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청소 인정하고 진실한 화해 힘써라”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5.05.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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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 아르메니아 과거사 전쟁…EU와 교황 지지 이끌어내

할리우드의 ‘가십 여왕’인 킴 카다시안의 뿌리는 아르메니아에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카다시안을 수치스러워했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상 카메라 앞에서 엉덩이를 노출하고 결혼 72일 만에 초고속 이혼을 하는 카다시안의 행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미국 내 아르메니아계 이민자 사회 내에서도 카다시안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컸다.

지난 4월 카다시안의 가족이 아르메니아를 방문할 때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 사건 100주기가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4월24일, 독일과 연맹 관계에 있던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아르메니아인들을 강제로 추방하고 살해했다. 그 결과 최대 1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50만명은 미국·러시아 등지로 탈출했다.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100주기인 4월24일을 맞아 주민들이 당시 사진을 보며 집회를 열고 있다. ⓒ AP 연합
교황 “집단 학살” 지적에 터키 대통령 “헛소리”

1차 대전 이후 건국된 터키는 오스만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면서도 1915년 사건 규명에 소극적이었다. 관련된 내용은 역사교과서에서 삭제되었고 정치권은 침묵했다. 터키에서 변화가 감지되지 않자 아르메니아인들은 국제적인 로비에 나섰다. 특히 1915년 사건이 우발적인 ‘학살’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자행된 ‘인종 청소’였음을 알리는 데 주력해왔다. 그 결과 1985년에는 유엔, 1987년에는 유럽의회가 오스만 제국이 저지른 범행을 ‘인종 청소’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터키는 ‘인종 청소’를 인정하지 않았다. 계획성이 있었다고 시인할 경우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그들의 희망을 참사 100주기를 맞이하는 올해에 걸었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보니 아르메니아 입장에서는 카다시안의 방문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덕분에 지난 4월8일 리얼리티 쇼 촬영차 모국을 방문한 카다시안 일가는 국빈급 대접을 받았다. 호비크 아브라하마얀 아르메니아 총리는 이들과 만나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환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카다시안의 방문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이어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 프란치스코가 아르메니아를 찾은 것이다. 4월12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를 집전하면서 현직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1915년의 참사를 ‘20세기에 자행된 첫 번째 인종 청소(제노사이드)’라고 못 박았다. 아르메니아 인종 청소 사건은 이렇게 종교와 속세, 양쪽 모두를 환기시키는 데 성공했고 터키의 과거사 문제는 순식간에 국제적 현안으로 떠올랐다.

4월24일만 지나면 국제사회의 관심이 사그라질 것이라고 판단한 터키 정치권의 반격은 거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교황의 발언을 “헛소리”라고 일축하며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고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터키의 유럽연합(EU)장관인 볼칸 보즈키르는 한 술 더 떠서 “교황의 발언은 아르메니아계 로비스트들이 아르헨티나의 언론을 장악한 탓”이라는 음모론을 펼쳤다.

그러나 도화선은 아랑곳 않고 계속 타들어갔다. 4월13일 EU 대외관계청(EEAS)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관계 정상화를 촉구한 데 이어 15일에는 EU 의회가 “터키는 아르메니아인 인종 청소를 인정하고 진실한 화해에 힘쓰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지기 전부터 “표결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찌감치 귀를 막은 터였다.

터키계 인구가 많은 독일에서도 뜻밖의 지원이 이뤄졌다. 독일 연방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는 4월23일 저녁 베를린 대성당 연설에서 “아르메니아인의 운명은 20세기를 끔찍하게 만든 대량 학살, 인종 청소, 추방, 인종 학살의 한 예”라고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가우크 대통령은 터키를 도덕적으로 추궁하는 대신 “1차 대전 당시 독일 제국이 오스만 제국과 연합했기 때문에 독일도 아르메니아 인종 청소의 공범”이라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그는 한 발짝 더 나가 “독일인은 아르메니아인 인종 학살에 대한 공동 책임 내지 공범이라는 과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며 독일 사회에 행동을 촉구했다.

그러나 가우크가 내민 손을 에르도안은 매몰차게 뿌리쳤다. 100주기를 맞이한 24일 당일, 터키 정부는 “우리 민족은 가우크의 발언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터키 주요 언론들도 “반성은 필요하지만 ‘인종 청소’라는 표현은 과하다” “잇따른 논란은 터키를 흔들어놓으려는 서구의 음모”라며 대결 구도에 불을 붙였다.

아르메니아계의 지속적 로비로 과거사 환기

터키와 비교해 약소국인 아르메니아가 얻어낸 과거사 재조명은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다. 예컨대 로비의 고장인 미국에서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은 미국 내 여러 민족들의 로비 단체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 꼽힌다. 그 영향력은 이스라엘 로비에 비견될 정도다. ‘미국·아르메니아인 회의’와 ‘미국·아르메니아 민족위원회’ 등은 미국 대통령에게 압박을 행사한다. 아르메니아를 위한 경제적 원조를 증액하고 터키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지원은 삭감하도록 요구하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실제로 1992년부터 2010년 사이에 미국의 아르메니아 원조 총액은 20억 달러에 달하는데 1인당 원조액으로 보면 구(舊)소련 국가 중 가장 많은 액수다.

아르메니아인들의 로비는 원조보다는 학살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 외교 전문지인 ‘포린서비스저널’의 션 도만 편집국장은 “아르메니아계 로비의 최대 목적은 미국이 아르메니아 학살을 승인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공문서 중 일부는 1915년부터 1923년에 걸쳐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일어난 비극을 ‘대량 학살’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아르메니아계의 끈질긴 설득 작업은 조금씩 빛을 발했다. 실제로 1981년 4월22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대량 학살’이라고 표현했다. 2010년 5월4일 미국 상원외교위원회 역시 ‘대량 학살’이라고 규정했다. 아르메니아계의 100년에 가까운 ‘진지전’의 결과물은 미국 50개 주 가운데 약 41개 주가 1915년부터 벌어진 참극을 ‘대량 학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증명되고 있다. 터키가 “바티칸에 로비했다”며 반발한 이유를 짐작하게 해준다.

아르메니아 과거사 논쟁은 터키와 EU의 갈등을 낳았다. EU 가입 희망 국가를 담당하는 요한네스 한 EU 확대담당 집행위원은 “터키 정부가 반(反)유럽, 반(反)서구적 견해의 씨앗을 뿌리고 있으며, 이는 장차 터키의 EU 가입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터키는 1963년부터 유럽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자 노력해왔다. 아르메니아의 집요한 노력이 터키의 염원까지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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