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는 이유 사람들이 알아줄까”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3.2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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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가족의 현실 풀어낸 ‘균도 아빠’ 이진섭씨

자신에게는 ‘장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은 장애인을 ‘장해인’으로 본다. 무슨 말인가 하니 자신이 하는 일을 방해해 ‘장해’가 되는 사람으로 본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그런 사람을 적잖이 만날 수 있다. 식당을 찾은 손님이 발달장애아가 시끄럽게 돌아다닌다고 아이보다 더 큰 소리로 아이와 아이의 부모를 야단치는가 하면, 장애인을 맡게 된 어떤 교사는 그 학생의 부모에게 금품을 요구해 물의를 빚는다. ‘장해’가 되니 그에 대한 보상을 하라는 식이다.

이런 세상에서 장애아를 키우면서 살아가다 보니 눈물도 많아지고, 그러다 할 말이 많아진 ‘균도 아빠’ 이진섭씨(51). ‘울보 아빠’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많이 울었던 그가 참회록을 쓰듯 아이와 함께해온 일들을 정리한 <우리 균도>를 펴냈다. 이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왜 ‘내 아들·딸’보다 ‘우리 아들·딸’로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한’ 이유도 알 수 있다.

이진섭씨(오른쪽)와 아들 균도씨. ⓒ 비마이너제공
‘장애아를 꾀어’ 3000㎞ 걸은 이유

이씨 또한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게 소원이라고 넋두리를 하기 일쑤인 ‘장애인의 부모’였다. 아들 균도는 올해 스물네 살 청년이 됐지만 다섯 살 지능에 시시때때로 과잉행동장애를 일으키는 지적장애 1급 자폐아다. 이런 아들과 함께 지난 2년간 다섯 차례에 걸쳐 3000㎞를 걸었다. 그러면서 이씨는 여전히 ‘울보’이기는 해도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권익을 찾아주려 나선 운동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내가 걷고 또 걷는 이유를, 아이의 아픈 다리를 매만져가며 물집 난 발에 다시 신발을 신기며 이 먼 길을 가는 이유를 사람들은 알아줄까.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미련한 짓이냐고, 청와대나 국회의원에게 인터넷으로 민원이나 넣어보라고, 아이를 학대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장애아를 꾀어 이 길을 걷는 게, 과연 아이를 위한 일이냐고도 묻는다. 마음이 들끓는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하니, 우리 아이들의 삶에, 우리의 미래에 관심을 두는 게 아닌가. 행동하지 않으면 결과가 없다. 이것은 힘없는 우리의 마지막 항변이다.”

이씨가 이렇게 항변을 늘어놓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 균도>는 장애아를 둔 한 아버지의 ‘육아 일기’이기도 하다. 1992년 이씨는 첫아들 균도를 얻었다. 균도는 발달장애 1급의 자폐아였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 균도의 손을 잡고 바다로 갔다. 함께 하늘로 간다면 다른 가족들은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균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아빠 살려주세요.” 그때부터 평범한 아버지의 인생은 달라졌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장애인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아버지는 사회복지학과 대학생이 됐다. 균도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날 아버지도 대학을 졸업하면서 사회복지사가 됐다.

“산만 한 덩치의 청년 균도는 여전히 엄마를 졸졸 따라다닌다. 잘 때는 아빠와 함께지만 나머지 시간은 엄마랑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균도는 엄마 앞에서 언제나 웃는다. 그래서 효자다. 부모를 바라볼 때 웃는 얼굴이면 그걸로 족하다.”

성인이 된 균도는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균도를 데리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기로 했다. “균도에게 ‘아빠랑 여행 가자’고 말했다. 균도도 좋아했다. 걸은 만큼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짐을 꾸렸다. 장애를 가진 아들과 세상 구경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세상을 향해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들과의 추억 만들기로 시작했던 여행은 관심과 성원이 더해지면서 다섯 차례에 걸친 3000㎞ 국토 대장정이 됐다. 걸으면서 부자는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발달장애인법 제정,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쳤다. 길 위에서 그는 자식보다 하루라도 더 살기를 바라며 슬퍼하는 부모가 아니라 우리 아이도 나보다 오래 살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장애인 활동가였다.

끝나지 않은 여정, 길 위의 균도와 균도 아빠

“집으로 돌아왔다. 균도는 여전히 패스트푸드를 찾고 있고, 위인전과 거울을 끼고 다니며, 과자가 생기면 잡고 있던 내 손을 뿌리친다. 하지만 균도에게는 새로운 추억이 생겼다. 여행 중 만난 현아의 노래를 들으며 피식거리는 것도, 언제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 이야기하며 눈을 반짝이는 것도 모두 그 추억의 증거였다.”

이씨 부자의 걸음은 느렸지만 걸은 만큼 세상도 변했다. 한 차례 ‘세상 걷기’를 끝내고 난 2011년 장애아동복지법이 제정됐다. ‘5차 세상 걷기’를 끝내고 난 2014년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됐다.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은 “균도 부자의 세상 걷기는 우리 균도가 가족을 넘어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험과 같았다. 우리 균도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집이나 생활시설에 갇히지 않고 세상 속에 나와 사람들과 뒤섞이면 좋겠다. 그렇다면 세상은 그만큼 살 만한 곳으로 바뀌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장애아동복지법에서는 여러 조항이 강제 조항에서 임의 조항으로 수정됐고, 발달장애인법은 발달장애 가족에 대한 소득 보장 조항이 빠진 ‘껍데기 법안’이 됐다. 균도는 지금도 복지관과 집 말고는 갈 곳이 없으며 시시때때로 과잉행동장애를 일으켜 복지관조차 못 갈 때가 있다. 아버지는 갈 곳 없는 균도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내걸고 다시 한 번 걸을 계획이다.

“한진, 강정, 쌍차, 재능…. 우리만큼 힘없는 사람들도 만나러 다녔다. 그들도 우리 문제에 관심을 보여달라는 제스처이기도 했다. 때로는 우리가 누군가에 의해 ‘동원’됐다고들 하는 가슴 아픈 말도 들었다. 나는 장애인도 연대의 손을 내밀 수 있음을, 균도도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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