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결함이다” vs “운전자 과실이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1.0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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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박병일 정비 명장 소송전 결말은?

현대자동차는 11월19일 차량정비소를 운영하는 박병일 카123텍 대표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 대기업이 개인을 상대로 고소를 하는 경우는 이례적이어서 세간의 관심도 사뭇 뜨겁다. 현대차 관계자는 “박 대표가 전문가 지위를 이용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일반인들이 접하는 방송을 통해 알려 차량 판매에 타격을 입었다”고 고소 배경을 설명했다. 박 대표는 44년 동안 차량 정비 일을 해왔고 2002년 고용노동부로부터 명장 칭호를 받은 자동차 정비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관련 자격증 17개에 정비 관련 서적도 37권을 냈다. 박 대표는 언론을 통해 급발진, 엔진 결함 등과 관련해 여러 문제를 제기했다. 그 가운데 현대차가 문제 삼은 것은 아반떼 엔진룸 누수, 아반떼 에어백 센서 방수, 투싼 에어백 미전개 사고, 송파 버스 사고, 걸그룹 사망 사고 등 5가지다.

현대자동차와 박병일 대표(오른쪽 사진)가 차량 결함 여부를 놓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구윤성
현대차 “운전자 과실 결론 난 것도 문제제기”

우선, 아반떼 엔진룸 누수 문제에 대해 박 대표는 “옛날에 만든 포니도 엔진룸에 물이 들어오지 않는데 아반떼 엔진룸에는 물이 샌다. 더 큰 문제는 물이 메인 배선에 떨어진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엔진이나 전기 배선은 방수처리가 돼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반박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방수 처리가 돼 있어도 지속해서 물이 닿고 습기가 차면 오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두 번째는 아반떼 에어백 센서의 방수 문제다. 현대차는 “방수 처리된 센서를 두고 방수 처리가 안 된 것이라고 방송에 인터뷰한 것은 엄연히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외국산 에어백 센서는 물속에 집어넣어도 될 정도로 방수 처리가 확실하다. 그러나 현대차의 센서는 플라스틱 조각을 센서에 붙여놓은 정도여서 진동·습기 등으로 접착력이 떨어지고, 센서에 습기가 차면 에어백이 터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2013년 충북 충주에서 투싼 차량이 도로변 바위를 들이받아 20대 운전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차량은 크게 파손됐지만 정면과 측면의 에어백이 팽창하지 않았다. 박 대표는 “시속 30㎞ 미만이어서 에어백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현대차는 주장한다. 센서 일부가 깨졌고, 차체가 구겨지고, 의자가 뒤틀릴 정도에 사망자까지 생겼는데, 속도가 30㎞를 넘지 않았다는 주장을 누가 믿겠는가. 에어백 센서 불량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30㎞ 이하 속도라도 차체는 심하게 찌그러질 수 있다. 또 에어백은 속도뿐만 아니라 충돌 당시 여러 조건이 맞아야 전개된다”며 운전자 과실에 무게를 실었다.

지난해 3월 19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송파구 버스 사고는 졸음운전이 원인이라는 게 경찰의 결론이다. 이에 대해서도 박 대표는 차량 자체의 결함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1차 원인은 운전자의 졸음이지만, 2차 원인은 차량 문제일 수도 있다. 버스 기사가 약 2㎞를 질주하면서 두 번이나 택시를 피하고 핸들을 꺾어 공사 구간으로 차를 몬 행동은 차량의 급발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폐쇄회로 TV를 보면 운전자가 졸면서 운전하다 사고가 난 게 확실하고, 이미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걸그룹(레이디스코드)을 태운 스타렉스는 시속 135㎞로 고속도로를 달리다 빗길에 미끄러져 방호벽을 들이받았다. 2명이 숨진 이 사고는 과속으로 차를 몰았던 매니저의 과실로 결론이 났다. 당시 차량의 바퀴가 빠져 차량 결함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현대차는 “안전띠를 매지 않은 사람이 사망한 사고이고, 바퀴가 빠진 것은 충돌로 일어난 일”이라며 운전자 과실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서는 박 대표도 일부 인정하면서 “현대차 측이 내 인터뷰 발언의 맥락을 오해한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당시 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바퀴가 빠질 정도라면 차량 결함이 맞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충돌한 이후에 바퀴가 이탈한 것이어서 차량 결함보다는 운전자 과실에 의한 사고’라고 했는데, 현대차는 인터뷰 앞부분만 듣고 오해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박 대표 “무혐의 나면 현대차 고소할 것”

대기업과 개인의 법적 다툼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교된다. 명장 칭호까지 받은 정비 전문가의 지적에 대해 대기업이 고소까지 한 것은 지나치지 않으냐는 지적도 있다. 직장인 김영준씨(55)는 “나도 현대차를 운전하지만, 품질에 대한 전문가의 쓴소리에 대기업이 고소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비판 여론까지 감수하면서 오죽했으면 고소까지 했겠느냐는 게 회사 측 항변이다. 고소라는 강수를 꺼내든 배경에 대해 현대차는 “처음에는 문제제기 차원으로 생각하며 계속 모니터링해왔는데, 이제는 그 수준을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의 고소 후 박 대표는 경찰에 두 번 출두했다. 과거 방송 내용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자리였고, 경찰은 소송 내용을 더 살핀 후 추후 정식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무혐의를 확신한다는 박 대표는 “실험하지 않았으면 모르지만 나는 실험도 했고 증거도 있다. 대기업이 나 같은 개인을 우습게 볼지 몰라도 44년 정비 경력자가 현대차에 있는지 묻고 싶다”며 “무혐의가 되면 나도 현대차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해 기술자를 우습게 보는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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