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가렸다고 “극장에서 나가시오”
  •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
  • 승인 2014.11.19 14: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에서 부르카 착용 금지법 논란 극장주는 중동 고객 잃을까 전전긍긍

IS(이슬람 국가) 탓에 전쟁의 포화가 끊이지 않는 지금, 유럽의 한복판 프랑스에서는 또 다른 이슬람 문화의 문제로 갈등이 싹트고 있다. 바로 부르카 착용 금지법에 관한 논란이다. 이게 여론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10월3일 벌어진 일 때문이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은 2014년 정기 프로그램으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했다. 지휘자 바로 뒤편에 있는 첫 번째 줄 관람석에는 니캅(눈을 제외하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이슬람 복장)을 두른 여성이 앉아 있었다. 1악장이 끝나자 몇몇 단원들은 “그 여성 탓에 공연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사태가 가볍지 않다고 느낀 극장 측은 진행요원을 통해 복장을 바꾸거나 극장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문제의 여성은 일행과 남은 공연을 관람하길 포기하고 극장 문을 나섰다. 당시 퇴장당한 관객이 앉았던 극장 첫 번째 줄의 티켓 값은 1인당 230유로(31만원)를 호가했다. 바스티유 단원 노조 측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재발 방지를 극장 측에 요구한 상태다.

프랑스 파리의 튈르리 궁전에서 니캅을 입은 여성이 어린이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
중동 고객 잃을까 극장주들은 속앓이

흥미로운 것은 이 사태를 두고 프랑스 문화부와 바스티유 경영진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트로 뉴스에 따르면, 사태 직후 문화부는 이와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세부 지침을 바스티유와 갸르니에 오페라와 같은 대형 극장, 그리고 루브르를 비롯한 전시장 등에 내려보냈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후 펠르랑 문화장관은 BFMTV와 가진 인터뷰에서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인식할 수 있도록 부르카 착용을 금지한 것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원칙론을 폈지만, 내부적으로는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집안 단속을 먼저 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 이유는 바스티유 공연장에서 가장 비싼 관람석을 채우는 것이 바로 중동의 부유층들이기 때문이다. 장 필립 티에레 바스티유 관장은 “퇴장 요구는 정중하게 이뤄졌으며 그들은 환불을 요구해오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도 큰손인 중동 고객을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8월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고위 외교관이 니캅을 두른 여성의 얼굴 베일을 잡아챘는데 그가 하필 카타르의 공주로 밝혀져 외교 분쟁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미국의 국제관계 전문지인 ‘포린폴리시’는 ‘프랑스에서 종교적 신념을 지키려면 230유로나 되는 공연의 2악장을 희생하고 거기에 150유로라는 벌금까지 내야 한다’는, 조소에 가까운 기사를 내보냈다. 프랑스판 쿠리에의 폴린 엘리 기자는 “자유와 평등, 박애를 늘 강조하는 프랑스에서도 지금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이슬람과 관련된 법 적용이 점점 강경해지고 있는 게 문제”라고 분석했다.

2011년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프랑스의 부르카 착용 금지법의 정당성을 거든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프랑스 남부 도시 아비뇽에서는 니캅을 입고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여성이 나왔고, 이 여성의 벌금을 대신 내주겠다며 벌금 액수인 150유로짜리 수표를 들고 니캅을 두른 여성이 지방법원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주로 착용하는 부르카는 눈 부분이 망사로 되어 있다. 반면 이번에 문제가 된 바스티유 관객이 착용한 것은 눈만 드러나는 니캅이었다. 그 외에도 얼굴을 드러낸 채 머리만 감싸거나 몸 전체를 감싸는 히잡과 차도르가 있는데 히잡과 차도르의 경우에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 유럽인권재판소가 부르카 착용을 금지한 프랑스의 법안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얼굴이 사회적 상호 작용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프랑스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부르카나 니캅을 착용한 사람에게 150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만약 부르카나 니캅의 착용을 강요했을 경우에는 벌금이 3만 유로로 훌쩍 뛰고 최고 1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만약 강요의 대상이 아이라면 처벌은 두 배로 강화된다.

극우 정당, 지지층 포섭에 이용

금지 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프랑스가 개인적인 선택을 법으로 제한한다고 비판한다. 이런 주장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가 프랑스의 전 여성 래퍼인 디암이다. 17세에 데뷔한 그는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프랑스 힙합계에서 독보적인 여성 래퍼로 우뚝 섰다. 50여 장의 음반을 냈고 총 400여 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프랑스 음반계의 블루칩이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졌다가 4년이 흐른 뒤 히잡을 두른 채 대중 앞에 나타났다. “최고의 스타였을 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 새로운 삶을 찾았다”며 리암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히잡을 둘렀다. 파리의 경우 부르카나 니캅이 부담되기 때문에 간단한 스카프로 이슬람 신도임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프랑스 남부 등 지방 도시만 가도 리암처럼 차도르나 히잡을 패셔너블하게 두른 여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가가 정한 법률과 개인의 선택권이 충돌하고 있는 가운데 중간에서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프랑스 ‘정치 테너’들의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사르코지 행정부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극우적인 발언을 일삼으며 논란을 몰고 다녔던 나딘 모라노 전 가족담당 국무장관은 11월9일 부르카를 두른 여성을 ‘공항에 버려진 가방(폭발물)’에 비유해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근 정계 복귀를 선언한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도 “민주주의는 부르카를 인정할지 모르지만 공화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거의 정치인들이 존재감을 재확인받기 위해, 다가올 선거에서 부르카 문제를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부르카 금지법이 유럽 전역으로 확대된 것은 반(反)이민주의를 내세우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극우 정당 지지자들을 흡수하기 위한 각국 여당들의 계산 때문이다. 유럽에서 무슬림 거주자가 가장 많은 국가인 프랑스는 2015년 지방선거와 2017년 대선이라는 정치적 분수령을 앞두고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부르카 논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엘리제궁이 부르카로 뜨거워질수록 고급 공연장들의 주인들은 중동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진땀을 뺄지도 모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