진심보다 태도다, 미워할 것은 끝까지 미워하자, 땅은 원래 사람 것이 아니니 죽을 때까지 단 한 평도 소유하지 않는다, 따위를 생활신조로 갖고 있다. 지금도 그 섬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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