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산업 전 간부 검찰 조사 중 ‘의문의 자살’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5.0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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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기술 김천 신사옥 관련 비리로 조사받아…대림산업 측 “회사와 연관 없다”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어 파문이 커지는 가운데, 또다시 검찰 조사를 받던 대기업 인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림산업의 전직 간부인 박 아무개씨(58)는 지난 4월20일 인천에 위치한 자택 인근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박씨는 최근 한국전력기술 간부들에게 골프 접대 등 로비를 펼쳤다는 의혹을 사 검찰의 조사를 받다가 4월20일 신변을 비관하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했다. 회사를 그만둔 상태에서 검찰 조사까지 받게 된 것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듯하다”고 밝혔다.

한전기술, 자사 직원 비리 혐의로 경찰에 고발

박씨가 골프 접대 로비 의혹에 휘말리게 된 것은 대림산업이 한국전력기술(한전기술)의 김천 신사옥 시공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대림산업은 2012년 한전기술의 김천 신사옥 시공업체로 선정됐다. 박씨는 대림산업에서 명예퇴직한 후 2013년 초부터 계약전문직 부장으로 근무했는데 이 시기는 대림산업이 김천 신사옥 공사를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당시 박씨는 현장에 파견돼 전기 시공 관련 업무를 맡았다. 자연스레 한전기술에서 파견된 직원들과 잦은 교류를 했고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 됐다. 

박씨의 자살은 한전기술 직원들의 비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박씨가 죽음에 이른 것은 한전기술이 하도급업체에서 수시로 골프 접대를 받는 등 비리 의혹이 있는 자사 직원을 지난해 6월께 경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한전기술의 한 관계자는 “김천 신사옥 공사에 파견된 부장급 직원 황 아무개씨가 하도급 업체 등으로 부터 2013년 4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세 차례 일본 골프 여행 접대를 받은 혐의가 포착돼 2014년 6월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임 조치했다. 또 다른 부장급 직원 전 아무개씨도 골프 접대로 감봉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고 밝혔다.

한전기술은 골프 접대를 받은 직원을 곧바로 경찰에 고발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해임 조치를 받은 직원이 과도한 처분이라며 회사 측에 항의를 하자, 한전기술이 해당 직원을 경찰에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전기술 측 관계자는 “황씨의 경우 지속적으로 골프 여행을 다니는 등 행태로 봐서 여죄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경찰에 고발했던 것”이라며 “내부 징계위원회는 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공권력에 의해 파헤쳐야 한다고 봤다”고 반박했다.

경찰은 한전기술 고발 건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골프 접대 의혹에는 한전기술 직원뿐만 아니라 시공사인 대림산업 관계자와 하청업체 대표까지 두루 연루돼 있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경찰이 비리 혐의로 검찰에 넘긴 사람이 9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검찰은 대림산업 관계자가 하청업체 측의 청탁을 받고 한전기술에 로비를 펼쳤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박씨는 올해 초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한전기술 직원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대림산업으로 향하자 박씨는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10월30일 경북 김천혁신도시로 이전하는 한국전력기술이 김천시 용전리에서 신사옥 착공식을 가졌다. ⓒ 뉴시스
대림산업 측 “회사와 상관없다”

하지만 대림산업 측은 박씨의 로비 의혹을 부인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박씨가) 조사를 받은 것은 한전기술 직원들과 개인적 친분으로 얽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회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박씨는 수주 관련 임원이 아닌 전기 시공 업무를 맡은 계약전문직이었다. 시공 담당자가 굳이 골프 접대까지 하며 발주처에 로비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이 있다. 2014년 6월 골프 접대 의혹을 산 한전기술 직원들이 징계를 받았을 당시 박씨 또한 이들과 함께 골프 여행을 다닌 사실이 드러나 대림산업을 그만뒀다. 곧이어 그는 계열사인 대림아이앤에스(I&S)로 옮겨 근무했다. 한전기술은 비리 의혹에 연루된 직원을 자르고 경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는데, 대림산업은 같은 비리 의혹을 산 직원을 곧바로 다른 계열사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림산업 측은 “검찰 수사에서 누가 로비를 했는지 밝혀진 게 없다”고 주장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박씨는 골프 접대 문제에 연루돼 대림산업을 그만두게 됐는데 만약 로비를 했다면 반대로 무언가 (보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계열사에서 단 7개월 근무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검찰, 한전기술 김천 신사옥 비리 수사 

자사 직원 비리의 싹을 자르겠다는 한전기술의 시도는 엉뚱하게도 다른 회사 직원의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한전기술 관계자는 “회사로서는 이미 매듭지은 일을 더 키우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경찰에 고발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2013년에도 원전 비리 수사 당시 한전기술 간부가 골프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연루된 직원 3명을 모두 해임한 적이 있다. 이후 이런 비리는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의미로 경찰에 고발한 것인데 이런 사건이 터져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한전기술의 김천 신사옥 시공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진행 중이다. 그동안 한전기술이 공을 들여온 김천 신사옥은 12만1934㎡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28층 규모로 5월 말 완공될 예정이다. 한전기술 관계자는 “아직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신사옥 관련 비리 문제에 대해 나서서 말할 입장이 아니다”며 “다만 3800억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된 사업인 만큼 어떤 의혹이라도 깨끗하게 털어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4월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에 대한 의혹을 해명하고 있다. 성 전 회장은 4월9일 자살했다. ⓒ 연합뉴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대림산업 간부였던 박 아무개씨처럼 검찰 수사 중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박씨가 자살하기에 앞서 지난 4월14일에도 제주 서귀포시의 한 고급 호텔 대표인 한국계 호주인 김 아무개씨(55)가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4월 한 달 동안에 무려 3명이 검찰 조사를 받다 자살을 한 것이다. 제주지방검찰청에 따르면 숨진 김씨는 사기 등 혐의로 3월 초부터 세 차례에 걸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제주지검 측은 조사 과정에 변호사가 입회하는 등 강압적인 분위기는 없었고, 유서에도 검찰 수사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고 전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12월에도 정윤회 문건 외부 유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최 아무개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3일 최 경위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최 경위 본인은 임의동행 형식으로 데려가 조사를 했다. 12월9일 최 경위를 자택에서 긴급 체포해 다음 날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범죄 혐의 소명 부족’을 이유로 영장이 기각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최 경위가 자살을 선택해 당시 최 경위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강압 수사’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피의자나 참고인의 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검찰 수사 관행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국회 법사위원회 소속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4월20일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검찰 수사 중 자살 사건은 총 43건이나 된다. 지난 2012년 10건에서 2013년 11건, 2014년 22건으로 그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홍 의원은 “유력 정치인이나 기업인 관련 비리 혐의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내용을 흘리거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을 사용해 피의사실 공표의 위법성을 피하고, 당사자가 반론을 제기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면 수집했던 증거의 일부나 관련자 진술 등을 추가로 공개해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등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검찰 수사 관행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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