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나리들만 쏙 빼고 “넣어야지, 다 넣어”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3.1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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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속기록과 증언 통해본 ‘김영란법’ 졸속 처리 전말
김영란 “이런 법에 왜 내 이름 붙여가지고…”

“앞으론 우리 과자 먹을 때 한 개에 얼마 꼴인지 계산해가며 먹읍시다.” 최근 한 정치권 인사가 기자에게 과자를 건네며 이런 농담을 던졌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 통과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었다. 지금은 비록 우스갯소리지만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더 이상 장난으로만 여기지 못할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직무와 관련성이 없더라도 언론인이 식사를 할 때 상대방이 밥값을 계산해버릴 경우, 김영란법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100만원 이하면 과태료, 이상이면 형사 처벌이다.

김영란법 통과 이후 여의도에 후폭풍이 거세다. 처음엔 법을 통과시켜야 되느냐를 놓고 갑론을박하더니, 통과된 이후에는 벌써부터 ‘개정론’이 불거지고 있다. 위헌 논란은 이미 진행형이다. 법이 통과된 지 이틀 만에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위헌 청구 소송’을 냈다. 예상된 결과였다. 모두 통과 전부터 제기됐던 문제들이다. 그런 와중에 정작 법을 논의한 의원 자신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애초에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만들어놓은 안에는 없던 내용이다. 오죽했으면 국회 공청회에 참석했던 한 법학 교수가 “(향후 재논의 과정에서는) 권위 있는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정부와 국회의원들은 빠져라”고 일침을 가할 정도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사회에 만연돼 있던 ‘관(官)피아’ 비리를 척결해줄 것으로 국민적 기대를 모았던 법이 어떻게 이처럼 제정되자마자 위헌 및 개정 논란에 휩싸이는 ‘누더기법’ 신세로 전락했을까. 시사저널은 그동안 국회에서 이뤄진 회의석상의 회의록 자료와 관련 상임위 인사 및 전문가들의 증언을 통해 김영란법이 통과되기까지의 과정 곳곳에서 졸속 처리된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3월3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영란법이 재석 247인 중 찬성 226인, 반대 4인, 기권 17인으로 가결됐다. ⓒ시사저널 박은숙

김영란 전 위원장 “지금 법, 내가 낸 것과 달라”

기자는 김영란법 통과 여부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1월14일 김영란 전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때부터 이미 김 전 위원장은 “(김영란법) 논의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법안 통과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김영란법 논란에 대해 “지금 논의되고 있는 법은 내가 입법할 당시와는 다른 점이 너무 많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어 “왜 거기 내 이름을 붙여가지고···.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자신이 냈던 안과 달라진 법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의 말처럼 해당 법은 김영란법이란 이름이 무색할 만큼 변질됐다.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부분은 적용 대상이 민간 영역까지 넓어져 공직자 부패 척결이라는 당초의 선명성이 퇴색했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에 언론인이 들어가게 된 배경을 보면 거의 코미디에 가깝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제시한 안에 ‘공직유관단체’가 법 적용 대상으로 돼 있었는데, 여기에 공영방송사인 KBS와 EBS가 포함돼 있었다. 이 내용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거치며 몇몇 의원들의 즉흥적 돌출 발언이 튀어나오면서 갑자기 언론사를 포함시키는 쪽으로 확대된 것이다. 사실상 언론을 공직자에 넣어야 하느냐의 당위성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 없이 KBS·EBS가 포함되면 다른 방송사도 넣어야 하고, 방송사를 넣으려면 신문, 잡지, 인터넷 언론까지 다 포함해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억지스러운 논리가 그냥 적용된 것으로, 국회의원들의 상식이 의심될 정도다.

다음은 시사저널이 입수한, 김영란법에 대해 논의했던 국회 정무위원회 소위 제324회 회의록 내용이다. 당초 정무위원들은 권익위가 민간 언론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자 문제를 지적하며 꾸짖기도 했다. 논리가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김용태 소위원장: 우리가 이 법안을 심사해서 언론에 공개되기 시작했을 때 ‘거기 왜 들어갔느냐’라고 했을 때 우리가 (권익위 측 말처럼) ‘공직자윤리법에는 들어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가 있겠어요? 그게 아니잖아요. 여러분들이 정부 안을 내놨을 때 그것에 대해 분명한 논리·철학을 갖고 있으셔야 된다 이 말이에요.

곽진영 권익위 부위원장: 법률적으로 열거를 하다 보니까 누락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빠져 있는 기관들을 별도로 다시 넣는 안을 저희가 검토할 계획으로 있었던 것이고요. 또 지금 위원님들이 제기해주신, 특히 MBC라든지 SBS 같은 언론사라든지 사립학교 같은 문제는 분명히 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논의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기식 위원: 지금 이게 속기록에 다 남는 거여서, 지금 권익위가 굉장히 위험한 말씀을 하고 계신 거예요. 그 민간, 민영화된 방송사 문제를 겁 없이 말씀하시면 안 돼요. (중략) 그 문제에 대해서 일관된 원칙을 갖고 답변하지 않으시면 이것이 굉장히, 이 입법 문제와는 다른 논란을 일으킵니다.

이처럼 처음엔 정무위 일부 위원들은 민간 영역 포함 부분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약 한 달 후 열린 제325회 회의에서는 갑자기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강석훈 위원: 단순히 KBS·EBS뿐만 아니라 관련 언론기관은 다 포함이 돼야 하는 게 논리적으로는 일관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데요?

강기정 의원: 그럴 것 같은데요. 길게 논의하지 맙시다.

이상직 의원: 그래요

김용태 소위원장: 길게 논의하지 말자니 무슨 소리야?

강기정 의원: 다 넣자. 종편이고 뭐고 전부…. (중략)

이상직 의원: 다 넣어야지요.

강기정 의원: 그렇지.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언론이 큰데 다 넣는 거지요.

박대동 의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다 넣어야지.

한마디로 언론은 이렇게 “영향력이 있으니 다 넣자”는 얘기다. 이후 법리적 문제를 보완하는 법사위로 해당 안이 넘어갔고, 법사위조차 김영란법 대상을 축소시키면 비판에 휩싸일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손을 대지 못했다. 결국 해당 법은 통과되자마자 위헌 소송에 휩싸이게 됐다.

1월8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위원들이 '김영란법' 등을 심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원과 청탁을 어떻게 구분해? 사실상 불가능”

그런데 이처럼 민간 영역이 포함되는 과정 속에 정작 공직 성격이 명확한 국회의원들은 오히려 ‘예외’ 규정을 늘려 사실상 적용 대상에서 빠져나간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영란법 부정 청탁 금지와 관련된 조항을 보면, ‘선출직 공직자’의 경우에 대해 예외를 규정해놓았다. 표현만 선출직 공직자일 뿐, 사실상 국회의원 자신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원래 정부가 제출한 안의 예외 조항은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공직자에게 법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폐지 등을 요구하는 행위’를 예외 조항으로 뒀다. 그런데 해당 안이 국회 정무위를 거치며 “지역 민원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의원들의 요구에 의해 다음과 같은 예외 규정이 추가됐다.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기준의 제정·개정·폐지 또는 정책 사업 제도 및 그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해 제안 건의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즉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이 지역 유권자 등의 민원을 전달했을 때 김영란법에서 규정하는 부정 청탁 유형에 속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민원과 청탁을 구분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학자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정상적인 입법 활동과 청탁을 구분하는 것은 애매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역시 “민원을 이유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법을 개선해달라는 행위 자체가 어떤 것은 허용되고 어떤 것은 예외인 것으로 명확하게 경계가 나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자가 접촉한 전직 법무부장관, 검찰 관계자들도 모두 같은 의견이었다. 이 교수는 “국회가 정작 국민들이 원했던 ‘합헌’인 어린이집 CCTV법은 로비 논란 속에 부결시키고, 위헌 논란이 있는 김영란법은 통과시킨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직무 연관성이 없어도 100만원 이상을 받으면 처벌받는 규정에서도 의원들은 빠져나갔다. 법을 똑같이 적용받긴 하지만, 현재 법 테두리 안에서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 없는 해에는 1억500만원까지 신고한 계좌로 정치후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의원들에게 전해지는 후원금과 김영란법상 건네지는 100만원 이상의 성격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출판기념회 등을 통해서는 여전히 문제없이 받을 수 있다. 출판기념회 축하금 역시 김영란법에서 규정하는 100만원 이상의 성격과 구분하기 힘들다.

“언론인도 이번 기회에 자성해야” 의견도

이번 기회에 언론인들도 자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월호 사건으로 ‘기레기(기자+쓰레기)’ 논란의 중심에 서며 언론사도 여론의 질타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언론인을 빼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상황 자체가 언론인들이 그동안 스스로 신뢰를 쌓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아마 보좌관들은 겉으론 말은 못해도 내심 언론인이 포함되는 것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크게 반대했다면, 논의 과정에서 의원들에게 의견을 강하게 전달했을 것이고, 그러면 이렇게 쉽게 언론인이 포함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에 떠밀려 눈감을 순 없었다"
김영란법 반대·기권한 의원들의 입장


김영란법 논의 과정에서 국회 법사위는 지금 지적되고 있는 여러 법리적 문제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당시 법사위 회의록에 따르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위원장은 “넣으려면 어떤 원칙과 기준에 의해서 넣고, 안 넣으려면 왜 안 넣었는지가 분명해야 되는데, 공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넣는다, 예산 투입 때문에 넣는다, 그러면 그 외의 기구들은 뭐냐. 자의적으로 비쳐지는 이런 원칙과 기준이 없는 것이 나는 법사위원으로서 영 그렇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런 후폭풍을 빤히 예상하고서도 여론 때문에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김영란법 통과에 ‘반대’ 표를 던진 4명이 있었다. 시사저널은 이들을 한 명 한 명 접촉해 왜 반대를 했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위헌 소지 문제부터 다른 법과의 상충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 법률안이었다. 법률에 여러 문제점이 있다면 역작용을 최대한 제거했어야 했다. 여론에 떠밀려 졸속으로 의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후에라도 수정을 하게 되면 국민은 본래의 입법 취지를 훼손하고 후퇴한 법률이 됐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국민이 기대한 법 취지는 기본적으로 공직자들이 부정한 돈을 받지 말라는 것인데 부정 청탁이라는 항목을 붙이면서 법안의 포커스가 많이 흐려졌다. 청탁을 받는 사람은 공직자지만 청탁을 하는 쪽은 국민이다. 민원을 제기하는 국민들의 기본권을 상당히 훼손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위헌 요소가 있는데도 여론에 밀려 ‘일단 통과시키자’는 국회의원들의 안일함이 문제”라고 지적했고, 같은 당의 김용남 의원 역시 “공직과 민간 분야의 경계가 애매모호해 누구는 빠지고 누구는 들어가는 데 대한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기권을 한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공영방송인 KBS, MBC, EBS와 연합뉴스는 당연히 적용 대상에 포함돼야 하지만 민간 언론사가 거기에 들어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당 지도부에 계속 주장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민간 언론사가 포함되면서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고 입법 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토론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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