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리포트] 인생의 맛 우려내고, 그 멋을 즐긴다
  • 정덕현│대중문화 평론가 ()
  • 승인 2015.02.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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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창출도 소비도 40대가 주도…윗세대와 아랫세대 모두에서 공감

“하다 보니 어쩌다 40대와 계속 일을 하게 됐네요.” 요즘 tvN 인기 프로그램 <삼시세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남자로 꼽히는 나영석 PD는 이렇게 말했다. <삼시세끼> 농촌 편에 나왔던 이서진, 어촌 편의 차승원과 유해진, 그리고 페루로 떠났던 <꽃보다 청춘>의 3인방 윤상·유희열·이적까지. 이들 모두가 40대다. 그래서인지 나영석 PD의 예능 프로그램의 힘은 물론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힘에서 나오지만 그 중심 축에는 여지없이 40대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나영석 PD 역시 올해로 마흔이 된다.

40대 콘텐츠 파워 어디서 오나

그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40대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취향과 문화적 지대를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1970년대 개발 시대를 살았던 아버지 세대들과 2000년대 이후 대중문화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젊은 세대들 사이의 교량 같은 위치다. 그들은 정치적인 민주화운동에서 경제 불황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겪었고,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를 경험했다. 또 1990년대부터 시작된 본격 대중문화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세대이기도 하다.

1월30일 서울 용산역에 설치된 영화 의 대형 포스터. 이 영화는 40·50대의 높은 관심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 연합뉴스
이런 과도기에 걸쳐서인지 이들 40대는 윗세대와 아랫세대 모두에게 공감을 받는 세대이기도 하다. <삼시세끼>에서 도시 남자 이서진이 강원도 정선까지 가서 하기 싫은 시골 삶을 살며 투덜대면서도 동시에 그 삶에서 어떤 즐거움 같은 걸 느끼는 모습은 이 양다리에 걸쳐진 정서를 모두 끌어안는다. 시골의 삶이란 아랫세대에게는 낯선 생고생의 현장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윗세대들에게는 기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이들이 그 낯선 곳에서도 모든 게 능숙한 ‘삶의 프로페셔널’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이서진은 의외로 시골생활을 척척 잘 해내고, <삼시세끼> 어촌 편에 출연하고 있는 차승원은 요리사라고 할 정도로 만능의 요리 실력을 뽐낸다. 유해진 또한 진정으로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40대는 무언가 인생의 맛을 알고 자기만의 생각이 세워지는 나이다. 그러니 요즘처럼 불안하기 그지없는 일상 속에서 확고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위안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들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다 지나다 보면 불안한 것조차 능숙해지는 시간이 온다고.

이러한 40대의 감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콘텐츠 제작자 역시 40대일 수밖에 없다. 일찌감치 40대들과 정서를 공유하며 그것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냈던 나영석 PD나, <남자의 자격>부터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든 신원호 PD는 이제 40대에 들어섰다.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를 기획한 김태호 PD도 40대이고, 최근 영화가에 복고 열풍을 일으킨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 역시 40대다. 방송가나 영화가를 통틀어 대중문화 전반에서 가장 정력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제작자 대다수가 거의 40대에 걸쳐 있다는 건 이들이 갖고 있는 세대 간의 교량적 위치나 또 그 나이에서 나오는 능숙함이 지금의 소비자들과 잘 소통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들 40대 출연자와 제작자가 주목받고 있는 건 달리 말해 동시대를 살고 있는 40대 소비층 역시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벌어진 일종의 문화 현상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여지없이 40대가 존재한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대성공 이후, 1990년대라는 복고의 지점이 하나의 성공 코드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40대가 존재한다. 최근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으로 다시금 1990년대 열풍이 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무한도전>이라는 공간에서 40대의 정서를 사로잡는 콘텐츠와 그들과 함께 나이 들어온 1990년대 가수들이 만나 시너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콘서트를 가득 메운 관객 역시 동시대를 살아왔던 40대들이다.

웹툰에서부터 출판 만화, 나아가 드라마로까지 성공하며 신드롬을 만들었던 <미생> 열풍에도 40대 남성들의 힘은 지대했다. 물론 웹툰에는 좀 더 젊은 세대들이 공감했지만 200만부 이상 팔린 만화와 케이블 채널로는 무려 7%가 넘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미생>에는 20·30대 여성과 40대 남성층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들의 힘겨운 삶에 대한 공감이 40대로 하여금 채널을 고정시키게 했고 또 출판가의 초대박 베스트셀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 어촌 편에 출연한 차승원(왼쪽)과 유해진. ⓒ tvN
낀 세대 아닌 양 세대 엮는 역할

이런 흐름은 영화계의 최근 몇 년간의 티켓 파워가 40·50대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지난해 하반기 1000만 관객을 이끈 <국제시장>이나 올해 개봉한 <강남 1970> 같은 영화는 지금의 주 타깃층이 40·50대로 거슬러 올라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영화계 전반에 흐르고 있는 복고와 향수는 바로 이 달라진 타깃의 기호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

지금의 40대는 수많은 과도기를 겪으며 살아왔다. 아버지 세대가 일과 성공의 시대를 살았다면 이들은 놀이와 행복의 시대를 구가하려 노력한다. 아버지 세대가 가부장적 전통 속에서 수직적 권위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면 이들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보여주는 것처럼 아이들과 수평적인 소통을 꿈꾸는 아버지로 돌아왔다. 아버지 세대가 민주화라는 거대담론의 이상을 부르짖었다면 이제 이들은 저 무수한 관찰 카메라 예능이 보여주는 것처럼 일상 속의 소소한 발견들에 더 집중하고 있다. 물론 현 세대의 걷잡을 수 없는 디지털 속도 속에서 이들은 최근의 복고 열풍처럼 거꾸로 아버지 세대의 느릿느릿했던 아날로그를 꿈꾸기도 한다. 중간에 걸쳐진 그들은 마치 낀 세대처럼 보였으나 지금은 이 양 세대를 엮을 수 있는 시대적 대안처럼 등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많은 프로그램에서 주로 40대와 작업을 해왔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런데 확실히 40대는 인생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하다. 일에서도 어느 정도 프로페셔널한 데다 일상에서도 무언가 즐길 줄 아는 모습이다. 그러니 캐릭터가 중요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40대가 훨씬 용이한 면이 있다. 요즘은 재미만 갖고는 안 된다. 어떤 진솔한 무게도 줘야 하는데 40대는 그 양면을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힘이 있다.

자신도 이제 40줄에 접어들었는데,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란 책을 보면 마흔에 대한 남다른 감회가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때는 마흔이 낼모레였던 시기인데…. 마흔 하면 무언가 인생의 전환기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다. 그래서 한 번쯤 이 시기를 정리하고 싶었다. ‘마흔을 준비하는 100일의 휴가’라는 부제를 붙인 것도 그래서였다. 그때 무작정 아이슬란드에 가서 지내며 그동안 살아왔던 시간들을 반추해봤다. 마흔은 그런 나이 같다. 무작정 달려왔다면 한 번쯤 멈춰서 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을 생각해보는 그런 나이.

40대가 최근 문화계의 주요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요즘 문화는 과거보다 조금씩 성숙해진 듯하다. 과거 1980년대나 1990년대 문화가 ‘청년기의 문화’처럼 여겨진다면 지금의 것은 ‘중년기의 문화’처럼 다가온다. 그만큼 재미도 다양해졌고 깊이도 생겼다. 옛날처럼 그저 웃기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게 요즘의 재미라고 해야 할까. 이것은 많은 제작자가 청년기를 지나 중년에 다다랐기 때문인지, 아니면 문화의 수용층이 그렇게 함께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지, 둘 다인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조금은 성숙해지고 다양해져가는 문화가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확실히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은 요즘 중년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보여주려는 건 없다. 다만 출연하는 분들이 그런 면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걸 잘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확실한 건 스스로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의 상태가 그랬지만, 도시의 삶에 지쳐서 어딘가 콕 박혀 밥이나 챙겨먹고 싶은 그런 정서가 요즘은 (보편적으로) 있다는 점이다.

40대에게 혹은 40대가 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 마흔에 접어드는 초심자가 무슨 조언을 해줄 수 있겠나. 다만 40대는 무언가 자기만의 삶을 찾을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청춘의 방황과 갈등들이 마흔쯤 되면 하나의 밑거름이 되는 것 같다. 물론 마흔이 되면 또 그 나이의 고민이 새롭게 생길 테지만, 그래도 조금은 능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진짜 인생을 느끼고 살 수 있는 나이가 마흔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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