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칼질’ 특무상사 사무부총장만은 양보 못해
  • 양정대│한국일보 기자·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03.0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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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내년 총선 앞두고 계파 간 신경전…공천 전쟁 사실상 불붙어

혹자는 그랬다. “2015년에는 여의도가 조용할 것”이라고. 큰 선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의 생리를 좀 아는 사람들은 모두 비웃었다. “큰 선거를 앞둔 때가 원래 더 시끄러운 법”이라고. 결론적으로, 전당대회와 원내대표 경선 등으로 새 지도부 체제를 모두 갖춘 여당과 야당 안에서는 이미 ‘전쟁’이 시작됐다. 내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둔 총선 경쟁이다. 봉합하려 해도 쉽게 봉합되지 않는 ‘친박(親朴)’과 ‘비박(非朴)’, ‘친노(親盧)’와 ‘비노(非盧)’의 뿌리 깊은 불신과 계파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그 진원지는 사무부총장이다.

■ 여당-김 대표, 사무부총장 자리 모두 장악

지난 2월24일 국회 본청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새로 지역구 조직책으로 뽑힌 당협위원장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그동안 우리 정치권에 난무했던 단어가 ‘충성하겠습니다’였다. 당의 권력자를 졸졸 쫓으며 절을 90도로 하고 충성을 다 바치겠다고 해서 공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충성이란 말은 쓰는 게 아니다. 내가 내 지역 주민의 지지를 받아서 당협위원장이 된 만큼 ‘나는 내 지역 주민에게 충성을 다 바치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2월24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는 이완구 총리를 만나 “성과를 못 내면 당에 못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김 대표의 이날 언급은 그간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강조해온 것과 맥을 같이한다. 당 대표지만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한 측근 의원은 “김 대표가 우리에게도 ‘내 옆에 있다고 공천이 보장되는 게 아니니 지역구 잘 챙겨야 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김 대표 주변에서는 그가 공천권 행사에 대해 손사래를 치는 데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당 대표실 핵심 관계자는 “2008년과 2012년 연거푸 공천 학살을 당한 당사자인 만큼, 특정인 몇몇이 공천을 주도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두 번이나 억울하게 공천에서 탈락한 건 결국 권력을 쥔 특정인들이 공천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절대로 인위적인 공천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김 대표의 확고부동한 뜻”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 자신은 지난해 7·14 전당대회 당시 “나는 공천권을 내려놓기 위해 당 대표를 하려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내 ‘친박계’를 비롯해 김 대표와 조금이라도 거리가 있는 의원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영남권 친박계 중진 의원은 “김 대표가 공천권을 내려놓느니 뭐니 하고 떠들고 있지만 이걸 믿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며 “좀 지나면 지역 조직 정비네 뭐네 해서 한바탕 난리를 칠 것”이라고 했다. 한 수도권 의원도 “차라리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고 잘라 말했다. 한 충청 지역 의원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고 말했다. 

사실 ‘친박’ 진영의 이 같은 의구심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김 대표가 지난해 당권을 잡은 후 단행한 주요 당직 인선이 그것이다. 김 대표는 당의 인사·재정·조직을 담당하는 사무총장에 이군현 의원을 임명했고, 실무 책임자인 제1사무부총장과 제2사무부총장에 강석호 의원과 정양석 전 의원을 각각 선임했다. 그런데 이들 3인 모두 단순한 ‘비박’ 정도가 아니다. 이 총장과 강 제1부총장은 ‘친이(명박)계’ 핵심 인사들이고, 정 제2부총장은 정몽준 전 의원의 최측근이다. 당의 살림과 조직을 운영하는 데서 친박계를 철저히 배제한 것이다.

특히 사무총장과 제1, 2부총장은 전국 단위 선거가 있을 경우 공천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 때문에 사무총장과 1, 2부총장 자리를 놓고서는 관행적으로 최소한의 계파 안배가 이뤄져왔다. 하지만 이번엔 완전히 비주류 일색으로 채워졌고, 이에 대해 친박계에선 “실제로는 자기 사람들 채울 준비 다 해놓고 말로만 상향식 공천이니 공천권을 내려놓느니 떠든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18·19대 총선보다 계파 전쟁 더 치열할 것

새누리당 안팎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조직 정비가 본격화할 경우 언제든 친박과 비박 간 전면전이 현실화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내년 총선은 시기적으로도 ‘박근혜정부 중간평가’ 성격을 띠게 되는 만큼 여권에는 기본적으로 불리한 선거다. 따라서 텃밭인 영남 지역과 서울 강남권 등 ‘노른자위 지역구’를 공천받기 위한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할 수밖에 없고, 게다가 이 과정에서 ‘물갈이’ 논란까지 겹친다면 내전으로 확산되는 건 시간문제일 수 있다.

일단 지난 연말에 진행된 사고 지역구 정비는 탐색전 수준으로 치러졌다. 공석이었던 일부 지역 당협위원장을 선정하는 과정 내내 친박 주류와 비박·비주류 간 신경전이 상당했지만, 양측 모두 당장의 확전에는 부담을 느낀 결과다. 하지만 조만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실 당협위원장 교체 과정은 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번에는 ‘있는’ 당협위원장을 쫓아내는 작업이 병행되기 때문이다. 강 제1부총장은 지난 2월23일 최고위원회의 비공개 회의에서 “전혀 활동을 하지 않거나 총선에 출마할 의지가 없는 당협위원장은 교체해야 한다”며 내년 총선을 겨냥해 본격적인 당협 조직 정비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김 대표는 곧바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선 경쟁력 있는 당협위원장을 뽑아야 한다”며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1차 정비 대상 지역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한구 의원 지역구인 대구 수성 갑을 비롯한 13곳 안팎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 사무처 조직국 관계자는 “이번에 당협위원장 교체 대상으로 오른 지역은 모두 현직 의원이 아닌 원외 당협위원장 지역”이라고 말했다. 곧바로 현역 의원이 버티고 있는 곳을 손대기에는 부담이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전운이 고조되는 건 원외 당협위원장의 대다수가 친박계이기 때문이다. 19대 공천을 앞두고 지역 당협위원장 자리를 꿰찬 상당수가 ‘박근혜 키즈’였던 까닭에 현역 의원 배지를 달지 못한 당협위원장 자리에도 여전히 그들이 앉아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주류인 김 대표 측이 총선 경쟁력을 명분 삼아 이들을 쫓아내겠다고 나섰으니 친박계에선 발끈할 수밖에 없다. “조만간 현역 의원들을 향해서도 목을 죄어올 것”(한 친박계 중진 의원)이라는 불신과 불안감이 팽배한 것이다.

김 대표가 최근 입각했거나 입각 대상에 오른 현역 의원들을 향해 사실상 내년 총선 불출마를 요구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올 생각 말라”는 김 대표의 발언은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명분이 있는 얘기일 수 있지만, 총리·부총리·장관으로 입각한 친박계 핵심인사들을 한 번에 정리하겠다는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해수부장관으로 입각할 유기준 의원과는 앙숙이면서 동시에 선거구 조정 문제도 걸려 있다.

당료 출신으로 정치권에 오래 몸담았던 한 재선 의원은 “뚜렷한 대권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총선을 치른 뒤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모든 잠룡이 내년 총선 공천에서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총력전을 펼 것”이라며 “김 대표는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지만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이고 친박계와 비주류 싸움의 결과는 2008년이나 2012년보다 훨씬 큰 상처를 남길 가능성이 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석사무부총장 인선 문제로 대립 중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오른쪽)와 주승용 최고위원. ⓒ 시사저널 이종현
■ 야당-문 대표, 수석부총장 자리만큼은 고집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월25일 공천 실무를 담당하는 수석사무부총장직에 ‘친노(親盧)’ 인사인 김경협 의원 임명을 관철하면서, 2·8 전당대회 이후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당내 계파 갈등이 다시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주요 당직에 친노와는 거리감이 있는 인사들을 임명하면서 ‘탕평 인사’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문 대표의 인사가 시험대에 들어선 모습이다.

사무총장을 보좌하는 수석사무부총장은 통상 인사와 재정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지만, ‘수석’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당무 전반에 관여한다. 조직사무부총장을 별도로 두긴 하지만, 수석사무부총장이 겸임하는 경우도 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 시절 윤관석 전 수석사무부총장은 조직사무부총장 역할까지 병행했다. 특히 사무총장이 당무를 총괄하긴 하지만, 사실상 수석사무부총장이 조직부총장과 함께 각종 선거에 대한 공천 실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요직 중 요직으로 분류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각 계파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다른 측근 많은데 왜 굳이 김 의원을…”

이로 인해 당내 ‘비노(非盧)’ 진영에선 문 대표가 김 의원 인선을 관철시킨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비노계로 분류되는 주승용 최고위원은 문 대표가 지난 2월16일과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의원 임명에 대한 뜻을 피력하자 “친노 인사 앉히기”라며 반대의 뜻을 고수했다. 지난 2월24일 저녁에 열린 비공개 간담회에 불참한 데 이어 김 의원 임명안이 의결된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선 회의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주 최고위원 측은 2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분간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무 거부에 들어갔다. 비노 진영에 속하는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전당대회 결과에서도 드러났듯이 50%에 가까운 사람이 문 대표 반대 입장에 서 있는데, (문 대표는) 자기 것을 버려야 당이 단결하고 혁신을 할 수 있다”며 “김 의원은 당보다는 계파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이런 사람을 요직에 앉히면 당내 분란의 소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 말고도 문 대표와 가까운 사람이 많을 텐데, 왜 굳이 김 의원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문 대표가 너무 조바심을 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호남권의 한 중진 의원은 “문 대표의 행보와 인선은 모두 대선을 위한 것 아니냐”라고 일갈했다.

이에 맞서 친노 진영의 한 핵심 의원은 “수석사무부총장은 당 대표가 임명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지금까지 당직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대표가 추천해 의결하는 것이었고, 사무총장이나 전략홍보본부장 등이 의미 있지만 수석사무부총장은 큰 의미가 없는 하위 당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어떤 인선이든 최고위원들과 상의했는데, 수석사무부총장 등은 대표가 알아서 임명하면 그만이다. 그동안 다 친노라고 낙인찍힌 사람들은 주요 당직을 못 줬는데, 이런 것도 못하면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한 핵심 당직자는 “김 의원 인선을 반대하는 의견은 소수의견”이라고 평가절하했고, 문 대표도 김 의원의 인선안 처리 직후 기자들과 만나 “충분히 협의를 했다”고 강조했다. 

공천 실무에 관여하는 수석사무부총장직 인선으로 인해 촉발된 양측 갈등은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무처의 한 당직자는 “내년 총선까지 당 내부적으로 거쳐야 할 프로세스가 상당히 많은데, 그 단계마다 각 계파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강도는 강해질 것”이라며 “이번 사안이 당내 해묵은 계파 갈등에 다시 불을 붙인 모양새가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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