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을 품은 황사, 당신의 생명 위협한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4.3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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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만 연 1만5000명 사망…건강·산업 피해 15조원

기관지 확장증(기관지가 영구적으로 늘어나 있는 상태)을 앓고 있는 김 아무개씨(58)는 6개월마다 대학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다. 특히 가래가 심해 거담제를 처방받아왔다. 올해는 6월 중순이 정기 검사 시기였는데 3월30일 긴급히 의사를 찾았다. 가래가 평소보다 심해졌고 가슴이 답답해서 숨쉬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담당 의사는 “흉부 엑스선 촬영을 해보니 폐렴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며 “환자의 증상과 대기 상태의 연관성을 의심할 상황이었다”고 진단했다.

3월30일은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11시간 이상 황사가 서울 지역을 뒤덮었던 날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3월에만 서울에 8일 동안 황사가 나타났다. 서울 미세먼지 농도가 평균 1㎥당 71μg(마이크로그램, 1μg은 1000분의 1mg)인 것으로 측정됐는데 이는 지난 5년 새 가장 공기의 질이 나빴음을 의미한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는 “건강한 사람은 황사를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되지만, 호흡기 질환자나 노약자는 건강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사란 바람에 의해 하늘 높이 올라간 작은 모래먼지가 대기 중에 퍼졌다가 땅으로 서서히 떨어지는 현상 또는 떨어지는 모래흙을 말한다. 중국에서도 황사라고 하며, 일본은 고사(こうさ·상층의 먼지), 국제적으로는 아시아 먼지(asian dust)라고 부른다.

ⓒ 시사저널 임준선
세계보건기구 "대기오염은 발암물질"

황사를 단순히 흙먼지로 보지 않는 이유는 그 속에 섞인 미세먼지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매우 작은 먼지다. 미세먼지란 지름이 10μm(마이크로미터, 1μm는 1000분의 1mm)보다 작은 먼지를 뜻하며 영어로는 PM10으로 표기한다. 미세먼지 중에 지름이 2.5μm보다 작은 먼지를 초미세먼지라고 하며 영어로는 PM2.5라고 한다. 머리카락의 지름이 대략 80μm이고,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물체의 최소 한계가 40μm이며, 세균의 크기가 1μm 정도다.

굳이 먼지를 크기에 따라 분류하는 이유는 건강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100μm가 넘는 먼지는 대개 코 부위에서, 20μm 정도의 먼지는 기관지에서 걸러진다. 눈이나 코에 자극 증상을 일으키지만 몸 안으로 흡수되는 것은 아니라서 심각한 피해를 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PM10 이하의 미세먼지는 기도를 통해 폐까지 들어간다. 특히 PM2.5 이하의 초미세먼지는 폐 속에서도 공기와 혈액이 만나는 허파꽈리까지 도달하기 때문에 건강을 직접 위협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세계 사망자 8명 가운데 1명은 실내외 공기 오염이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한 해 동안 700만명이 나쁜 공기 때문에 사망하며 이 가운데 370만명은 미세먼지가 섞인 대기오염 탓에 사망했다는 분석이다. 이들의 사망 원인을 질환별로 구분해보니 심혈관 질환(40%), 뇌졸중(40%), 만성폐쇄성 폐 질환(COPD, 11%), 폐암(4%) 등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로 인한 가장 심각한 건강 피해는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 폐 질환, 폐암으로 볼 수 있다.

WHO 암연구소는 2013년 대기오염 자체를 인체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디젤 배기가스나 중금속처럼 미세먼지도 폐암을 일으키는 물질로 정의한 것이다.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아도 공기가 나쁜 곳에 살면 폐암에 걸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심장학회 전문가들은 미세먼지에 불과 몇 시간에서 몇 주 정도만 노출돼도 심혈관 질환과 그로 인한 사망 위험이 커지고, 몇 년씩 장기간 노출된 경우(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곳에 거주)에는 단기간 노출될 때보다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더 커지며 평균수명이 몇 년씩 줄어들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사망자 10명 중 1명, 미세먼지가 원인

이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황사의 영향을 받는 한반도도 대기오염 문제가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이라는 보고가 끊이지 않는다. 인하대병원과 아주대 연구팀이 최근 서울과 경기 지역 30세 이상 사망자(2010년 기준)를 분석한 결과 1만5000여 명이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탓에 조기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수도권 30세 이상 사망자의 16%를 차지하는 수치다. 미세먼지로 폐암에 걸리는 사람이 연간 1400여 명이라는 사실도 처음 확인됐다.

공기만 깨끗하게 유지하면 수도권 사망자 10명 가운데 약 2명을 살릴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기오염이 개선되지 않으면 2024년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 수가 수도권에서만 연간 2만5000명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경고했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현재 추진 중인 수도권 제2차 대기 관리 정책(공장·자동차의 오염물질 통제)이 효과를 거둬 오는 2024년 대기오염 농도(μg/㎥)가 미세먼지 30, 초미세먼지 20 수준으로 떨어질 경우 조기 사망자가 1만866명이 될 것”이라면서도 “일본과 비교하면 아직도 미세먼지 관리 수준이 낮고,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도 선진국은 5~6%인데 우리는 16%여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세먼지로 일부가 사망한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본다는 의미다. 혈액 속 염증 유발 물질이 증가하는 등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부터 기침, 가래, 호흡 갑갑함, 눈 따가움, 부정맥 등의 증상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일부는 증상이 심하거나 기존 만성질환이 악화돼 병원을 방문하고 그 가운데 일부는 조기 사망하는 것이다. 미세먼지로 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를 질환별로 보면 호흡기 질환(1만2511명), 심혈관 질환(1만2351명), 폐암(1403명), 천식(5만5395명), 만성기관지염(2만490명), 급성기관지염(27만8346명) 등으로 집계됐다.

미세먼지가 폐에 들어가면 염증이 생기고, 염증 유발 물질로 혈액이 걸쭉해져 그것이 심장혈관이나 뇌혈관에 끼면 심근경색·뇌경색을 일으킬 수 있다. 이 과정은 황사 발생 후 3~4일 만에 진행된다. 황사가 발생하는 시기에 노인이나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환자는 의사와 상담한 후 적절한 약물 처방을 받을 필요가 있다. 임 교수가 역학조사를 진행한 결과, 황사 발생 시기에 인천에서 뇌졸중으로 입원한 환자가 평소보다 13%,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환자는 6.1% 늘어났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노인, 폐 질환·천식 등 호흡기 질환자, 혈관 질환자에게는 유해물질이 혈관을 수축시켜 뇌졸중이나 호흡기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는 자살과도 관련이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2006~11년 시·도별 대기오염 지수와 자살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주당 대기 중의 미세먼지 농도가 37.82μg/㎥ 증가할 때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3.2%씩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는 혈액에 녹아 뇌로 올라가 뇌에 염증 반응을 일으켜 기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친다. 미세먼지는 심장병이나 호흡기 질환 증상을 악화시켜 우울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분석이다. 김도관 삼성서울병원 건강정신의학과 교수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결과”라며 “자살률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대기오염 또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이 밝혀진 만큼 자살 예방 대책에 이 부분도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풍이나 집중호우는 그 피해가 눈에 직접 보인다. 그러나 황사는 조용히 건강을 해치고 산업에 피해를 주지만 그 피해가 눈에 잘 보이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황사가 주는 피해를 따져봤더니 산업 피해 5조원, 건강 피해 10조원 등 전체적으로 약 15조원의 피해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2002년의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는 단일 재해로 가장 많은 6조원과 5조원 가까운 피해를 안겨줬다. 

황사로 인한 산업 피해 규모 5조원

2002년 3월에는 황사가 짙었다. 산업체는 큰 영향을 받았다. 반도체·항공기 등 정밀기계 작동에 문제를 일으켰다. 건설 현장은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반도체 원료인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사업체에서는 생산 공장의 공기정화기를 100% 가동해도 불량률이 증가했다. 선박과 자동차를 생산하는 업체는 수 시간 동안 도장 작업을 중단했다.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에어샤워 시간을 평소보다 늘렸다. 황사는 항공기 안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많은 항공편이 결항했는데, 모래바람은 구름·안개와 달리 빛의 투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똑같은 거리라도 더 시야가 좋지 않다. 매년 봄 축산 농가를 시름에 빠뜨리는 구제역도 황사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구제역 균이 황사 바람에 실려 퍼진다는 것이다. 당시 경제적 피해 규모는 약 5조5000억원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0.8%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2015년 기준으로 약 7조8000억원의 피해를 본 셈이다. 추장민 환경정책평가연구원 박사는 “반도체 제조와 같은 정밀 산업이 타격을 받는다”며 “평소에도 필터링하지만 필터를 자주 교환해주는 등의 비용이 필요하다”며 “조선소에서도 도장 작업을 할 수 없는 등의 피해를 본다”고 설명했다.

김정인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황사 발생 시 백화점 세일 기간 매출은 10% 감소하고, 테마파크 등 레저업계 매출은 평상시에 비해 약 20%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사가 발생하면 이익을 보는 산업도 있다. 병원·약국·공기청정기업체·PC방·안경산업·홈쇼핑 등은 반사이익을 얻는 것으로 조사됐다. 예를 들면, 백화점으로 쇼핑을 가던 사람들이 TV 홈쇼핑으로 몰려 판매가 30% 이상 증가한다. 의학적 근거는 없지만, 황사가 발생하면 삼겹살 전문점도 쏠쏠한 매출을 올린다. 황사 바람을 막아주는 안경 달린 모자가 있는가 하면, 황사 방지용 덮개가 부착된 유모차도 나왔다.

건강과 산업에 피해를 주는 황사는 큰 자연 재앙이다. 그래서 황사에 대한 연구·예방·대책을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기성 케이웨더 기후산업연구소장은 “황사에 대처하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매년 발생하는 황사를 연례행사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황사가 송충이 막는다? 


황사는 이로운 점도 있다. 황사가 잦은 해에는 송충이 피해가 줄어 산림 관리에 도움이 된다. 바다 적조 현상이 줄어든다. 황사 속에 섞여 있는 석회 등 알칼리 성분이 산성비를 중화함으로써 토양과 호수의 산성화를 방지한다. 식물과 해양 플랑크톤에 유기염류를 제공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황사는 이롭기보다는 해로운 면이 훨씬 많은 기상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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