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지하실에 나뒹구는 수천 장의 진료 기록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4.0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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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정보 유출 심각…서울 유명 치과 폐업 후 방치

2013년 대한약사회 산하 약학정보원이 무단으로 수집한 환자 개인 질병 정보 7억4000만건을 헬스케어 컨설팅업체에 팔아넘긴 사건이 발생했다. 성병이나 정신질환, 임신 등의 기록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지난해에는 SK텔레콤이 병원에서 약국으로 보낸 처방전 정보를 회사 서버로 무단 전송해 개인정보를 유출했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기 힘든 질병이나 감추고 싶은 질환을 앓고 있다면 더욱 그렇겠지만, 병원을 찾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내 진료 기록은 비밀일까.’ 이름, 나이, 주민등록번호, 집 주소, 전화번호, 휴대전화번호, 질병 종류와 치료 내역까지 개인의 모든 정보를 총망라한 서류가 바로 진료 기록이기 때문이다.

서울 강북의 폐업한 병원 건물 지하에 환자들의 진료부와 X-ray 촬영 사진 등이 방치돼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그런데 기자는 최근 “진료 기록 원본이 버려져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를 받고 찾아간 서울 강북에 있는 2층 건물. 계단을 내려가니 지하실에 서류더미가 쌓여 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작성된 치과 환자들의 ‘의료보험자 진료부’였다. 옆에 쌓인 또 다른 서류 봉투들 속에는 사진도 들어 있었다. 교정을 하기 위해 찍은 X-ray 촬영 사진과 얼굴 사진이었다. 이름과 촬영 날짜도 기재돼 있었다.

이곳은 2013년 폐업한 한 유명 치과가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치과를 폐업한 후 다른 곳으로 이전해 다시 개업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진료했던 환자들의 기록을 내버려둔 채 떠난 것이다.

증명사진·등본 첨부된 의사 지원서도 있어

한 서류뭉치는 ‘이벤트’ 파일에 들어 있었다.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하기 위해 명단을 정리해놓은 것으로 추정됐다. 수천 명에 이르는 환자의 정보가 번호-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이메일 순으로 기재돼 있었다. 방치된 서류는 진료기록부에만 그치지 않았다. 2004~06년 당시 이 병원은 의사를 채용하기 위해 지원서를 접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원자들이 제출한 증명사진이 붙은 이력서, 학교 성적표, 졸업증명서를 비롯해 가족관계가 모두 기재된 주민등록등본까지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의료법에 따라 의료기관 개설자가 의료업을 폐업하거나 1개월 이상 휴업하려면 기록·보존하고 있는 진료기록부를 관할 보건소장에게 넘겨야 한다. 혹은 진료기록부 보관 계획서를 제출해 관할 보건소장의 허가를 받은 경우 직접 보관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들의 기록이 곰팡이가 슨 채 버려져 있는 곳은 지금은 쓰이지 않는, 예전 병원 건물 지하실이었다.

행정자치부는 올해 2월 말부터 병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개인정보 관리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문을 닫은 치과의원은 620곳이다. 그 대부분이 스스로 진료 기록을 보관하겠다고 신고했다. 폐업한 의료기관이 수집된 정보를 어떻게 폐기·보관하는지 그 이행 조치를 전반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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