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간 ‘고도’를 기다려온 임영웅의 뚝심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3.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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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 45주년 기념 공연 올리는 연출가 임영웅

81세의 연출가가 지팡이를 옆에 놓고 앉아 연출 지도를 하자 66세의 배우가 조심스럽지만 진지하게 연기를 펼친다. 3월4일 오후 4시 서울 홍대 앞 산울림소극장 4층 연습실 풍경이다. 그곳에는 정동환·안석환·이영석·박상종·김명국 등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가 모여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연출가는 한국 연극계의 대표적인 연출가 임영웅이다.

1969년 사무엘 베케트의 원작 소설을 연극으로 옮긴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고도>) 한국 초연 연출을 맡았던 임영웅이 45년간 <고도>를 거쳐 간 13명의 배우를 모아서 45주년 기념 공연을 3월12일부터 5월17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이를 연습하기 위해 TV와 영화를 빛내고 있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모였다.

1막이 끝나고 잠시 휴식 시간이 되자 연출자 주위로 배우들이 모여 앉았다. 이들은 각자 ‘내 인생의 고도’를 들려줬다.

ⓒ 시사저널 박은숙
“첫 출연이 25년 전 45세 때(1990년)였는데 이번에 연습하면서 ‘내가 이걸 그때 알 수 있었나’란 생각이 들었다. 60은 넘고 70 언저리는 돼야 표현할 수 있는 극을 썼는데 무대에서 움직임 양은 40대 체력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이다. 여기서부터 부조리다(웃음).”(정동환)

그러자 임 연출자가 한마디를 보탰다. “아니야, 명배우는 60이나 70이나 무대에서는 훨훨 날잖아?”

“1994년인가 처음 무대에 섰는데 그해가 무척 더웠다. 아스팔트에 계란을 익혔다고 할 정도의 더위였다. 내 장점이 긴장을 안 하는 것인데, 두 시간 반 동안 대사가 720마디였고 타이밍 맞춰서 리듬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아 무척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안석환)

1969년 한국 초연된 현대 연극 대명사

“1993년인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란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노부부가 오셨다. 임 선생 부부였다. 김명국이란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오셔서 보신 것이다. 그다음 날 극단 산울림 마크가 찍혀 있는 누런 봉투에 든 <고도>의 대본을 받았다. ‘뒤랑스 강에서 나를 건져준 날을 기억하니’라는 고도의 대사처럼 무명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선생이 건져준 것이다. 1994년에 동구권(폴란드) 공연을 하면서 내 생애 처음으로 외국을 나가본 것도 <고도> 때문이었다. <고도>를 끝내고 나면 늘 그런다. 이 지랄은 또 못하겠다. 그런데 또 한다. 그게 인생이고, 이 작품의 매력이다.”(김명국)

“이 작품은 열린 마음으로 보면 된다. 출근한 아빠를 기다리며 아이가 뭐 하고 놀까라는 그런 마음. 흥미로운 작품이다.”(박상종)

배우들의 이야기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서야 연출자 임영웅이 길게 입을 열었다. “이 작품을 1969년에 처음 무대에 올렸다. 무대에 올리기로 발표하고 다시 희곡을 읽는 데 사흘쯤 걸렸다. 이걸 어떻게 연출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고 피 터지게 작품과 싸웠다. 그렇게 연습하고 있는데 사무엘 베케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막이 오르기도 전에 표가 다 팔렸다. 사람들이 책은 읽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으니까 연극을 보러 온 것이다. 초연 때부터 좋은 배우와 했기에 작품이 어려워도 관객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초연 때 배우는 김성옥·김인태·함현진·김무생(배우 김주혁의 부친)이다. 이 중 함현진과 김무생은 작고했다. 이후 <고도>는 당대 명배우의 경연장이 됐다.

임영웅표 <고도>는 베케트의 고향인 더블린에 원정 공연을 가서 큰 호응을 얻었다. “더블린 공연 다음 날 신문가판대에서 보니 현지 유력지인 아일랜드타임즈 1면 우측 상단에 우리 공연 사진이 크게 실려 있었다. ‘동양에서 온 고도는 기다릴 만한 것이었다’고 보도했다.”(정동환)

본바닥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로 임영웅표 <고도>는 스테디셀러다. 젊은 층부터 수십 년간 <고도>를 본 노년층까지 관객층이 다양하다.

연습실에 모인 의 배우와 연출가. 왼쪽부터 김명국, 정동환, 임영웅, 안석환, 이영석. ⓒ 시사저널 박은숙
45년간 ‘고도’를 기다려온 임영웅의 뚝심

임영웅 연출자는 “연극은 사람 사는 이야기다. 삶의 방법이나 경우는 다 다르다. 관객이 무대 위에 펼쳐지는 연극을 보면서 저런 인생이 있구나, 나는 어떤가, 저렇게 살면 어떨까 등 여러 생각을 한다. 관객의 삶을 좀 더 좋은 쪽으로 가게 하는 게 연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령에도 일선을 지키는 현역 연출가다. 연극 외에는 다른 길을 걷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얼굴이 맑았다. “내가 연극이 좋으니까 계속 연극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왔으니 젊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신문기자나 방송국 PD(동아방송·KBS)로 일할 때도 연극 작업을 계속했다. 연극이 돈 안 된다는 것을 알고 한 것이니까 속상할 일도 없었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하는 것이고. 내가 극장을 갖고 있어서 무대 걱정 없이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연극 연출가 임영웅의 2015년은 <고도> 초연 45년, 산울림소극장 개관 30년이 되는 해다. 올가을에도 새로운 창작극을 무대에 올릴 준비를 하는 짱짱한 현역이기에 나이 81세는 기념 숫자에 오르지 못했다. 다만 그의 결혼 55주년은 그의 오늘을 이루게 한 힘 중의 하나이기에 기념할 만하다.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로 재직 중이던 1961년 그는 오증자 전 서울여대 명예교수와 결혼했다. 취재를 위해 조선일보 뒤에 있던 국제방송국에 갔다가 프랑스어 방송을 담당하던 아나운서에 반한 것. 그는 “오 교수는 내가 연극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나를 안 만났으면 더 잘됐을 텐데”라며 웃었다. 지금 무대에 올리는 <고도>도 오 교수의 번역본으로 무대에 올리고 있다. “내가 배우자를 잘 만난 거지. 돈 안 들이고 희곡 번역하고 공연 올리고.” 임 연출가의 얼굴에서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의 딸은 산울림소극장 극장장을 맡고 있고 대학교수인 아들은 연출을 겸하고 있기도 하다. 온가족이 모두 연극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

“지금이 40년 전보다는 낫다. 연극계는 나아졌다. 예전에는 잘하는 사람도 밥 먹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 밥 못 먹는 사람은 없지 않나. 생각하기 나름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 거지 속상해할 이유가 없다. 돈을 벌려면 영화나 TV를 하면 되는 것이고. 연극은 어느 시대나 안락한 시기가 없었다. 여건이 나쁘더라도 핑계를 대면 안 된다. 나쁜 환경, 모자라는 여건에서도 밀고 나가 최선을 다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그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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