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진 지켜본다, 그다음엔 전쟁도 불사”
  • 서상현 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12.0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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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계 수시로 뭉쳐 정국 논의…정기국회 끝나면 ‘시즌 2’ 시작

‘친박(親朴)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언론에 알려지기로는 11월17일과 18, 19일 공·사석에서 연이어 친박 회동이 있었다지만, 실상은 그 훨씬 전부터 ‘삼삼오오 세력 도모’는 있어왔다고 한다. 김무성 당 대표 체제가 들어선 직후부터 이런 회동과 모임은 꾸준하다. 이런저런 모임에 빠지지 않는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 친박이 계획표를 짜놓고 이날은 누구, 이날은 누구 주도하에 모임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날 누가 샀으니 이번에 제가 사겠다, 이 정도다. 그런데 이런 회합을 하다 보면 정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고, 다음 날 언론에서 이것저것 물어오니 답을 안 할 수도 없다. 모임의 성격이 확대 해석되는 경향이 있어 말하기가 꽤 조심스럽다.”

11월19일 친박계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주최로 열린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초청 강연회’에서 최 부총리(왼쪽)가 서청원 최고위원과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유기준 의원. ⓒ 뉴시스
“확대 해석하지 않기 위해 물어본다. 무슨 이야기들 하시느냐”는 기자의 뒤이은 질문에 이 의원은 속 시원한 답을 들려줬다. “기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역할을 최대한 뒷받침하자고 투합한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도 잘하고 있으니, 이대로 잘 진행되면 다행이다. 서로 노력하고 있으니 상처 내지는 말자는 이야기도 하고…. 하지만 상황에 어떤 변화가 온다면 어떡하느냐는 말이 나왔는데…. 일단 ‘연말까지는’ 서로 지켜보자고 의견 일치를 봤다. 국회 운영에서 이상 기류가 생기면 행동에 들어가되, 지금은 특별한 사안이 없으니 잘 지내자, 뭐 이 정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보기엔 (다른 쪽도) 잘하고 있으니까.”

친박 회동, ‘세력 결집’ ‘경계태세 강화’ 목적

‘다른 쪽’의 의미가 뭐냐고 물으니, ‘김무성 대표 측’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떤 변화’나 ‘이상 기류’가 뜻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이런 답을 들려줬다. “개헌 이슈가 가장 크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어떤 식으로 촉발될지 모르나, 상황에 따라 우리와 저쪽의 생각이 다를 수 있지 않겠는가. 경제를 풀어나가는 방법론에서도 서로 좀 다른 것 같다.”

요약하면 최근 친박의 잦은 회동은 ‘세력 결집’과 ‘경계태세 강화’다. 도발에 대한 즉각적 대응 시나리오를 삼삼오오 퍼즐 맞추듯 짜내고 있다는 뜻이다. 조직을 재정비하는 과정의 하나다. 판을 키우면 언론에 드러나니 조심스럽게.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친박의 움직임을 두고 이런 해석을 들려줬다.

“최근 친박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이야기는 여러 루트로 들어오는 말이다.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도 있다. 서청원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친박 모임에서 결론은 대체로 ‘연말까지는 정중동 하자’는 것이다. 연말은 곧 김무성 대표가 말한 ‘정기국회 다음’이다. 개헌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전면전 양상이다. 너 죽고 나 죽자는 권력투쟁 양상으로 번지면 권력 지형이 변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친박은 그걸 대비하는 것이고.”

친박은 10월29일 친박계 의원들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 차기 대권 주자를 주제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띄우기’에 나선 바 있다. ‘김무성 대항마’가 필요하다는 일종의 간청이다. 11월17일부터 19일까지는 친박 맏형인 서청원 최고위원과 친박계의 핵심 실세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중심으로 모임이 이어졌다. 17일에는 최 부총리와 친박계 초·재선 의원이 모였고, 그다음 날에는 서 최고위원과 김태환·노철래·서상기·안홍준·유기준 의원이 모였다. 언론에서는 이를 ‘6인방 회동’으로 불렀다. 19일에는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최 부총리를 초청해 경제 관련 세미나를 열었다. 반기문 띄우기 2탄 격이었다.

일부 언론을 통해 서 최고위원이 ‘김 대표가 공무원연금 개혁 등을 잘하고 있다. 김 대표를 도와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해지지만, 어디까지나 ‘연말까지’다. 공무원연금 개혁, 공공부문 개혁, 누리과정·무상급식 등 예산 정국이 해결되고 나면 친박이 말한 대로 ‘이상 기류’가 발발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2015년은 박근혜정부의 임기 3년 차이지만, 20대 총선을 한 해 앞둔 해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정치생명이 걸려 있는 중차대한 길목인 것이다.

문제는 친박에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주요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초선 의원은 최근의 분위기를 전해줬다. 그는 친박으로 분류된다. “최고위원회의나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 최고위원이 잘 출석하지 않는다. 이정현 최고위원은 예산 정국이어선지 지역구 현안에 대한 이야기 외에는 별말씀 없으시고, 김을동 최고위원 등 다른 분들도 계파 정치는 하지 않는 것 같다. 구심이 있고, 그 주위에 위성이 모여야 하는데 끌어당기는 힘이 없으니….”

11월21일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열린 전임 친박계 지도부 회동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친박 허약해 보여도 쓸 수 있는 무기 많다”

최경환·유정복·서병수 등 친박에서 일깨나 한다는 인사는 청와대가 내각으로, 지방정부로 빼 썼다. 미래 권력이 부재해 인력(引力)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정현·윤상현·김재원 등 재선 친박은 아직 체급을 올리지 못했다. 차기 공천을 두고 김 대표 측과 친박이 내년 치열한 권력 다툼을 예고하고 있지만, 친박이 허약해 보이는 이유다. 특히 내년 5월에 치러질 원내대표 경선에도 친박에서 누구를 내세울지 알 수 없다. 낼 사람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반론도 제기된다. “당내에서 김 대표를 흔들고, 당 밖에선 청와대든 정부든 여러 툴(tool)을 써서 또 흔들 수 있다. 친박이 허약해 보이지만, 쓸 수 있는 무기는 오히려 김 대표보다 많다”는 것이다.

친박계의 김무성 체제 붕괴 시나리오는 알려진 바 없다. ‘믿을 맨’인지 여부만 관찰 중인 셈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한 핵심 당직자는 “친박계와 김 대표의 올해가 ‘시즌 1’이었다면, 정기국회가 끝나면 ‘시즌 2’가 시작된다. 본격적인 세력 대결은 거기서부터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 새누리당 소속 의원의 절대 다수는 김무성계도 친박계도 아닌 회색지대에 있다. 언제든 균형추가 기우는 곳으로 튀어가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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