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힐링’을 디자인한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4.0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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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인테리어 열풍…‘자기만의 집’ 꾸미기 나선 젊은이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요즘 대한민국 젊은이들 대다수는 이 노랫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바야흐로 ‘셀프 인테리어’ 전성시대다. ‘즐거운 나의 집’을 스스로 가꾸는 데 열정을 쏟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취향에 맞는 소품과 가구를 찾기 위해 천리만리 발품을 판다.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하면 직접 망치를 든다. 능숙한 페인트칠은 기본 스킬이다. 도배, 타일 부착, 조명 설치, 바닥 시공까지 거침없이 해낸다. 자기 공간을 직접 기획하고 꾸미는 현상이 뚜렷한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인테리어’를 ‘셀프’로 한다고 한다.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첫째, 왜 이들은 ‘인테리어’에 열광하는 것일까. 자기 공간을 꾸미는 일이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한 이유에 대한 물음이다. 둘째, 왜 그것을 ‘셀프’로 하는 것일까. 자기 손으로,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집 꾸미기에 열을 올리는 까닭에 대한 질문이다. 직접 자기 집을 꾸며본 이들의 경험담 및 전문가 분석을 토대로 ‘셀프 인테리어’ 열풍의 겉과 속을 들여다보았다.

ⓒ http://blog.naver.com/yangpassi
직장인 이은정씨(32)는 지난해 12월 독립했다. 아파트에서 함께 살아온 언니가 결혼하면서다. 서울 한남동 소재 8평짜리 원룸을 전세로 구했다. 이사 직전, 자신이 갖고 있던 ‘로망’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멋진 집을 꾸며보자는 것이다. 언니와 함께 지낼 때부터 관심은 많았다.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 사진을 보면 자주 갈무리해두곤 했다. 방문을 원하는 색깔로 칠해보는 등 일부 시도도 해봤다.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언젠가는 꼭 정성을 들여 만족할 만한 셀프 인테리어를 해보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집은 단순히 잠만 자는 곳 아닌, 휴식과 취미생활 공간”

인테리어를 마무리하기까지 두세 달이 걸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번갈아 활용했다. 필요한 가구 목록을 적은 다음 웹서핑으로 자신의 구상에 어울리는 제품을 점찍었다. 주로 ‘이케아’ 제품이었다. 가격이 저렴하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매장에 직접 가서 실물을 확인한 후 구매를 최종 확정했다. 벽지 역시 인터넷에서 미리 색감을 확인한 다음 직접 시장에서 실물을 만지며 선택했다. 액자·꽃 등 방 꾸미기의 ‘포인트’가 될 소품들은 각종 온·오프라인 매장을 지속적으로 방문해가며 준비했다. 벽지 부착 작업은 처음으로 시도하기엔 부담스러워 전문 업체에 맡겼다. 여기에 20만원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원룸을 꾸미는 데 든 총 비용은 100만원을 넘지 않았다.

이씨는 수년 후 전셋집에서 나가야 한다. 잠시 빌려 사는 곳에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일 필요가 있느냐는 말도 나온다. 이씨의 생각은 다르다. “집은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다. 휴식과 취미생활의 공간이기도 하다. 비록 몇 년 후 떠날 곳이라 해도 그동안의 내 ‘힐링’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투자할 수 있다.” 이씨는 멋진 인테리어가 소개된 해외 브로슈어 자료를 자주 접해왔다고 한다. 그렇게 쌓인 문화적 소양이 이씨가 인테리어 콘셉트를 구상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자신이 꿈꿔왔던 북유럽 스타일로 방을 꾸민 것에 이씨는 행복감을 느낀다. 유명 인터넷 카페에 자신의 방을 소개하며 재미와 뿌듯함도 얻는다. 새로 꾸민 집은 그에게 자기 정체성의 일부와도 같다.

ⓒ 이은정 제공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이들이 인테리어에 열중하는 이유를 그들 세대 고유의 특성에서 발견한다. “소비주의의 물결이 만연한 사회에서 성장한 첫 번째 세대가 지금의 20·30세대다. 윗세대와 달리 패션·미용 등에 매우 민감한 환경에서 자랐다. 지금 그들이 성년이 되고 결혼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자기 몸의 스타일링을 넘어 공간을 스타일링하는, 과거 세대와는 차별화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유행과 패션에 민감한 ‘소비 세대’들이 자라 독립 주거 공간과 신혼집 등을 차리게 되었고, 이에 따라 해당 공간에 대한 미적 관심도 자연스레 늘어났다는 해석이다. 꾸밈에 대한 관심이 자기 몸을 넘어 공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의 소비 트렌드 변화와도 부합하는 현상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 등 전문가 6인이 공동 집필한 <트렌드코리아 2015>에서는 ‘노멀 럭셔리’(Normal Luxury), 즉 평범하고 심플한 멋이 진정한 우아함의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트렌드가 강조하는 것은 ‘평범함 속의 여유’다. 사치재를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 속에서 여유와 멋을 추구하는 것이 점점 더 ‘럭셔리’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에 따라 “명품처럼 브랜드 있는 ‘물건’에서 장소·음식·운동·사람 등으로 폭넓게 사치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가수 이효리의 ‘전원생활’을 담은 블로그가 큰 관심을 끈 현상, TV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가 시청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 등도 이런 맥락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대세로 자리 잡은 인테리어 콘셉트가 ‘북유럽 스타일’인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기온이 낮고 겨울이 긴 북유럽 지방 사람들은 실내에 오래 머무른다.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이 발전했다. 화려한 색상과 기교보다는 단순한 구성, 기하학적인 문양 등을 선호한다. 절제된 세련미를 바탕으로 감각적인 소품들을 배치해 ‘포인트’를 준다. ‘평범함 속의 여유’를 즐기기에 적합한 공간 문화다. 스웨덴 가구회사 이케아의 제품이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이끌어낸 배경이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 김혜영 제공
내가 직접 꾸민 곳 ‘애착’ 강해

그렇다면 왜 ‘셀프’일까. 경기 용인에 거주하는 김혜영씨(31)는 지난 2월 신혼집을 마련하며 스스로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계약한 32평 아파트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모서리 장식인 ‘몰딩’이었다. 지은 지 10년 된 아파트의 몰딩은 체리 색깔이었다. 김씨가 원했던 신혼집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처음에는 전문 업체에 작업을 의뢰하려 했다. 견적서를 받아보니 비용이 200만원이었다. 예상보다 비쌌다. 그럴 바엔 직접 해보기로 했다. 유명 상표의 무독성 페인트를 샀다. 깔끔한 흰색이었다. 남편과 함께 집 몰딩과 문 전체를 칠했다. 여기에 든 비용은 50만원 상당. 업체에 의뢰했을 때와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었다. 실크 벽지 도배, 부엌 싱크대 등 직접 하기엔 벅찬 부분을 제외하고는 조명 달기, 가구 고르기 등을 부부가 직접 해냈다. 결혼을 준비하며 상상했던 ‘전반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원목 느낌이 살아 있는’ 인테리어를 구현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업체에 맡기려면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 셀프 인테리어에 나선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조금만 더 알아보고 땀을 흘리면 훨씬 저렴한 가격에 멋진 집을 꾸밀 수 있다. 직접 하기에 부담스러운 작업만 떼어내 전문 업체에 의뢰하면 된다. 셀프 인테리어에 나서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 과정이 고생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힘들 때도 있다. 그래도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감정이 앞선다. 끝내고 나면 한없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김혜영씨는 “집에 더욱 애착이 간다. 지금까지 살아온 집이 아니어서 낯설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것이 거의 없다. 집 곳곳에 내 손길이 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나와 내 공간을 내 손으로 아껴주고 보살피는 작업이 ‘셀프’ 인테리어인 셈이다.

경기 파주에 사는 이지윤씨(34)도 결혼과 함께 셀프 인테리어를 경험했다. 지난 2012년의 일이다. 지은 지 30년 된 13평 규모의 빌라를 꾸몄다. 관심을 갖고 매달리기 시작하니 신경 쓸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문 업체에 작업을 통째로 맡기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자신의 입맛에 맞게 집을 디자인하고 싶다는 바람이 ‘셀프’ 인테리어에 나서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임차한 것이 아닌 ‘자기 집’인 덕에 더 과감한 인테리어 작업이 가능했다. 창문 교체, 욕실 세면대 및 변기 교체, 바닥·벽·조명 공사 등을 통해 부부가 원했던 집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셀프’로 집을 꾸미는 것이 너무 힘들지 않으냐는 반응도 보인다. 하지만 직접 꾸며보고 나니, 내가 꾸민 곳이니까 더욱 애착이 생기더라.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자신감이 생겼다.”

과거에는 전·월세 거주자의 경우 집을 인테리어하기 힘들다는 말이 우세했다.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다. 물론 자가 거주자에 비해 제약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임대주택에 맞는 방식으로 셀프 인테리어를 개척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필명 ‘김반장’으로 알려진 유명 블로거 김동현씨(39)는 결혼 이후 지금까지 3개의 전셋집을 거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전셋집 꾸미기’ 노하우를 유감없이 발휘해왔다. 그 결과를 <전셋집 인테리어>라는 제목의 책 2권으로 담아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김씨는 “온라인에서는 전셋집·월셋집·원룸 등을 감각적으로 꾸며 훌륭한 인테리어를 해낸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인테리어라는 게 꼭 이것저것 뜯어고쳐야 하는 건 아니다. 벽과 바닥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적당한 가구와 조명, 소품 등을 잘 활용·배치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만 달러 시대에는 차를 바꾸고, 2만 달러 시대에는 집을 바꾸고, 3만 달러 시대에는 가구를 바꾼다’는 속설이 있다. 경제 규모가 성장함에 따라 사회 문화가 변화하는, 각 과정을 대변하는 소비 품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앞둔 한국도 ‘가구’를 바꾸고 있다. 일상에서 배어나오는 자연스러운 멋을, 나를 대변하는 내 공간 안에서 누리는 휴식과 여유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흔히 육아가 인테리어의 무덤이라고 한다. 내일 태어날 아이가 오늘 꾸민 신혼집 인테리어를 뒤집어놓을지도 모른다. 청년 세대 다수는 전·월세 거주자다. 짧게는 1~2년, 길어야 수년 안에 정든 집을 떠나야 할 운명이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은 방을 꾸민다. 적어도 인테리어에서만큼은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산다. ‘힐링’을 설계하고 싶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이 셀프 인테리어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평범한 사치’다.

 

셀프 인테리어, ‘공유’ 욕망 업고 폭발적 확장 


인테리어 블로그를 수년간 운영해온 김동현씨(39)는 최근 들어 ‘셀프 인테리어 열풍’을 더욱 실감한다. 지난 2월 그의 블로그는 방문 수 1000만을 돌파했다. 관련 서적, 인터넷 콘텐츠 등도 수년 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폭증했다고 한다. 김씨는 그 원동력을 개인 블로그,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 ‘온라인’에서 찾는다.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많은 정보가 제공되고, 그 정보를 활용해 더 많은 사람이 직접 집을 꾸미고, 그 과정에서의 기록들이 다시 새로운 정보로 가공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온라인 공간은 취향의 전시장이자 감각의 아고라(agora)다. 셀프 인테리어를 끝마친 이들은 어김없이 ‘공유’에의 욕망에 휩싸인다. 자신이 꾸민 공간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란다. 직장인 이은정씨(32)는 자신의 방을 촬영해 유명 인테리어 커뮤니티에 게재했다. “댓글 반응을 확인하며 답을 다는 일이 매우 재밌고 신나는 경험이다. 좀 더 멋진 집을 꾸미고 싶은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온라인 공간은 도서관이자 교습소이기도 하다. 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하는 이라면 대부분 다른 이들이 제공하는 사진·정보 등을 참고하기 마련이다. 개인 블로그에 인테리어 과정 및 결과를 공개한 경기 파주에 사는 이지윤씨(34)는 “인테리어에 대한 칭찬과 함께 각종 질문이 쇄도한다.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비용은 얼마나 들었는지 등을 묻거나 궁금한 것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2014년 11월19일 이케아 광명점 내부가 개장을 앞두고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업계에서는 국내 리빙 시장이 2010년 15조7000억원에서 2013년 20조1000억원 규모로 커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최근 3년 사이 30% 이상 성장한 셈이다. 2014년 이후에도 셀프 인테리어, 각종 리빙 관련 상품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증가했음을 감안하면 현재의 시장 규모는 더욱 커졌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주목할 점은 시장 확대가 비싼 사치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비싸지 않은 가격에 실용적인 제품을 공급하는 중저가 리빙 브랜드가 인기를 누린다. 지난해 말 롯데백화점은 2015년 유통 분야의 열쇳말 중 하나로 ‘SPA 리빙’을 제시했다. 중저가로 양질의 의류를 파는 SPA 브랜드처럼, 리빙 시장에서도 비슷한 콘셉트의 제품들이 인기를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SPA 리빙’ 브랜드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이케아가 지난해 말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이 상징적인 사건이 된 이유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까.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 소비층인 20·30대의 경제적 상황에 주목한다.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청년 세대의 주머니 사정은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소비주의 영향 아래 자란 세대가 소비에 필요한 넉넉한 자본을 소유한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자신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버리기는 힘들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작용해 중저가·양질의 리빙 상품 인기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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