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자 몰라 눈으로 배웠다”
  • 김지영 팀장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4.11.1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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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중국 칠현금 최우수 시험 합격한 김승민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장에선 잔잔하면서도 영롱한 현(絃)악기 음률이 흘러나왔다. 공자(孔子)가 가장 사랑했던 악기 칠현금(七絃琴) 연주였다. 3000년 역사에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칠현금. 우리나라 거문고의 원조로 알려져 있으며 고금(古琴)·금(琴)으로도 불린다. 고대 중국 사대부라면 칠현금·바둑·서예·회화 중에서 한 가지는 반드시 배워야 하는 ‘교양 과목’. 그중 칠현금이 으뜸이었다.

우리도 그렇지만 중국 젊은이들 역시 전통 음악은 고리타분하다고 여긴다. 특히 칠현금 악보는 워낙 난해해 배우기도 힘들다. 배우는 사람이 줄어들다 보니 그 가치와 희소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 간 한국 유학생 김승민씨(44)가 지난 7월 칠현금 시험에 합격해 화제다. 이 시험은 중국 정부 기관인 ‘중국 민족관현악협회’ 주관으로 2년마다 실시된다. 중국 악기는 1~10급까지 등급을 매겨 시험을 치르는데 10급이 최우수다. 그 10급 시험을 한국인으론 처음 김씨가 통과한 것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마흔 넘어 연고 없는 중국으로 날아간 늦깎이

김씨는 서울에 있는 한 사설 연구원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다 2012년 말 장기 휴가계를 냈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동양 음악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서다. 그는 중국 내 26개 소수민족 4000여 만명이 모여 사는 윈난(雲南)성 위시(玉溪) 시로 날아갔다. 위시 시는 중국 국가(國歌)인 <의용군행진곡>의 작곡가 녜얼()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곳 사범대학에서 소수민족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칠현금의 대가’를 운명처럼 만났다. 소수민족인 이족(彛族) 출신으로 윈난성 제일의 칠현금 연주가로 평가받는 스훙웨이(施宏偉)와 사제의 연을 맺은 것이다. 김씨는 “스승님을 만난 후 칠현금의 매력에 푹 빠져들면서 원래 4개월로 예정했던 유학 기간이 2년으로 늘어났다. 지금도 칠현금의 마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웃었다.

예술과 학문의 길은 고봉준령의 연속. 김씨가 시험에 합격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고충이 있었다. 마흔을 넘긴 늦깎이로 아무 연고도 없는 중국 유학길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다. 중국어도 전혀 몰랐다. 미혼인 김씨는 1년 6개월 만에 시험에 합격하면서 칠현금 삼매경에 푹 빠져 있다. 그는 “유학 초기에  한국인 가운데 칠현금 10급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일대일 수업을 중국어로 들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더구나 칠현금 악보는 고대 한자로 돼 있어 중간에 포기할까 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길이 막히면 돌아가는 법. 김씨는 ‘말’(言)이 안 돼 ‘눈’(目)으로 배우기로 했다. 스승이 연주하는 모습을 모두 영상으로 녹화해 숙소에 돌아와 수십, 수백 번씩 반복 연습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그러자 스승의 ‘말’이 조금씩 귀에 들어왔다. 그러길 다시 6개월,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던 악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박자가 없는 칠현금 악보가 익숙해진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10년간 박자가 표기된 피아노 악보를 보며 배웠다. 그런데 칠현금 악보에는 박자가 없다. 무척 난감하고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양 철학의 여유와 자유를 느끼고 있다.”

10급 시험 곡명은 ‘중국의 정신’으로 불리는 중국 10대 고대 명곡 가운데 하나인 <광린싼(廣陵散)>. 중국 삼국시대 죽림칠현 가운데 한 명이었던 혜강이 사형장에서 마지막으로 연주했던 곡으로 유명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의연하게 칠현금을 탄 혜강의 모습에서 고대 중국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중국인이 가장 아끼는 곡으로 꼽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시진핑 방한 때 칠현금 연주했어야”

지난 7월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이 방한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환영 행사를 열었는데, 시 주석의 부인과 동명이인인 학교 동창이 시 주석 내외를 위해 고쟁(古箏)을 연주한 적이 있다. 그런데 중국에선 큰 행사나 격조 높은 행사 때는 고쟁이 아닌 칠현금을 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자의 악기’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김씨는 “만약 시 주석 환영 행사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칠현금을 연주했다면 시 주석 일행에 대한 예우와 격을 더 높여줬을 것”이라며 “우리가 중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작은 실수였다”고 아쉬워했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우예티(烏夜啼)>. 한밤중에 새가 서럽게 우는 소리를 듣고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며 운다는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이 곡을 한창 배우던 시기는 지난 4월 세월호 참사가 벌여졌을 때였다. 중국 CCTV에서 사고 소식을 접한 김씨는 희생자와 유가족 생각에 이 곡을 연습할 수 없었다고 한다. 김씨는 “참사가 벌어진 지 석 달 정도 지나서야 겨우 다시 연습할 수 있었다”며 “희생자 영혼을 달래고 유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도 매일 한 차례씩 <우예티>를 연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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