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계절, 떠나는 자와 남는 자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4.12.1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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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원 퇴출 칼바람…경기 불황·실적 부진 등으로 승진자 확 줄어

2014년을 마무리하는 때다. 유난히 추운 올해, 재계에도 혹한이 몰아치고 있다. 대기업이 연말 인사를 통해 ‘인원 감축’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현대중공업이 감축 신호탄을 쏴 올린 이후 재계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올해 3조원대 누적 적자를 내며 위기에 빠졌던 현대중공업은 임원 262명 중 31%인 81명을 줄이는 대대적인 임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 과장급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성과 위주 연봉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경쟁 체제’를 선포했다. 경제 불황과 기업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삐를 바짝 조인 것이다.

가장 좌불안석인 사람은 대기업의 ‘별’이라 불리는 임원들이다. 실적이 부진한 기업의 경우 임원 문책 인사가 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업의 임원 인사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내부에서 비밀에 부쳐져 있지만, 대기업 인사가 하나둘 진행되면서 2014년 연말 임원 인사가 윤곽을 드러냈다. 올해 인사의 핵심 키워드는 ‘축소’와 ‘안정’이다. 

■ 삼성전자, 실적 부진 문책성 인사 폭풍

삼성은 12월4일 임원 인사를 마쳤다. 총 353명이 승진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2011년 501명, 2012년 485명, 지난해 476명에 비하면 100명 이상이 줄었다. 단 3명의 사장 승진자를 배출했던 사장단 인사에 이어 임원 인사에도 찬바람이 불었다. 직급별로는 부사장 승진자 42명, 전무 58명, 상무 253명이다.

예년에 비해 실적이 부진했던 삼성전자는 문책성 인사를 했다. 삼성전자의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3분기 동안 매출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9.41% 줄어들면서 153조원으로 떨어졌다. 이 기간 동안 당기순이익은 지난해(23조173억원) 대비 22%가량 감소한 18조475억원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삼성전자 전체 승진 규모도 165명에 그쳤다. 2012년 226명, 2013년 227명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확대되면서 커졌던 무선사업부 인력과 조직도 축소됐다. 승진자 명단에서 무선사업부 임원은 단 세 명뿐이었다. 지난 3분기 동안 IM(IT·모바일) 부문 영업이익이 73.8% 감소한 실적이 반영된 것이다. 실적이 부진한 삼성디스플레이도 지난해 29명에 비해 임원 인사 규모가 절반으로 감축됐다. 또 신규 선임 임원(15명)보다 많은 임원이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도 실적이 좋았던 메모리사업부는 승진 규모가 소폭 늘어났다. 2012년 14명, 2013년 20명이던 승진자가 22명으로 증가했다. 삼성 측은 “메모리사업부는 눈에 띄지 않게 분기당 2조원 정도의 실적을 올리는 캐시카우 역할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며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삼성의 원칙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삼성 측에 따르면 이번에 옷을 벗은 임원 수는 신임 임원 200명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 SK·GS, 실적 부진으로 인사 규모 확 줄어

SK그룹은 하이닉스 투자뿐 아니라 영업 측면에서도 최태원 회장 역할을 늘 강조해왔다. 그룹 오너와 최고경영자의 결단이 ‘투자 시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이다. 총수가 부재 중인 SK그룹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주력 계열사 실적이 모두 부진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 매출액이 2.1% 감소했고, 2014년 3분기에 낸 4억8700만원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90% 이상 줄어든 초라한 실적이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 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네트웍스·SK C&C 등 4개 주력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모두 바꿨다. 특히 국제 유가 급락으로 사상 최악의 실적 부진을 우려하는 SK이노베이션이 어떻게 위기를 돌파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일하게 실적이 좋았던 SK하이닉스 박성욱 사장은 유임됐지만 승진 30명, 신규 선임 87명 등 총 117명의 승진 인사는 지난해 141명에 비해 줄어든 규모다. SK 측은 “에너지·화학 등 그룹의 핵심 사업 영역에서 경영 환경이 악화됐다. 실적도 부진했기 때문에 화두가 ‘위기 극복’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 8위 GS그룹도 임원 인사 규모가 확 줄었다. GS그룹은 12월2일 정기 임원 인사를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44명의 임원 인사가 이뤄졌지만 올해는 29명에 그쳤다. GS칼텍스는 지난 6월 이미 대규모 조직 개편을 시행했기 때문에 보직 이동만 하고 조직 변경이나 임원 승진 규모를 최소화했다. GS리테일은 영업본부를 신설해 영업력을 키웠고, GS홈쇼핑 역시 영업 인력을 신규 임원으로 선임해 경쟁 체제를 강화했다.

■ LG그룹, 실적에 맞는 ‘보상 인사’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그룹에서는 부사장 13명, 전무 30명, 상무 신규 선임 84명 등 모두 130명의 임원이 승진했다. 지난해 126명보다 조금 늘어났다.

LG그룹은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 주력 계열사에서 두 자릿수 이상의 실적 성장률을 보인 만큼 올해 인사에도 반영될 것으로 관측됐고, 실제로도 적으나마 임원 인사가 늘어났다. LG전자는 올 3분기 동안 매출 44조5656억원을 기록했고, 순이익은 지난해에 비해 2.47배 증가했다. 특히 MC(모바일 커뮤니케이션)사업본부에서 매출 4조2470억원, 영업이익 1674억원을 기록했다. 휴대전화 부문에서 매출 4조원대를 달성한 것은 2009년 3분기 이후 처음이다. 성과주의에 기반을 둔 인사가 돋보이는 LG그룹답게 실적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임원 인사로 이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 SKT는 ‘혁신’,  KT·LGT는 ‘안정 추구’

이동통신 3사도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을 마무리 지었다. LG유플러스가 11월28일 테이프를 끊었다. 올해 임원급 승진 인사를 지난해의 절반인 5명으로 줄였는데, 2010년 LG텔레콤 등 3사 합병 이후 최소 규모다. 법률 부문 인력을 중시한 게 주목된다. 최근 겪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으로 인한 불안한 상황과 요금 인가제, 불법 보조금 사업자 등 법률적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내년에 조직 안정·성장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인사가 주를 이뤘다”고 밝혔다. 특히 LG유플러스는 아이폰6 대란과 관련해 장려금을 지급한 건, 기업 메시징 사업으로 인한 공정거래법 위반 건에 대규모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조직 안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SK텔레콤도 성장세가 주춤했다. SK텔레콤은 올 3분기까지 당기순이익이 지난해 동기 대비 2% 감소했다. 4년째 SK텔레콤을 이끌어 온 하성민 사장 대신 장동현 SK플래닛 최고운영책임자가 사장으로 선임됐다. 1963년생인 장 사장은 SK그룹 사장단 중에서도 연차가 낮은 편에 속한다. 현재의 유무선 통신업이 갖고 있는 성장 정체 위기를 ‘젊은 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연말 대규모 임원 감원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KT는 지난해와 비슷하게 24명의 임원 인사를 단행해 ‘실무형’ 중심으로 임원진을 꾸렸다. 핵심 부문 임원들을 유임시키고 상무 이상 인원 수도 거의 바꾸지 않았다. 지난해 황창규 회장이 취임하면서 ‘인력 효율’을 위해 임원 수를 70%가량 감축하고 임원급 직책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던 점을 볼 때 내년에 추가적으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이동통신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 현대차그룹·롯데그룹 인사에 관심 집중

12월 말 인사가 예정돼 있는 현대차그룹과 2015년 1월에 인사가 예정돼 있는 롯데그룹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롯데그룹은 최근 롯데월드몰 부실 공사 논란과 신헌 전 롯데쇼핑 대표 구속 등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현대차그룹은 10조5500억원에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를 인수한 이후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주가가 20% 가까이 빠졌다. 여기에 실적 둔화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국내에서 현대차와 기아차 실적이 다소 부진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승진 규모는 크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연중 상시로 진행되는 ‘수시 인사’가 주를 이루고, 나간 임원이 다시 재배치되는 ‘회전문 인사’도 이뤄진다. 이미 고위 경영진 수시 인사가 단행된 만큼 연말에 내부 임원 인사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증’ 받고 ‘실적’ 올려야 살아남아 


대기업 임원에 대한 ‘검증 절차’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상사평가만 잘 받아도 (임원이 될)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일명 ‘어세스먼트(assessment)’라 불리는 이 절차는 성과평가·구성원 인터뷰(다면평가)·시뮬레이션 테스트·외부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임원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 결과를 임원 승진에 반영하고, 약점을 파악해 맞춤형 교육을 하는 데 활용한다. SK그룹은 2005년부터 이 절차를 시행해 임원들의 ‘직무역량’과 ‘리더십’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임원은 상법상 임원과 운영상 임원을 함께 일컫는다. 상법상 임원은 ‘등기이사’를 말한다. 최근 삼성전자의 임원과 직원의 연봉 차이가 70배가 넘는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지만 이는 ‘등기이사(통상 대표이사)’의 연봉으로 계산된 수치다. 등기이사가 아닌 전무나 상무 직급 임원들의 연봉은 공개되지 않는다. 이렇게 현실적 지위와 법률상 지위를 아우른 임원 단계도 축소되는 모양새다. 과거 기업 임원은 회장-부회장-대표이사-사장-부사장-전무-상무-이사로 구성돼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사’ 직급을 줄였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장-부사장-전무-상무 4단계로 축소되는 추세라서 임원에 오르는 일이 더 힘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임원들이 옷을 벗는 이유는 성과를 못 냈거나 전문성이 없을 때다. 전문성이 검증돼 임원에 오르더라도 실적을 내지 못하면 퇴출되기 십상이다. 때문에 임원은 매년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임원으로 발령이 나자마자 해당 부서의 성과가 좋은 경우 임원에게 단기 성과급을 줬지만, 이제는 임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최종 성과가 났다고 판단될 때 스톡옵션 등으로 보상을 해준다. 장기적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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