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원-서정희 행복하게 산다고 했잖아”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3.2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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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우롱하는 연예인 ‘쇼윈도 부부’ 행태

‘결혼과 가족이라는, 언뜻 견고해 보이는 사회적 테두리는 때로 아무리 밟아도 밟히지 않는 그림자처럼 연약하고 허무하다.’ 지난해 출간된 미국 여성 작가 루이스 어드리크의 책 <그림자밟기>를 소개하는 글이다.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부부지만 속은 달랐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까지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 남자와 도망칠 용기가 없어 머무르는 여자. 위태롭게 쌓아올려진 관계가 무너질까 전전긍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잘못된 관계를 무너뜨리고 싶은 욕망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폭행·불륜 등으로 얼룩진 연예인 부부

그렇게 또 하나의 ‘쇼윈도’가 깨졌다. 32년간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로 꼽히던 서세원(59)·서정희(55) 부부가 파경을 맞으면서 연예인들의 ‘보여주기 삶’이 다시 구설에 올랐다. 한창 주가를 높이던 CF 모델과 개그맨의 만남이었다. 방송에 동반 출연하면서 사랑을 과시했다. 2009년 서세원이 주가 조작으로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후에도 애정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서정희는 영화감독으로 복귀하는 남편을 응원했고, 2010년 발간한 책 <SHE IS AT HOME>을 통해 “기쁠 때나 힘든 일이 생길 때 옆에 남편과 아이들이 있었기에 모든 것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3월12일 4차 공판에 출석한 서세원(왼쪽)과 2014년 9월5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서정희. ⓒ NEWS1
그러나 지금 이 부부는 지난해부터 법적 공방을 이어오고 있다. 서세원은 지난해 5월 자택인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오피스텔에서 서정희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7월 제기한 이혼 소송도 진행 중이다. 3월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서정희는 결혼 생활 32년이 ‘포로 생활’ 같았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서정희는 “남편이 요가실로 끌고 가서 바닥에 눕힌 뒤 배 위에 올라타 한 손으로 전화를 걸고 다른 손으로 목을 졸랐다”며 “죽는구나 하면서 남편에게 살려달라고 손으로 빌었다”고 증언했다. 서씨가 바닥에 넘어진 채 서세원에게 다리를 붙잡혀 엘리베이터 안으로 끌려가는 모습이 담긴 건물 폐쇄회로 TV 영상이 재판에서 공개됐다. 이에 대해 서세원은 “(서정희가) ‘주변 사람들에게 구조를 요청하고 감옥에 보내버리겠다’고 발버둥을 쳐 제지하려다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오는 4월20일 5차 공판을 앞두고 있지만 양쪽 의견은 계속 부딪치고 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딸 서동주가 “엄마가 그동안 참은 게 많이 있다. 필요하면 한국 가서 증언할 수 있다”며 엄마 편을 들었다. 반면 서세원 측근들은 “서정희 의견이 과장된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화려하고 예쁘게 상품을 진열해놓은 백화점의 쇼윈도. 이를 빗대 만들어진 말이 ‘쇼윈도 부부’다. 실제로는 위기에 놓여 있으면서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부부들을 이른다. 연예인 ‘쇼윈도 부부’의 파경은 이미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졌다. 여배우와 가수의 결혼으로 주목받았던 이승환-채림 커플은 2003년 결혼 후 3년여 만에 이혼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관계였다는 것도 이혼 소식이 전해지면서야 알려졌다.

2013년 방송인 배동성도 부인 안현주와 결혼한 지 22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혼설을 부인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방송에서 보여주던 다정한 모습은 연출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같은 해 부부 동반으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방송인 LJ와 이선정이 촬영 전에 이미 이혼한 것이 알려지며 “진짜 부부도 아니면서 부부 행세를 하며 시청자 앞에 나섰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시 프로그램 제작진도 실상을 몰랐다고 한다.

‘자기야 저주’라는 말도 등장했다. 2009년부터 방송된 SBS <자기야>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부부 중 7쌍이 이혼했다. 고 김지훈-이종은, LJ-이선정, 양원경-박현정, 배동성-안현주, 이유진-김완주, 이세창-김지연, 김혜영-김성태 등이다. 최근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선수 김동성과 아내 오 아무개씨의 이혼 소송이 보도되면서 여덟 번째 ‘자기야 저주’라는 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중에게 보이는 것이 자신의 전부

당초 이 프로그램의 포맷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이야기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연예인 부부들이 감정을 꺼내 토로하는 과정에서 언쟁이 생겼고, 녹화가 끝난 후 “왜 그런 얘기를 했느냐”며 싸우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연예인들은 대중에게 보이는 것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쇼윈도 부부’ 행세를 한다. 보이지 않았던 부부간의 문제가 나중에 부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야>에 출연한 연예인 다수가 이혼한 것을 보면 프로그램 자체의 내재적 문제도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쇼윈도 부부’의 화려한 생활 뒤편에서는 폭행과 불륜도 일어났다. 2000년 톱스타와 스포츠 스타의 만남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고 최진실-조성민 커플은 폭력으로 번진 부부 싸움으로 인해 2004년 파경을 맞았다. 이후 최진실과 조성민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TV에 나와 남편과의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던 개그우먼 이경실과 김미화도 남편에게 폭행당해 이혼했다. 12일이라는 짧은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이찬-이민영 부부도 폭행 때문에 결별했다. 

또 다른 잉꼬부부로 소문났던 박철-옥소리 부부는 2007년 옥소리의 불륜을 이유로 소송에 돌입하면서 파경으로 치달았다. 지난해에 연예계에 복귀한 옥소리는 당시 불륜 상대 중 하나로 지목됐던 이탈리아 요리사와 4년 전 결혼해 2명의 아이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인도 ‘쇼윈도 부부·커플’ 수두룩  

시청자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연예인 부부의 폭행이나 이혼 얘기가 나올 때마다 “시청자를 우롱하는 것이냐” “리마인드 웨딩 사진 찍고 그러는 게 그냥 쇼였네” “방송에 나와서 그렇게 사이좋은 척하더니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욕먹던 ‘쇼윈도 라이프’가 이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타고 일반인들에게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가족끼리 나눴다는 감동적인 이야기, 남편이 해줬다는 이벤트 혹은 선물 사진을 게재하면서 ‘너무 부럽다’ ‘정말 행복해 보인다’는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댓글을 즐기는 것이다. ‘쇼윈도 커플’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전국 20~39세 남녀를 대상으로 ‘연인 간 쇼윈도 관계’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80%가 형식적인 연인 관계가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개인의 사생활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예능 트렌드화되면서 ‘쇼윈도 라이프’를 보여주는 일들이 더 늘어났다. 연예인으로 시작된 문화가 점점 ‘일반인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쇼윈도 라이프’는 보기 좋은 떡일 뿐,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직장인 서 아무개씨(30)는 “전 남자친구가 무조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커플 사진으로 해놓으라고 해서 자주 싸웠다”며 “안 그러면 사람들이 우리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또 “싸워도 남들에게 내색하지 않았고 서로 잘해준 것, 행복해 보이는 것만 SNS를 통해 알리는 생활이 반복됐다. 답답함에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고 결국 헤어졌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이번 서세원-서정희 사건 역시 대외적인 모습과 실제 모습이 다른 데서 오는 실망감의 파장이 매우 컸다”며 “부부·연인 간 갈등은 문제를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드러내고 부딪칠 때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 ‘쇼윈도 부부’는 갈등이 없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기 때문에 괴리가 커졌을 때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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