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서청원, 반기문 띄우고 ‘빙긋’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11.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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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동계와 동교동계 맏형, ‘반 테마주’ 이심전심?

이번엔 ‘반기문 대망론’이다. 여야가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당사자는 손사래를 치지만, 정치권에선 이미 차기 대선의 상수가 되어가는 듯한 분위기다.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우리 정치권의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여당 한 재선 의원)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지만, 향후 정치권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우리 편’으로 선점하려는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야의 ‘반기문 바라기’ 행보는 글자 그대로 경쟁적이다. 물꼬는 새누리당 ‘친박(親朴)계’가 텄지만, 야권에서 물길을 트고 나서는 데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기다렸다는 듯 여야 유력 정치인들과 반 총장을 연관 짓는 추측과 시나리오들이 잇따라 쏟아졌다. 이를 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좀 있으면 ‘반기문 신드롬’이란 말도 나오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10월29일 소말리아를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 AP 연합
반 총장은 현지 시각으로 지난 11월4일 유엔 사무총장실 명의의 언론 대응 자료를 통해 “최근 일부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향후 국내 정치 관련 관심을 시사하는 듯한 보도를 하고 있는 데 대해 전혀 아는 바도 없고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여의도 정가에선 차기 총선·대선 구도와 관련해 ‘반기문 역할론’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분위기가 뚜렷하다. 무엇보다 여권 내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이름 석 자가 꽤나 비중 있게 거론된다.

서청원 측 노철래 의원과 반 총장 접촉설

서 최고위원이 ‘청산회’라는 자신의 지지 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있는데, 이것이 결국 반 총장을 염두에 둔 대권 준비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는 서 최고위원의 핵심 측근인 노철래 의원과 반 총장이 지난 7월부터 몇 차례 접촉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의미가 배가됐다. 하지만 반 총장과 노 의원의 접촉은 지극히 개인사에 가까웠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이들에 따르면 노 의원의 지역구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이 있는데, 반 총장 지인의 부탁을 받은 노 의원이 반 총장 노모의 남한산성 유람을 극진히 챙겼고, 반 총장이 자필 편지로 노 의원에게 사의를 표시한 게 시작이었다. 인지상정으로 주고받은 연락이 정치권에선 친박계와 반 총장의 연대 가능성으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야권 내에선 ‘반기문 대망론’이 반 총장 남동생의 20대 총선 출마설과 맞물려 증폭되고 있다. 권노갑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이 11월3일 자신의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반 총장 측근들이 새정치연합 쪽에서 대선 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타진해왔다”고 밝힌 뒤 해당 측근들이 누구인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던 와중에 반 총장 남동생의 이름이 인천 지역 출마 희망설로 구체화돼서 튀어나온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연합 안팎에선 반 총장 남동생과 직접 접촉한 당사자로 권 상임고문 외에도 정대철 상임고문, 박지원 의원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부인하지만, 이들 원로급 정치인의 풍부한 인맥과 정치력을 감안할 때 반 총장 주변에서 정치권과의 접촉 창구를 고려할 수 있는 1순위가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여기에다 반 총장의 외교부 재임 시절 측근인 김숙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의 일거수일투족이 정치권 인사들과의 접촉설로 확대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 전 본부장을 축으로 한 외교부 북미 라인 출신 인사들이 여야의 중도파 의원들을 만나고 있다는 얘기가 그럴싸하게 포장돼 흘러 다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여야의 486그룹이 차차기 대선을 노리고 반 총장과 의기투합할 것이라거나, 성완종 새누리당 전 의원을 비롯한 충청권 출신 정치인들이 이미 그루핑되어 있다는 등 그야말로 각종 설(說)이 난무하는 형국이다.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위 사진)과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시사저널 이종현·시사저널 박은숙
“반 총장 내세워 친노와 갈라서자 제안도”

‘반기문 대망론’은 정치권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의 일환으로 증폭되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이는 우선 여권이든 야권이든 아직까지는 상대를 압도할 만큼 유력한 대선 주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기인한다. 충청권 출신이면서 안정감이 돋보이는 반 총장의 경쟁력을 감안할 때 어느 쪽이든 ‘우리 편’으로 선점할 경우 정국의 흐름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건 반 총장 카드가 여야 공히 내부 계파 갈등과도 직간접으로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서 반기문 대선 후보론을 가장 먼저 들고나온 쪽이 현실 권력인 여권 내 친박계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이을 마땅한 대선 후보조차 없는 상황에서 반 총장 카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친박계 핵심 인사인 유기준 의원이 반기문 대망론의 총대를 메고 나선 것도, 당 지도부 내에서 친박 주류의 구심이 되고 있는 서청원 최고위원 주변 인사들의 반 총장 접촉설이 의미심장하게 해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한 비주류 중진 의원은 “오죽 마음이 급했으면 박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차기 후보를 거론하고 있겠느냐”고 힐난했다.

야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친노(親盧)’ 진영에서는 반 총장과 관련한 언급이 거의 없는 데 반해 ‘비노(非盧)’ 진영에서는 확산일로에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비노 진영이 ‘안철수 띄우기’에 올인하던 분위기와 흡사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박지원 의원은 “실제 일부 ‘반노(反盧)’ 인사들이 반 총장을 중심에 세워 친노 진영과 갈라서자는 제안을 해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내년 초 전당대회에서 친노 진영이 당권을 잡게 되면 분당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 모두 상대를 압도하는 유력한 대선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내부 계파 갈등의 골이 깊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반 총장을 ‘우리 편’으로 선점하려는 노력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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