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소녀’의 끝내기 샷, 짜릿했다
  • 안성찬│골프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2.1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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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명수’ 김세영 LPGA 첫 우승…“운도 실력이다”

‘태권소녀’가 그린을 평정하는 꿈을 이뤘다. 그는 12세 때 ‘반드시 미국에서 우승하겠다’고 결심했다. 그 계획이 뜻밖에도 일찍 다가왔다. 2월9일(한국 시각)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역전의 명수’ 김세영(22·미래에셋). 그는 아마도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진출해 2개 대회에 출전해 바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첫 대회에서는 보기 좋게 예선 탈락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도전했다. 그리고 힘겹게 우승을 일궈냈다.

김세영이 우승한 대회는 올해로 3회째를 맞는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총상금 130만 달러)이다. 2월9일 바하마의 파라다이스 아일랜드C.C.(파73·6644야드)에서 열린 이 대회 최종일 경기. 김세영은 5타를 줄여 합계 14언더파 278타를 쳤다. 유선영(29·JDX), 에리야 쭈타누깐(태국)과 동타를 이뤘다. 18번홀(파5)에서 벌인 첫 번째 연장전에서 김세영은 버디를 낚아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 19만5000달러(약 2억1000만원)를 손에 쥐었다.

그는 연장전에서 홀과 네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버디를 챙겼다. 유선영과 쭈타누깐은 버디 퍼트가 빗나갔다.

2월9일 LPGA 퓨어실크 - 바하마 클래식에서 우승한 김세영. ⓒ AP 연합
끊임없는 노력에 운까지 따라주는 선수

경기를 마친 뒤 그는 “아무런 말도 생각나지 않아 울고만 싶었다”며 “연장전에서 크게 긴장하지 않았고 게임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LPGA 투어 퀄리파잉(Q)스쿨을 통해 올 시즌 미국 무대 출전권을 얻었다.

김세영에게는 재미난 일이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5승을 거뒀다. 그런데 모두 역전승이다. 얼핏 보기에 김세영은 운이 따르는 듯하다. 사실 기량이 뛰어나면 대회마다 상위권에 입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승자에게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운이 따른다. 우승을 다투는 최종일 마지막 홀에서 미스 샷을 하고도 나무를 맞고 핀에 붙어 버디를 해 우승을 했다면 아마도 이는 ‘쩐복(錢福)’이 있는 것이다.

김세영은 끊임없이 노력하는데 운까지 따라주는 특별한 선수다. 2013년 한화금융클래식 최종일 17번 홀(파3). 그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2개 홀을 남기고 유소연(25·하나금융그룹)에 3타 뒤진 상황. 누가 봐도 우승컵은 유소연의 몫이었다. 그런데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김세영이 17번 홀에서 6번 아이언으로 친 볼이 깃대 앞에 떨어지더니 그대로 홀로 빨려 들어갔다. 기적의 ‘에이스’(홀인원)였다. 역광이어서 볼이 잘 보이지 않던 그는 갤러리들의 환호성을 듣고서야 홀인원인 줄 알았다. 김세영은 마지막 홀을 남기고 유소연에 1타 차로 따라붙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유소연은 18번 홀에서 보기를 범했다. 동타가 됐다.

18번 홀에서 연장전에 들어갔다. 김세영은 파를 잡으면서 2승째를 올렸다. 우승 상금 3억원을 챙겼다. 여기에 홀인원 부상으로 1억5000만원 상당의 벤츠 SUV(G350)를 받았다. 이어 열린 메트라이프·한국경제 KLPGA챔피언십에서 최종일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며 ‘역전의 명수’라는 닉네임까지 얻었다.

하지만 김세영의 생각은 달랐다. 행운보다는 코스 공략과 자신의 기량을 믿었다. “물론 운도 따랐겠죠. 한화금융클래식 최종일 10번 홀에서 이글, 17번 홀에서 홀인원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16번 홀에서 파 세이브를 못했다면 우승은 물 건너갔을 거예요.”

상황은 이렇다. 파4홀인 16번 홀에서 티샷에 미스가 났다. 우측으로 밀려 깊은 러프에 빠졌다. 발목까지 빠질 정도의 러프였다. 긴 풀에 클럽이 감길 것은  빤한 일. 고민하다가 강공을 선택했다. 7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노렸다. 다행히 온이 됐다. 2퍼트로 파를 잡았다. 그는 속으로 ‘대박’이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의 ‘역전 신화’는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우리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과 MBN 여자오픈에서도 역전 우승했다. 데뷔 후 처음 우승한 롯데마트여자오픈에서는 장하나(22·BC카드)에 3라운드까지 5타를 뒤지다가 짜릿한 역전승을 일궜다. 그는 두 가지 면에서 남다르다. 이해가 빠르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금방 알고, 바로 실천한다.

태권도장을 운영한 아버지에게서 큰 교훈을 얻었다. 그는 검은 띠를 딸 만한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심사를 하며 ‘아직 검은 띠를 딸 실력이 안 된다’며 노란 띠를 다시 매줬다. 그는 어린 나이에 무척 속상했다. 하지만 나중에 깨달았다. 뭐든 쉽게 얻으면 다른 것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자만에 빠지거나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안 아버지가 일부러 노란 띠를 줬다는 것을. 골프를 배우고 나서 한참 뒤에야 알았단다.

이때부터 김세영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행운은 반드시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는 것을 잘 안다. 준비도 안 됐는데 결과만 좋으라고 바라는 것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종종 노력을 많이 했는데 안 될 때도 있죠. 그때는 바로 결과에 승복합니다. 그것은 제 능력 밖의 일이니까요.” 

그를 강하게 만든 것은 지난해 열린 LPGA 외환·하나은행챔피언십. 그는 이 경기가 끝난 후에도 무척 실망했다. 2라운드까지 선두권을 형성하면서 은근히 우승을 기대했다. 우승하면 LPGA 투어에 무임승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셸 위(미국),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과 함께 공동 3위에 그쳤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그날 저녁이었다. 오빠가 “네가 우승할까 봐 걱정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미국으로 가면 고생을 할 것 아니냐”고 했다. 이때 그는 알았다. 무엇이든지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런 다음 바로 Q스쿨에 대비했다. 그리고 9위를 해 시드권을 확보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 출전의 꿈

태권도에서 골프로 돌아서면서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 중학교 2학년이던 2006년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최연소로 우승했다. 2007년과 2009년 국가대표를 지냈다. 2009년 전국체전에서는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에 오르는 등 아마추어 시절부터 기대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는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포기하고 일찍 프로로 전향했다. 이유가 있었을까. 2016년부터 골프 종목이 부활하는 올림픽 때문이다. 대표를 하고 싶어 서둘러 프로가 됐다. 국가대표 동기였던 장하나, 양제윤(22·LIG)이 모두 국가대표를 포기하고 프로로 전향했다. 그도 더 큰 꿈을 위해 아시안게임을 접었다. 

2010년에는 2부 투어에서 뛰었다. 하지만 프로세계는 녹록하지 않았다. 예선 탈락도 많이 했다. 2011년 5위로 정규 투어에 입성했지만 역시 우승까지는 벽이 높았다. 컷오프를 밥 먹듯 했고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실망이 컸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다. 2012년에는 컷오프만 되지 말자고 각오를 다졌다. 빛을 본 것은 2013년부터다. 2년 동안 5승을 올리며 정상급 대열에 합류했다. 163cm로 큰 키는 아니지만 태권도(3단)로 단련된 하체와 유연성으로 장타를 날린다. 2013년 평균 드라이버 거리 266야드, 2014년엔 274야드를 날리며 장타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그의 꿈은 무엇일까. 바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대표다. 이 때문에 그는 LPGA 무대를 선택한 것이다. 김세영이 올 시즌 몇 승을 추가할지 궁금하다.

 


ⓒ AP 연합, ⓒ LPGA 제공
김세영·김효주·백규정·장하나·이민지. 공통점은 ‘루키’(신예)라는 것이다. 개막전 코츠 챔피언십이 끝나자마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홈페이지에는 ‘루키들이 파도를 만들다(Rookies Making Waves)’라는 글이 올라왔다. ‘루키’ 김세영(22·미래에셋)이 두 번째 출전 만에 보란 듯이 우승했다. 첫 대회는 컷오프, 곧바로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에서 짜릿한 역전 우승을 했다. 

롤렉스 여자골프 세계 랭킹 50위 선수 중 49명이 출전한 개막전에서 ‘루키’ 장하나(23·비씨카드)가 2위에 올랐고 에리야 쭈타누깐(태국·11위), 호주 교포 이민지(12위), 재미교포 앨리슨 리(공동 13위) 등이 선전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2개 대회 만에 미국 그린을 루키들이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쭈타누깐이 김세영에게 연장전에서 져 2위를 했다. 한국 선수들이 무섭다. 한국에서 건너간 겁 없는 슈퍼루키들이 LPGA 투어를 한꺼번에 집어삼킬 태세다.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젊은 피’가 휩쓸었다. 김효주(20·롯데)가 5승을 거둔 데 이어 백규정(20·CJ오쇼핑) 3승, 장하나(23·BC카드)와 김세영(22·미래에셋)이 나란히 2승을 챙겼다. 이들이 모두 LPGA 투어로 향한 것이다.

라식 수술을 한 김효주는 태국에서 전지훈련을 하느라 아직 출전을 하지 않고 있다. 오는 2월26일 태국에서 개막하는 혼다 LPGA 타일랜드 대회부터 출전한다. 김효주가 가세하면 ‘루키 폭풍’이 더욱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걸림돌도 있다. 세계 랭킹 1위인 리디아 고(18·고려대 1)다. 

아직 LPGA 투어에서 본격적인 그린 전쟁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2년 차인 리디아 고도 올 시즌 감각이 좋다. 1, 2주 대회에서 상위권에 오른 리디아 고는 최연소 기록을 쏟아내며 막강한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코츠 챔피언십에서 컷오프됐던 백규정도 이번에는 비록 공동 71위에 그치긴 했지만 컷을 통과했다. ‘골프 퀸’이 되고 싶은 마음에 영어 이름을 ‘Q Back’으로 정한 백규정으로선 어떻게 빠른 시간 내에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다. ‘루키 돌풍’은 예견된 일이었다. 이들은 기량은 물론 스타성까지 겸비했다. 무엇보다 언제든지 우승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대부분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다. 270야드 이상을 훌쩍 날린다. 김세영·장하나가 대표적이다.

이와 달리 김효주와 리디아 고는 정확성에 더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 김효주는 거리보다는 80%대의 페어웨이 안착률이 장점이다. 리디아 고는 250야드에 안착률 84%대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UCLA에 재학 중인 앨리슨 리도 눈여겨볼 유망주다. Q스쿨을 이민지(19·하나금융그룹)와 함께 공동 수석으로 통과한 리는 키가 175㎝로 훤칠해 ‘제2의 미셸 위’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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