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가 지하경제인가
  • 김갑순 | 동국대 경영대 교수 ()
  • 승인 2015.01.2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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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조세정책 합리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아

‘13월의 세금 폭탄’ 논란으로 불거진 연말정산 대란에 대해 1월20일 오후 정부와 새누리당은 당·정 협의를 갖고 보완책을 발표했다. 당·정은 다자녀 가정 및 출산 공제 확대와 함께 독신 근로자의 표준 세액공제를 상향하고, 국민 노후 생활 보장 지원을 위해 연금보험료 세액공제율을 높이기로 결정했다. 폐지했던 출생·입양에 대한 세액공제도 신설하기로 했다. 이 같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4월 국회에서 야당과 협의해 이번 연말정산 귀속분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할 수 있도록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만으로 이번 연말정산 사태를 촉발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지 의문이다. 국민을 화나게 한 요소는 단지 정부가 2013년 세법개정안 확정 당시 발표했던 연봉 55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에게는 추가 세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했던 약속 때문만은 아니다. 대다수 납세자는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세 부담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몇 만 원 또는 몇 십만 원의 세금 증가에도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현 정권이 집권 이후 추진해온 조세정책의 방향과 세제 개편 과정이 합리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삼모사의 극치’ 연말정산 세액공제

2013년 세법개정안에 포함돼 있던 종교인 과세는 슬그머니 이듬해로 미뤄지더니 지난해 국회 입법 과정에서는 기약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담뱃세는 어떠한가. 국민의 건강 증진만을 위한 목적에서 필요한 일이라고 정부는 언론 인터뷰 때마다 주장했다. 그러나 국회 처리 과정에서는 담뱃갑에 경고 문구를 추가하자는 건강증진법 개정안이 부결됐다. 담뱃세 인상의 주된 목적이 증세에 있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새누리당은 증세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민에게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좀 더 고통을 분담해달라는 진정성 있는 설득으로 공감을 얻지 못했고, 형평성 있는 대안을 제시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데도 소홀했다.

연말정산에 대한 많은 근로소득자의 볼멘소리는 이러한 정부와 여당의 잘못된 조세정책에 대한 비판과 질책이다. 1월20일 발표한 정부와 새누리당의 당·정 협의안을 보면 교육비 공제와 의료비 공제에 대한 보완 대책은 빠져 있다. 또한 세액공제 방식을 소득공제 방식으로 환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번 연말정산 사태를 불러온 2013년 소득세법 개정의 핵심 내용은 소득공제 항목을 세액공제 항목으로 전환한 것이다. 전환의 명분은 소득 재분배였다. 세제 개편으로 소득 재분배 효과가 강화되려면 소득 수준이 높은 고액 근로자들의 세금 증가율도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소득공제 항목을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방식은 그 특성상 근로소득이 증가할수록 일관되게 세 부담이 늘어나도록 설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방법이다. 근로소득자별로 워낙 형편이 다양한지라 소득이 낮은 사람도 많은 소득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고 반대로 고소득자라 할지라도 교육비·의료비 등의 소득공제 항목을 거의 적용받지 못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게 되면 세 부담 증가율의 변화는 소득 증가에 따라 들쭉날쭉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원천적으로 소득세는 개인의 소득에서 비롯된 세  부담 능력을 측정해 과세하는 세금이다. 소득세는 법인세·부가가치세 등 다른 세금과 비교해 세 부담이 직접적이고 궁극적이다. 그래서 어떤 세금보다 부담의 공평성이 중요하다. 조세 이론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공평성은 수평적 공평성과 수직적 공평성이 동시에 만족될 때 달성될 수 있다. 수평적 공평성은 세금부담 능력이 동등한 납세자 간에 같은 금액의 세금이 부과될 때 달성된다. 수직적 공평성은 세금 부담 능력이 더 큰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할 때 이뤄진다.

1월20일 최경환 기획재정부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연말정산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말

소득세법에서 납세 의무자인 거주자 개인의 세금 부담 능력을 측정한 것을 과세표준이라 한다. 과세표준은 개인이 벌어들인 총 소득에서 담세 능력이 없는 필수적인 경비를 제외하고 계산한다. 예컨대 부양가족이 없는 놀부와 부양가족이 많은 흥부의 연봉이 모두 7000만원이라고 해도 두 사람의 세금 부담 능력이 같다고 볼 수는 없다. 개정 전 소득세법에서는 세금 부담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부양가족이 많아 교육비와 의료비 등 어쩔 수 없는 지출이 많은 흥부의 연봉에서 일정 한도 내에서 소득공제라는 이름으로 제외해줬다. 즉 두 사람의 근로소득이 7000만원으로 같더라도 필수 지출이 1000만원인 거주자의 과세표준은 6000만원이고, 필수 지출이 2000만원인 거주자의 과세표준은 5000만원이 되는 것이다. 즉 소득공제는 수평적 공평성 실현을 위해 납세자의 세금 부담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목적의 수단인 것이다.

소득세법에서 수직적 공평성과 소득 재분배의 실현은 세율의 몫이다. 그러므로 소득 재분배 효과를 강화하려면 세율 체계의 구간 폭을 축소하거나 신설하고 세율의 누진도를 적절하게 손보는 것이 정도(正道)다. 2013년 소득세법 개정 당시 박근혜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세율 인상 이외의 증세 방법을 찾다 보니 수평적 공평성의 실현 수단인 소득공제를 소득 재분배를 위한 수단으로 잘못 사용하고 말았다.

이번 연말정산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증세 목적으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한 데 있다. 그러므로 비록 소급해 몇몇 소득공제 항목의 공제율을 높이거나 새로 도입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점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국민은 정부와 여당이 진정으로 그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소득 재분배를 통한 조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세법을 개정한다고도 믿지 않는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올바른 조세정책을 펼치고자 한다면 4월 국회에서 논의될 소득세법 개정은 소득공제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근로소득자는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좀 더 부담하는 것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이 어찌 소득 재분배를 위한 조세 개혁의 첫 번째 순서에 자리 잡아야 하는가를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고액 연봉 소득자, 고액 금융 소득자, 고액 부동산 임대사업자, 고소득 자영업자, 대자산가의 소득에 비해 조세형평이 크게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약속한 지하경제 양성화가 성과를 거뒀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데 지하경제가 없는 근로자에게만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추가 조세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부당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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