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외교 국조 방해 세력 표로 심판해야
  • 이준한 |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5.04.0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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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 탕진은 매국노 수준의 비리…책임자들 반드시 응징해야

최소 20조원이 넘는다. 4대강 개발 사업비와 거의 맞먹는 규모다. 다름 아닌 2013년 감사원 감사결과보고서에서 드러난 이명박(MB) 정부 임기 5년 동안 석유공사 등 주요 공기업의 해외사업 누적 투자액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그의 보좌관 출신 박영준 전 차관 등은 전 정권 시절 자원외교의 첨병으로 전 세계 오지를 다니며 114.8%에 달하는 해외 자원개발 회수율을 기록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혈세가 수익성이라곤 전혀 없는 곳에 졸속으로 무리하게 투자되었기에 책임을 느끼고 자살한 일선 공무원이 있는 반면 이상한 자문료와 거래수수료라는 명목으로 두둑하게 한몫 챙긴 사람도 있다.

설 연휴와 국회 휴회 기간 빼니 날짜 다 가

여야 사이에는 MB 정부 시절 대표적인 비리 의혹을 받는 이른바 ‘사자방’(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 관련 국정조사를 하네 마네 하며 장기간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지지부진했던 자원외교 국정조사 돌파구는 지난해 말 갑자기 불거진 이른바 ‘청와대 비선 실세’ 논란에서 마련됐다. 전 정권의 권력형 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것은 이 전 대통령과 ‘친이계’의 반발이 따르겠지만 추락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반등시키는 데 좋은 카드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4대강 사업에 대한 국정조사는 없는 것으로 돌린 반면, 민감한 공무원연금 개혁 이슈를 테이블 위에 올리기로 했다면 여권은 실속을 제법 챙긴 것이 된다.

4월1일 해외 자원개발 국조특위 노영민 위원장(가운데)과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권성동(왼쪽), 새정치연합 홍영표 의원이 증인 채택 등을 논의하고 있다. ⓒ NEWS1
여권은 자원외교 국정조사쯤은 아주 쉽게 요리할 수 있는 전략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일정이 기가 막혔다. 지난해 12월10일 여야가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합의했고, 같은 달 26일 국정조사특위를 구성한 후 올해 1월6일 첫 회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26일부터 올해 4월7일까지 100일 동안의 국정조사 기간에는 신정과 설 연휴 등은 물론이고 국회의 휴회 기간까지 다 포함되기 때문에 진상조사 시간은 절대 부족한 상태였다. 100일 가운데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야 비로소 국정조사 기관보고가 시작됐다. 결국 시간에 쫓긴 탓에 캐나다·멕시코 등 해외 현장조사도 주마간산 격이었고, 정작 중요한 청문회 증인 채택은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제 25일 기간으로 국정조사를 한 번 연장하는 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자원외교 국정조사특위는 막대한 활동비를 받은 것 빼고는 이렇다 할 성과 없이 4월7일 막을 내리게 된다.

국조특위 구성에서도 여당에는 신의 한 수가 있었다. 자원외교 국조특위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위원장을 맡고 여야 동수로 모두 18명의 위원을 뒀다. 그런데 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MB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법무비서관을 지내는 등 여당에서 대표적인 친이계로 통하는 사람이다. 이러할진대 자원외교 국조특위의 활동이 어떻게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국민의 입장에서 진행될 수 있었겠는가. 야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상득 전 의원, 최경환 경제부총리, 박영준 전 지경부 차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등을 증인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와 정세균 당시 산자부장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등을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며 맞불을 놓았다. 여기에 문 대표가 청문회 증인으로 참석할 의사를 밝히자 여당 측은 돌연 이 전 대통령이 어떻게 청와대 비서실장하고 같은 격이 되겠느냐며 입장을 바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증인 채택을 끝내 거부해버렸다.

국회법에 따라 청문회에 증인을 출석시키려면 최소한 청문회 개최 7일 전에 국조특위에서 의결이 이루어지고 당사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아예 청문회 증인 채택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석유공사·가스공사·광물자원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 3사는 물론 어떠한 청문회 일정도 시작되지 못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번에 청문회 증인 채택에 대해 여야가 합의를 했다고 한들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과거 대한민국 국회 국정조사의 사례를 볼 때 청문회 증인들이 국회에 출석하지 않은들, 또 출석해서 의혹에 대해 입을 다물거나 변명만 잔뜩 늘어놓은들, 국조특위가 어떠한 실질적인 처벌이나 권한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어마어마한 국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원외교 비리 의혹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고 책임자를 발본색원하겠다는 국정조사는 용두사미 격이 되어버렸다. 여당은 ‘의혹은 의혹에 불과’하고 ‘검찰의 수사 결과는 나와 봐야 안다’며 의사진행을 지연시키다가 종국에는 증인 채택도 반대하며 서둘러 국정조사를 끝내버렸다. 야당은 과거 국정조사의 무력함에 대한 교훈은 새기지 않고 새로운 전략 없이 여당에 끌려다니며 언론에서 제기했던 의혹만 전달하다가 시간을 허송하고 말았다.

자원외교 국정조사가 이렇게 성과 없이 끝났다고 자원외교 비리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 자원외교 비리가 국민의 머리에서 사라지는 것도 결코 아니다. 이미 지난해 9월의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공기업개혁분과 공청회에서는 자원외교의 문제점을 스스로 지적했다. 검찰 수사도 언론에서 제기하고 야당이 확인해주었던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수사  결과 검찰이 몸통 대신 깃털만 털어내도 자원외교 비리의 책임이 근본적으로 누구에게 있는지를 국민은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은 자원외교뿐 아니라 MB 정부 시기에 방위산업과 관련한 비리가 엽기적인 수준이었다는 것도 목도하는 중이다. 사회 지도층의 ‘매국노’ 수준의 권력형 비리로 인해 알토란 같은 혈세가 사라진 것을 국민은 똑똑히 알고 있다.

꼭 1년 뒤에는 국회의원선거가 있다. 유권자들이 자원외교와 방위산업은 물론 권력형 비리의 책임자와 관련자들을 심판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국회 국정조사에서 성과가 안 나오고, 검찰 수사도 다를 게 없다면, 결국 국민이 투표장에서 심판해야 한다. 이번에 국조특위에서 의사진행을 지연시켰거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국회의원들을 총선에서 솎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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