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도 부르는 판에…”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1.2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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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자원개발 국조특위, 최경환 증인 채택 두고 여야 전운

“국제협력·통상·자원외교 등에서는 대통령님을 모시고, 혹은 제가 대표가 되어 세계 각지를 누비면서 우리 기술의 세일즈와 자원외교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명박(MB)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1년 1월27일 과천정부청사에서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장관이 이임사를 통해 직접 한 발언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4년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그는 자원외교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기업의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장관이 하라 마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월권이다.” 3년의 시간 동안 자원외교에 대한 그의 입장은 이렇게 달라졌다.

해외자원개발 실패에 대한 책임은 MB 정부뿐 아니라 현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지경부 차관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이 주장하는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나와야 할 자원외교 5인방’에 포함됐다. 그중에서도 특히 최 부총리가 타깃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친박(근혜)’ 핵심으로 꼽힌다. 더욱이 지금 연말정산 증세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자원외교라는 또 다른 불씨가 옮겨 붙을 경우 박근혜정부의 권력 관리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청와대 등 여권은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2010년 2월11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양국 협정 서명식장에서 최경환 지식경제부장관과 노로프 우즈벡 외교부장관의 대체 에너지 개발 분야 협정식을 지켜보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여야가 자원개발 국정조사를 하기로 협상했던 지난해 말 당시만 해도 자원외교 문제는 순탄하게 풀릴 조짐을 보였다. 전임 정권인 MB 정부의 비리로 치부되어왔고, 그래서 모처럼 여야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지경부장관이었던 최 부총리에 대한 책임 논란이 가열되면서 여권의 기류는 달라졌고, 적극적인 방어선을 구축하는 모양새다. 현 정권 최고 실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최 부총리가 증인대에 서게 될 경우, 박근혜정부에 미칠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정권 실세가 국민적 공분을 사는 사건에 연루되면 레임덕을 가속화시킨다. 야당이 최 부총리를 집중 공략하고자 하는 노림수도 여기에 있다.

“최경환은 최소한 무능 아니면 직무유기”

야당은 이미 최 부총리가 증인대에 서는 것을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으로 못 박고 있다. 이는 국조특위가 꾸려지기 전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 MB 정부 자원외교 실패에 대한 논란이 한창 뜨거웠던 지난해 11월 말, 해외자원개발 국조특위 위원장인 새정치민주연합 노영민 의원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최 부총리와 윤 장관 등 현 정권에도 참여하고 있는 당시 인물들은 해외자원개발 실패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 두 사람은 현 정권 사람이면서 전 정권과 연결된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현 정권 실세를 이전 정권 때의 일로 국감 증인석에 세울 수 있을까. 야당은 현재까지 진행 상황으로 봐서 “전혀 문제가 없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국조특위 위원인 새정치연합 홍익표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캐나다 정유사 하베스트 날 인수 등 최 부총리의 지경부장관 재임 시절에 자원외교가 가장 활발히 이뤄졌다.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도 최 부총리에게 보고를 했다고 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서 있어, (최 부총리가) 나와서 해명할 의무가 있다. 산하 공기업에서 수조 원의 국부가 유출됐다. 주무 장관으로서 설사 몰랐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무능 아니면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최 부총리와 윤 장관 등 현 정권 인물들에 대한 자원외교 관련 개입 정황 자료를 전 방위적으로 확보 중이다. 이미 지난 1월20일엔 일종의 ‘맛보기’로 “윤상직 장관이 자원외교 관련 자료 왜곡을 시도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야당 소속 국조특위 위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산업통상부는 지난해 11월 윤 장관의 직접 지시로 소위 ‘해외자원개발 현황 및 주요 쟁점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윤 장관이 직접 계정 항목까지 지정했다”고 주장했다. 산자부 자원개발전략과의 한 사무관이 지난해 11월5일 산자부 내 투자관리팀과 회계팀 등에 보낸 이메일 내용이 그 근거 자료였다. 메일 내용은 “투자 통계와 관련해 그간 여러 번 요청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장관님께서 직접 계정 항목까지 적어주셔서 자료를 재차 요청하게 됐다. 동 자료는 장관님께서 향후 국회 등 defend(방어) 시 본인이 참고할 raw material(기초 자료)로 쓸 자료라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 연합뉴스
새정치연합은 윤 장관과 더불어 최 부총리도 이 작업을 합작한 장본인으로 보고 있다. 윤 장관 주문으로 얻어진 해당 자료가 최 부총리에 대한 긴급현안질의 때 자원외교와 관련한 답변 자료로 쓰였다는 것이 근거다. 이 문제를 추적해온 새정치연합의 한 인사는 “관련 자료는 최 부총리와 윤 장관 딱 두 명에게만 전달됐다고 한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겠나”라고 말했다.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의 핵심은 결국 ‘증인 채택’이다. 최 부총리와 여당은 관련 의혹들을 ‘정치 공세’라고 일축하지만, 최 부총리를 세우고자 하는 야당의 준비가 만만치 않아 여의도는 물론 청와대 역시 국조특위의 움직임을 긴장하며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노영민 국조특위 위원장은 “과거 인사청문회 때도 그렇고 장관 시절에도 그렇고, 최 부총리는 기금까지 동원해 자원외교를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 전직 대통령도 증인으로 부르려는 판국에 최 부총리를 못 부를 것이 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감사원 사무총장도 증인대 서나 


이번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에 감사원 사무총장도 증인으로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국회 해외자원개발 국조특별위원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증인대에 서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관계자 및 감사원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인사에 따르면, 김 총장이 증인대에 서는 것 역시 최경환 현 경제부총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감사원은 지난 1월2일 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 날 인수’와 관련해 강영원 당시 석유공사 사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야당은 “강 전 사장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운다”며 ‘꼬리 자르기식 감사’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박완주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감사원은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장관에 대해 ‘지경부장관이 사업 내용을 자세히 알거나 승인할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따로 조사하지는 않았다’고 했는데, 담당 장관이 모르면 누가 안다는 말이냐”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강영원 전 사장은 하베스트 인수 전 최경환 당시 장관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감사원은 “(최 당시 장관이) 구체적 지시 없이 잘해보라는 수준으로 말했는데, 이것만으로 조사할 수는 없었다”고 해 최 부총리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야당은 김 총장을 불러 해당 감사에 대해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전·현 정권 인사들과 더불어 감사원까지 국정조사 증인으로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원외교 국정조사가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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