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우클릭’ 행보에 대한 당 안팎의 엇갈리는 시선
  • 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04.0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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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산으로 가면 산토끼 잡으려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우클릭’ 행보가 여의도 정가에서 화제다. 문 대표가 야당 대표로 취임한 이후 ‘유능한 경제 정당과 안보 정당’을 기치로 내걸고 당의 중도화 노선을 이끌고 있어서다. 그동안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문 대표가 자신은 물론 당의 노선을 ‘중도’로 변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문 대표는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다음 날인 2월9일 국립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그간 야권 진영에서는 ‘독재’를 상징하는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 참배가 금기시돼왔던 터라 통상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만 참배해왔지만, 문 대표가 이런 관행을 과감히 깨고 참배를 선택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 대표는 그간 소극적이었던 북한인권법에 대해 전향적 검토를 지시하는가 하면, ‘소득 주도 성장론’을 앞세운 경제 행보를 통해 ‘분배’와 ‘복지’만을 중시하는 것으로 인식됐던 당의 이미지에 ‘성장’을 더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취약 계층으로 꼽히는 5060세대는 물론 70대 이상 노년층을 겨냥한 행보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3월25일 경기도 김포시 해병대 2사단 제3165부대를 방문해 총기 체험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우클릭 행보는 대선 패배의 산물”

특히 3월26일 천안함 5주기를 앞두고선 ‘안보 정당’ 이미지 부각을 적극적으로 꾀했다. 문 대표는 3월25일 강화도 해병부대를 찾아 야당 대표로선 처음으로 천안함 사태를 ‘폭침’으로 규정하며 북한의 소행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문 대표는 부대 업무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북한의 잠수정이 천안함 폭침 때 감쪽같이 들어와 천안함을 타격한 후 북한으로 도주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또 직접 군복과 장구류를 착용하고 위장크림까지 얼굴에 바른 채 연병장에 배치해놓은 상륙 돌격 장갑차(KAAV)에 탑승해 부대 주변을 둘러봤고, 폐쇄식 잠수기나 고공 낙하산, 산악 침투 장비, 저격용 소총인 K14 등 군 장비를 살펴보며 자신의 특전사 시절과 비교하기도 했다. 저격소총 앞에선 사격 자세를 취해 보이며 특전사 출신의 면모를 보여줬다.

문재인 대표의 이 같은 ‘우클릭’ 행보는 2012년 대선 패배를 반추해 나온 산물로 보인다. 대선 당시 ‘진보’ 진영에 매몰돼 중도층에 대한 외연 확장을 제대로 하지 못해 패배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문 대표가 대선 패배 1년 후 내놓은 자서전 <1219 끝이 시작이다>에는 ‘안보와 성장 분야에서 폭이 좁다.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우리를 수권 세력으로 신뢰할 것’이라고 네 차례나 적었다. 문 대표의 한 측근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문 대표의 구상은 자서전에 다 나와 있다”며 “문 대표는 최대한 신속하게 (자서전에 나와 있는) 구상대로 당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문 대표의 우클릭은 현재로선 당 대표로서의 행보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향후 대권 주자로서 어떤 길을 걸을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문 대표의 우향우 행보에는 당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신당론’ 내지 ‘분당론’을 차단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내 ‘비노(非盧)’진영 의원들이 대체적으로 중도·온건 성향임을 감안할 때 문 대표가 중도적 행보를 통해 이들이 섣불리 이탈 명분을 찾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문 대표의 중도적 행보엔 당내 진보적 색채가 강한 의원들의 지지가 뒷받침돼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표는 최근 일부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다른 사람과 달리 나는 중도·중원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진보 진영으로부터 의심을 덜 받는 사람 아니냐. 나의 진정성이나 본질에 대해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동에 자유를 느낀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당의 급격한 우클릭을 경계한다” 비판도

아직까지 당내 평가는 호의적이다. 당내 중도·온건 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소속인 황주홍 의원은 “문 대표가 과거와 달리 중도 개혁 노선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국립현충원을 찾아 전직 대통령 묘소를 전부 참배하고, 천안함 사태에 대해 폭침으로 규정한 것을 보면, 기다리면서 지켜볼 만하다”고 말했다. 역시 민집모 소속인 김영환 의원은 최근 한 방송에 나와 “제가 지금 문 대표와 소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 대표의 행보가 제가 평상시에 주장하던 내용과 같기 때문에 쓴소리를 하고 싶어도 할 내용이 많지 않다”고 밝혔다. 당내 민평련계로 분류되는 한 중진 의원은 “솔직히 문 대표가 당 대표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 당 대표로서 당을 이끌어가는 것을 보면 걱정했던 것을 잘 걷어내고 의외로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표의 우클릭 행보에 대해 당내에서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진보적 성향이 강한 정청래 최고위원은 3월26일 자신의 트위터에 “당의 급격한 우클릭을 경계한다”고 직격탄을 날린 뒤 “새들도 좌우의 날개로 창공을 난다. 새정치연합의 고공행진을 위해서도 좌우의 날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느닷없이 한쪽 날개를 접고 오른쪽 날개로만 날려는 급격한 우회전을 경계한다”며 “자동차 급제동·급출발 모두 위험하듯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 발언에 대해 “천안함뿐만 아니라 최근의 전반적 분위기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다. 우리 쪽 전통적 지지층이 우려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정 최고위원은 문 대표가 취임 직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것에 대해 ‘히틀러 참배’에 비유하며 “적절치 않은 행동”이라고 비판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문 대표의 우클릭 행보가 계속 순항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김철근 동국대 사회과학대 교수는 “총론적으로 보면 지금 문 대표의 행보가 잘 가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문 대표의 우클릭 행보가 진정성 있느냐는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며 “문 대표의 행보가 힘을 받기 위해선 당 전체의 기류가 같이 바뀌어야 하는데, 당내 ‘선명 야당’의 노선을 가진 진보 그룹 의원들은 그대로인 채 문 대표만 산토끼를 잡으러 다니는 형국이라면 결국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문 대표의 행보가 당의 총의를 모아서 가는 것이기보단 개인 문재인의 대선 행보일 것이라는 시각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중도·통합적 행보가 당내에서 안착할 수 있을지는 조금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그 첫 번째 시험대는 4·29 재보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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