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땅’엔 어둠이 안 걷혔다
  • 네팔 카트만두=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3.2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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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왕정 무너졌으나 신헌법 제정 두고 정치·민족 갈등 증폭

네팔 하면 흔히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나 힌두교의 나라를 떠올린다. 네팔을 청정한 자연 속에서 순박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 생각하겠지만 2015년의 네팔은 대혼돈 속에 있다.

지난 2월19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해 도심으로 들어가는 도중에도 이런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도로는 차들의 쩌렁쩌렁한 경적 소리와 무질서하게 이동하는 오토바이로 북적였고 거리 곳곳에는 공사 중인 건물이 널려 있었다. 도심 공해 또한 심각해 사람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망치와 경적 소리 그리고 희뿌연 먼지가 뒤범벅된 카트만두의 모습은 네팔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했다.

2월20일 네팔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에서 신헌법 제정과 관련한 집회가 열리고 있다. ⓒ 이종철 뉴시스 부국장 제공
왕정 국가였던 네팔이 240여 년간 이어온 왕족 통치를 마무리한 것은 지난 2006년의 일이다. 네팔에선 1990년대 초부터 국왕의 절대 권력에 반대하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1996년 공산당의 한 분파인 마오주의자(마오쩌둥의 이념을 추종하는 네팔의 공산주의자)들이 ‘인민전쟁’을 선포하면서 네팔 곳곳에서 유혈 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2006년 4월 가넨드라 국왕이 민주화 요구를 수용해 권력을 내려놓고 상징적인 왕으로 남게 된다. 같은 해 11월 네팔 과도정부와 공산 반군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10년 동안 이어진 내전이 끝났다.

이후 네팔 정치는 변화의 급물살을 탔다. 2008년 4월10일 실시된 제헌의회 선거에서 공산 반군이 주축인 정당 네팔 마오주의공산당(CPN-M)이 최대 다수당이 됐고, 한 달 뒤 열린 의회에서는 왕정 폐지와 연방공화정 도입이 선포됐다. 네팔 마오주의공산당은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의회를 장악한 후 네팔을 통치해왔다. 하지만 5년 만에 민심은 차갑게 돌아섰다. 네팔 마오주의공산당은 2013년 11월 치러진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네팔 국민회의당(NC)에 밀려 세 번째 당으로 추락했다.

2월21일 네팔 카트만두에서 ‘2015 다문화가정 교육평화축제’가 열렸다. ⓒ 통일교 제공
신헌법 제정 두고 여야 갈등 첨예

현재 네팔에서 가장 큰 이슈는 신헌법을 제정하는 문제다. 네팔 제헌의회는 지난해 10월 신헌법 초안을 발표한 후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2015년 1월 신헌법을 최종 공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신헌법 초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두고 네팔 국민회의당을 주축으로 한 여당연합과 네팔 마오주의공산당이 주축이 된 야당연합이 극심한 의견 대립을 보였다.

네팔 주간지 유니버설타임스의 비쉬누 기리(Bishnu Giri) 편집장은 “현재 네팔에는 31개 정당이 있는데 이들 정당 간 정책 차가 꽤 크다”며 “무엇보다 새로운 자치주를 만드는 데 어떤 기준을 내세워야 할지에 대한 의견이 제각각이라 두 차례나 헌법 제정이 무산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기리 편집장은 “야당연합은 민족을 기준으로 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여당은 민족이 아닌 강과 산 등을 기준으로 주를 나눠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고 말했다.

신헌법 제정 문제로 네팔의 내홍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헌법 제정 문제를 두고 한 달에 3~4차례 가두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네팔 현지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시위 현장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2월20일 오후 카트만두의 중심부인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에선 1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집회를 갖고 헌법 제정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네팔의 국토 면적은 14만7200㎢로 한반도의 3분의 2 정도다. 이곳에는 126개 소수민족이 있고 123개 언어가 쓰이고 있다. 왕정이 무너진 후 각 소수민족을 대변하는 정당이 우후죽순 생기다 보니 정당 수만 해도 124개에 달했다. 그동안 네팔은 네와리·바훈·체트리 등 소수 상위 계급들이 지배해왔기 때문에 소수민족, 하위 계층, 여성들은 신헌법 제정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려고 하고 있다. 헌법 제정 과정에서도 드러나듯 민족과 계층 간 갈등을 풀고 화합을 이루는 것은 네팔이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이런 가운데 네팔의 민족·종교·정치 간 화합을 위해 한국이 주최하는 행사가 주목을 받았다. 2월21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과 천주평화연합은 네팔에서 ‘2015 다문화가정 교육평화축제’를 열었다. 네팔 축구 국가대표 홈구장인 카트만두의 다사라스 랑가살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파르마난드 즈하(Parmanand Jha) 네팔 부통령, 마드하브 쿠마르 전  총리, 치트라레카 야다브 교육장관, 에크낫 다칼  국회의원, 스리 어스도스 인도 정부 대변인, 버것 싱 코스야라 인도 국회의원 등 전·현직 고위 관료, 국회의원, 종교 지도자를 비롯해 카트만두 시민 7만명이 참석했다.

이 축제는 네팔에서 초(超)종교·다문화 행사로 기록됐다. 우선 이번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네팔 전역에서 80여 민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또 힌두교·불교·이슬람·가톨릭·바하이교·자이나교·시크교 등 8개 종단에서 32명의 종단 대표자가 참석해 초종교 축도식을 진행했다. 이어 ‘가정평화축제’를 기치로 3000쌍의 기혼 가정을 위한 합동결혼식이 열렸다.

통일교, 초종교·다문화 행사 주최

네팔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파르마난드 즈하 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행사에 참석해) 네팔의 가족 전통이 아직도 건재한 것을 봤다. 300여 개 교육기관 및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한데 모인 것은 우리 모두가 그만큼 가정의 가치 교육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즈하 부통령은 “현재 제헌의회가 구상 중인 새로운 헌법이 우리 국민의 염원을 반영해 가정의 가치를 옹호하는 법안이 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다문화가정 교육평화축제’를 추진한 국회의원 에크낫 다칼 네팔 가정당 총재는 “이 축제는 네팔에서 18회째 열리고 있다. 네팔에는 원래 합동결혼 문화가 있기 때문에 매번 행사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축제는 카트만두 주변의 300여 개 학교가 후원하는 국민 축제의 형식으로 진행됐다”며 국영방송을 비롯해 10개의 방송사가 축제를 생중계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통일교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종교 색을 빼고 다문화·가정·교육·평화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인정해 네팔 정부에서도 국립 경기장 이용을 허가해주고 경찰 인력 200명을 지원해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네팔 교육청에서 사립학교와 공립학교 협회에 공문을 보내 행사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며 “덕분에 총 293개 학교 및 대학의 교원, 학부모, 학생이 행사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파르마난드 즈하 네팔 부통령 ⓒ 시사저널 조현주
“40년 전의 한국과 네팔은 경제 수준이 비슷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 비결과 경험은 네팔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새마을운동 사업 추진 등) 한국 정부의 지원이 네팔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한국과 네팔이 수교를 맺은 지 올해로 41년째다. 지난 2월20일 카트만두에 있는 집무실에서 만난 파르마난드 즈하 부통령은 지난 40년 동안 양국에서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으로 경제 발전을 꼽았다. 즈하 부통령은 한국의 정부 주도형 경제 개발에 대해 “한국식 경제 성장은 네팔에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며 양국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현재 새마을운동 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네팔 현지에 시범마을을 조성해 새마을운동 경험과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네팔은 2014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700달러에 불과한 최빈국으로 농업 외에 변변한 산업이 없다. 전력도 부족해 10월에서 5월에 해당하는 건기에는 매일 16시간 가까이 전기가 끊기는 일이 잦다. 공장이 세워진다 해도 제대로 가동되기 어렵다.

즈하 부통령은 네팔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이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헌법 제정이 경제 발전의 기본 바탕이라고 생각한다”며 “헌법 제정을 통해 정부가 안정화돼야 외국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네팔의 각 정당들은 헌법 제정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네팔은 2008년 5월 1차 제헌의회를 구성해 공화제 헌법 제정에 착수했으나, 주 구성 문제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1차 제헌의회는 성과 없이 해산되고 말았다. 2013년 11월 2차 제헌의회를 구성해 헌법 제정 논의를 이어왔으나 정당 간 견해차로 인해 지난 1월22일로 예정된 신헌법 공표 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이에 대해 즈하 부통령은 “정당 간에 이견이 있으나 이를 최대한 (헌법에) 반영하도록 조정해나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며 “(현재) 1차 안을 정해 파트별로 요구 사항을 수집해 수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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