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 없이 일 도모하는 건 배신, 모든 자리에서 내려오게 할 것”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1.28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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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지난해 말 재일교포 송년회에서 신동주 퇴출 관련 토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60)이 지난해 12월16일 일본 롯데그룹 주요 보직에서 해임된 이유가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92)의 동의 없이 한국 롯데 지분을 매집했기 때문이라는 주변인들의 전언이 나왔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 12월 중순 일본에 있는 지인들과의 송년회 자리에서 신 전 부회장의 해임 사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신 전 부회장의 해임 사유와 관련해 여러 가지 말이 나왔지만, 간접적으로라도 신 총괄회장의 입을 통해 그 배경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영 악화설·불화설 사실 아닐 가능성 커

신 총괄회장이 이 같은 발언을 한 모임은 일본 최대 파친코업체 ‘마루한’의 한창우 회장(83) 등을 비롯한 재일교포 한상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자리였다. 신 총괄회장은 고령으로 인한 건강 문제 때문에 외부와 접촉이 거의 없지만, 매해 5월 고향인 울산 울주군에서 여는 고향 잔치와 연말 재일교포 한상들과의 송년회 자리는 빠지지 않는다.

ⓒ 뉴스뱅크이미지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인사의 전언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신 전 부회장이 (자신의) 허락 없이 (한국 롯데) 지분을 매입해 마치 롯데에 큰일이 일어난 것같이 외부에 비쳐졌다”며 “곧 모든 자리에서 내려오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신 전 부회장은 이 자리가 있은 후 며칠이 지난 지난해 12월26일 일본 롯데상사 대표이사직과 롯데상사·롯데아이스 이사직에서 해임됐다. 또한 그는 1월8일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부회장직에서도 해임됐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신 총괄회장이) 신 전 부회장의 지분 매입 자체보다는 그것으로 인해 가족 간에 분란이 일어난 것처럼 외부에 알려졌고 더 나아가 내부에서도 동요가 있었던 것에 대해 더 화가 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업’의 개념이 강한 일본에서는 부친의 허락 없이 어떤 일을 도모한다는 것 자체가 ‘배신’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며 “신 전 부회장도 이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다 할 불만 없이 순순히 물러난 것 같다”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이 해임 직후인 1월1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가족회의에 참석했음에도 별다른 잡음 없이 마무리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신 총괄회장의 발언대로라면 그동안 한국과 일본 언론에서 보도됐던 경영 악화설이나 전문경영인과의 불화설 등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신 전 부회장은 2013년 8월부터 1년 동안 한국 롯데제과 주식을 꾸준히 매입해 지분율을 3.96%까지 높였다. 동생이자 롯데제과 3대 주주인 신동빈 회장(59)의 지분율 5.34%에 불과 1.38% 차이로 다가선 것. 언론에서는 롯데제과가 롯데그룹 순환출자의 정점에 있다는 이유에서 신 전 부회장의 지분 매입을 장남과 차남 간 경영권 분쟁의 신호탄으로 봤다. 한국 롯데 측은 외부의 이러한 시선에 대해 “한국은 신동빈 회장, 일본은 신동주 부회장이란 구도는 변함이 없다”고 했지만, 당시 내부에서는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경영권의 향방을 주의 깊게 살피는 분위기가 있었다.

특히 내부에서는 신 부회장이 주로 매입하고 있는 주식이나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사업 부문이 모두 롯데그룹의 뿌리인 식품 분야라는 점에 주목했다. 어느 기업이나 기업을 일으킨 사업이 무엇이고, 자녀들 간 계열 분리 때 이 사업을 가져가는 것이 그룹의 ‘적자’(嫡子)가 됐다는 논거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롯데의 경우 제과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해 9월 기자와 만났던 롯데 측 한 임원이 “신동주 부회장이 한국 롯데의 계열사인 롯데제과 주식을 매입하고, 동남아에서 한국 롯데와 제과 사업 경쟁을 벌이는 것은 롯데그룹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제과 분야에서 우위를 가져감으로써 본인이 롯데그룹의 후계자임을 확고히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당시 내부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신동주 해임 ‘일시적 충격요법’에 무게

신 총괄회장은 지난해 12월 중순 한상 송년회에서 신 전 부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한 조치가 영구적인 것인지 일시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신 총괄회장 주변이나 롯데그룹 내부에서는 ‘일시적 충격요법’ 쪽에 무게를 싣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신 전 부회장은 여전히 한국과 일본 롯데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 롯데 역시 전문경영인의 손에 임시로 맡겨진 상황이다. 신 전 부회장의 해임으로 일본 롯데홀딩스를 이끌게 된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佃孝之·72)은 신 총괄회장의 와세다 대학 후배로, 2009년 6월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발탁됐다. 현재는 신 총괄회장의 일본 내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롯데쇼핑 측의 한 임원은 이번 조치가 신 전 부회장의 지분 매입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전제로 이렇게 얘기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는 지분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따라서 분명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 언제든지 ‘형제의 난’이 벌어질 수 있는 만큼, 신 총괄회장이 이런 불상사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미리 경고의 메시지를 준 것일 수 있다. 신 총괄회장은 형제간 분란이 일어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동주·동빈 형제와 배다른 남매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나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에게 미리 지분이나 사업을 떼어준 것도 비슷한 이유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이 예년 같지 않다는 말도 지인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설은 몇 해 전부터 꾸준히 흘러나왔다. 특히 매년 참석하던 울주군 마을잔치에 가지 않으면서 건강 이상설이 힘을 받기도 했다. 롯데 측은 형제간 갈등설이 불거졌을 때도 오너 개인의 일은 알 수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신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설만큼은 강하게 부인해왔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은 매년 말 한상 모임에서 ‘조니워커 블루’를 반 병씩 비웠는데 올해는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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