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분담금, 누군가 주머니로 샌다
  • 조해수·김지영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11.0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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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1조원 넘는 돈, 미군 은행 관계자 3~4명이 ‘주물럭’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Freedom is not free’. 우리말로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네 단어로 이뤄진 짤막한 문장은 미국의 안보관을 대변한다. 자유를 보장받고 싶다면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안보를 담보로 미국에 ‘가장’ 충실히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국가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지불하는 방위비 분담금이 그 예다. 한국이 올해 부담해야 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9200억원, 미군이 주둔한 일본과 독일을 제치고 GDP(국내총생산) 대비 세계 최고다.

하지만 이 방위비 분담금이 주한미군 내에서 어떻게 관리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분담금 미집행 금액과 이에 따른 이자소득은 한·미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때마다 논란의 대상이었다. 미국 정부는 지금껏 미집행 분담금에 대한 이자분을 인정하지 않다가 올 초에야 비로소 주한미군 은행이 분담금을 운용해 막대한 이자소득을 올린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시사저널은 방위비 분담금을 관리하는 주한미군 은행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를 접촉해 주한미군 은행의 ‘이자놀이’ 실태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 연합뉴스
주한미군 은행에서 1조원이 넘는 방위비 분담금을 관리하는 사람은 단 3~4명에 불과하며 공개입찰도 없이 자의적으로 시중은행을 선택해 막대한 이자 수익을 올리고 있는 사실이 취재 결과 드러났다. 또한 커뮤니티 뱅크가 방위비 분담금으로 얻은 이자소득이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미국 측의 주장과는 달리 이자소득의 일정 금액이 미국 정부에 송금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군, 이자 나오는 계좌에 분담금 예치

주한미군 은행에 근무하는 전·현직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연간 1조원에 가까운 방위비 분담금이 유통·관리되는 시스템은 이렇다. 먼저 한국 정부는 미국 국방부에 원화와 달러로 방위비 분담금을 보낸다. 이 중 달러로 환전된 부분은 미국 재무부 계좌에 입금된다. 원화로 보내진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기지 내에 있는 ‘커뮤니티 뱅크(Community Bank)’라는 곳에서 관리한다.

이렇게 원화로 된 방위비 분담금은 한 달에 한 번꼴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이나 SMA에서 정해진 날짜에 한 번에 1000억원가량, 총 13차례 커뮤니티 뱅크에 예치된다. 1년 동안 커뮤니티 뱅크에 쌓이는 돈이 1조2000억~1조3000억원에 이른다는 얘기다.

한국 정부에서 제공한 분담금 원화 부분은 두 계좌로 들어간다. 하나는 ‘별단예금(Sepecial Deposit)’이라는 무이자 계좌다. 금융기관이 장부 처리 편의를 위해 개설한 계정으로, 일시적으로 돈을 보관하기 위해 개설한 계좌를 말한다. 다른 하나는 보통예금 계좌다. 이는 0.1%의 이자가 붙는다고 한다. 커뮤니티 뱅크에서 근무했던 ㄱ씨는 “한국 정부든 미국 국방부든 커뮤니티 뱅크에 누가 돈을 쏘든지, 어느 계좌로 돈이 오든지 우리(커뮤니티 뱅크)로서는 상관이 없다”며 “중요한 것은 한국 세금이 들어온다는 점이고, 이 돈 중 주한미군 한국인 인건비 등으로 월 200억원에서 최고 400억원만 지출하고 나면 연평균 1조2000억~1조3000억원이 남는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회 국방위 소속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금까지 커뮤니티 뱅크가 방위비 분담금을 운용해 이자놀이를 한다는 논란이 일 때마다 주한미군 사령부는 방위비 분담금 원화 부분을 커뮤니티 뱅크의 무이자 계좌(escrow account)에 보관하고 있다고 말해왔다”며 “소액이라도 이자가 붙는 계좌로 방위비를 이체시켰다면 주한미군 측이 거짓말을 한 셈이다”라고 말했다.

방위비 분담금은 공적자금이다. 오롯이 국민 세금으로 충당된다. 국내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써야 할 인건비, 군사시설비, 군수 지원비, 연합방위력 증강 예산 등 ‘주둔 경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 운용의 투명성이다. 불법 논란을 떠나 방위비 분담금을 관리하고 있는 커뮤니티 뱅크가 시중은행에 방위비 분담금을 예치하려면 공개입찰을 거쳐 공정하게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분담금 시중은행 예치, 공식 절차 없이 ‘맘대로’

국내 4대 시중은행 중 한 곳에서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예컨대 서울시 예산과 같은 조 단위의 대형 공적자금을 은행에 유치하려면 입찰공고를 통해 은행 본부 차원에서 신청을 한다. 입찰을 따내는 데는 예금 금리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커뮤니티 뱅크는 방위비 분담금을 예치할 시중은행을 고를 때 ‘공개입찰’ 과정이 전혀 없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은 전했다. 보통 방위비 분담금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Time Deposit)에 쪼개져 관리되는데, 금리가 낮은 은행에 방위비 분담금을 예치한 경우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커뮤니티 뱅크가 높은 이자 수익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커뮤니티 뱅크 관계자 ㄴ씨는 “1조원의 1% 금리면 연 100억원의 이자소득이 발생한다”며 “소수점의 차이로도 몇 억이 왔다 갔다 하는데 정상적인 은행이라면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가 없다. 뭔가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심지어 은행 본부에 있는 기관투자 부서에 자금을 예치하는 공식적인 루트가 아닌 은행의 지점에 돈을 맡기는 비정상적인 루트가 빈번하게 활용됐다. 그러다 보니 같은 은행의 지점에서 분담금을 예치하려는 경쟁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커뮤니티 뱅크 한 인사의 말이다. “커뮤니티 뱅크는 미군의 예금이나 대출, 송금 업무 등 편의를 위해 있는 ‘군사은행’으로 공적자금을 다루는 곳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기관투자를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기관투자 거래를 하지 않고 심지어 낮은 금리를 제시한 은행에 돈을 유치시켰다는 뜻이 뭐겠는가. 시중은행에서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뒷돈을 대고 인맥을 총동원했다는 말이 파다하다.”

“한국계 은행에서 관리하는 게 타당”

일부에서는 커뮤니티 뱅크의 폐쇄적인 내부 구조가 리베이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커뮤니티 뱅크에서 수십 년 근무한 ㄷ씨에 따르면, 커뮤니티 뱅크는 업무가 이원화돼 있다. 미군들의 송금·대출·예금 업무를 ‘앞일’, 방위비 분담금 관리를 ‘뒷일’이라고 한다. 특히 ‘뒷일’을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디스트릭트(District)’라고 부른다고 한다. 디스트릭트, 직역하면 ‘특정한 특징이 있는 구역’ ‘지역’이라는 뜻이다. 이 디스트릭트에 있는 직원은 ‘앞일’을 담당하는 직원보다 직급이 높다. ‘디스트릭트’에서 방위비 분담금을 관리하는 직원은 3~4명이 전부다. 방위비를 총괄해 책임지는 지점장급은 미국인 한 명이지만, 그 밑에 2 ~3명의 한국인 매니저가 있다. 하지만 이들 업무는 개별적으로 나눠져 있다. 모두 방위비 분담금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지만, 서로의 업무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얘기다. 더욱이 방위비 분담금을 총괄하는 용산기지 내 경리부서 직원도 방위비 분담금이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고 한다. 미군부대에서도 방위비 분담금의 운용 실태를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얘기다.

심지어 커뮤니티 뱅크에서 방위비 분담금 관련 업무를 10년 이상 했던 직원은 “내가 근무했던 동안 단 한 번도 ‘홈 오피스(Home Office·미국 정부)’에서조차 감사를 나온 적이 없고 미국에 보고를 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방위비 분담금으로 이자가 발생하면 그걸 증빙할 수 있는 서류 한 장만 내면 끝이다”며 “어느 은행에서 몇 % 금리로 이자소득이 발생했는지는 미국 본토에서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미국 측이 분담금을 운용해 막대한 이자를 거둬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자소득은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일까. 답은 분담금을 시중은행에 마음대로 예치한 디스트릭트 내 최고 책임자를 제외하곤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자소득이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발생한 것이 아닌 것처럼, 그 이자소득 역시 암암리에 건네지고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전언이다. 커뮤니티 뱅크 전직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커뮤니티 뱅크에서 이자소득이 발생해 미국에 ‘공식적으로’ 전달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아마도) 우리가 모르게 하는 거지. 일단 이자가 발생하면 여기서(디스트릭트) 나눠 쓴다고 봐야지, 누가 알겠나. (또한) 미국 정부에 주긴 주겠지. 근데 얼마나 주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그 사람(미국 정부에 근무하는 총괄 책임자)에게 레터를 보내면 답장도 없어.”

결국 한국 정부는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는 자체 예산이 아니라는 이유로 1조원이 넘는 우리나라 세금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진성준 의원은 “방위비 분담금이 우리나라 세금인 만큼 한국계 은행에서 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우리나라  은행에 방위비 분담금을 예치하지 않는 것은 미국이 SOFA 규정을 어기고 우리 세금으로 이자소득을 계속 벌어들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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