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사생활 도청해 정적 옭아매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4.10.2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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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자행돼온 권력과 ‘그 하수인’의 도·감청

#1.“너 이노무 자슥 안 들어가나!” 서울 상도동 자택 거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던 김영삼(YS) 총재가 벽력같이 고함을 쳤다. 그는 “언제나 (통화에 정체불명의 제3자가) 끼어든다”며 짜증스러워했다. 도청 장비가 부실했던 예전엔 감도가 떨어지거나 ‘찌찌찌’ 잡음이 생기는 게 다반사였다. 그래서 통화는 ‘두 사람 간이 아닌 3자 간 정담(鼎談)’이라는 전제하에 이뤄지는 게 보통이었다.

#2.“볼륨 좀 올리지.” 제17대 대선 때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로 나선 김대중(DJ) 총재는 승용차에 오르자마자 라디오 볼륨을 키우라고 운전사에게 지시했다. 도청 차단을 위해서였다.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들은 음악을 틀거나, 집무실 바닥과 벽면에 널따란 동판(銅板)을 깔거나 덧대기도 했다.

사정기관의 도·감청은 때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중반 국정원 도·감청 사건 수사 때 확인됐듯이 자기네 기관 수장의 통화도 가로챈 국정원 8국이다. 대통령 전화에는 도청 장치를 부착하지 않았으나, 어차피 상대가 있는 만큼 대통령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 YS가 대통령 시절 이인제 경기도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대선 출마를 종용한 통화가 도청된 것도 한 사례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다음카카오톡 공동대표의 감청 영장 불응 선언이 나온 다음 날(10월14일) 사적 대화를 일방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도·감청 유혹에 빠지지 않은 정권 없어

앞서 소개한 1990년대의 일화들은 우리 사회의 도·감청이  생래적이고 고질화됐음을 대변한다. 지금은 감청 영장제도가 생긴 탓에 조금 달라졌다고 해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별로 없다. 국가안보·범죄 수사 명분에 충실한 것은 오히려 일부일 뿐, 주요 인사들의 동태 감시와 제거 등의 정치공작에 동원되는 경우가 허다했던 기억이 압도적이다. 은밀한 사생활 관련 녹취는 정적을 옭매는 암기(暗器)였다. 전두환 정권 시절 야당의 기대주로 떠오른 H 의원이나 반정부 기독교단체의 L 총무를 침묵하게 한 일등공신은 도청이었다. 이들의 불륜 현장을 덮쳐 망신을 주는 것으로 간단히 정리했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 여권 주류에 도전하던 K 의원에게 여인과의 정사를 확인케 하는 녹음테이프를 들이대자, 그 의원이 이내 꼬리를 내린 일화 등등 도청이 올린 ‘개가’는 숱하다. 이처럼 약발이 먹히니 권력층은 도·감청을 전가의 보도로 삼았다. 도·감청의 희생자가 반드시 유명 인사만은 아니었다. 청탁을 받고, 지인의 상대를 윽박지르거나 이익을 편취하는 사적인 ‘청부 도청’도 심심찮았다. 기관의 위세가 당당하던 시절엔 작심만 하면 그게 불륜이건 비리건 표적의 코를 꿰는 일은 여반장이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몰래 엿듣는 도청은 그 자체가 불법이니 차치하더라도, 법원의 영장을 받아 집행된다는 감청에도 일탈이라는 하자가 묻어나기 일쑤였다. 영장에 적시한 감청 범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거나 내막은 불법인 ‘막무가내 감청’이 문제였다. 이슈화가 돼 ‘보는 눈’이 많은 사건의 경우엔 감청 규정이 그럭저럭 지켜지는 모양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YS나 DJ는 야당 대표 시절 도청을 당한 대표적 피해자들이다. 그래서 도청을 앞장서 규탄했고 대통령에 취임하면서는 금지를 공언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때 도·감청은 최고조로 만개했다. YS 정권 때 재건된 특별 도청 조직 ‘미림팀’은 한정식집이나 일식집, 호텔 레스토랑 밀실에 도청 장치를 거미줄처럼 깔아 놓았다. 삼성 X파일 사건 등이 그 부산물이다. DJ 정권은 도청·강압 이미지를 씻는다며 안기부를 국정원으로 개칭하고 조직도 개편했다. 하지만 실제는 반대였다. 권노갑 파문 관련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 진승현 게이트 관계자, 최규선씨 주변 돈·여자,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도미(渡美), 야당 의원들의 정책연합 관련 도청 등등 사례 열거만으로도 숨 가쁠 정도다. 풍문으로 듣던 국정원 도청 행각이 까발려지자 국민들은 권력의 추악한 민낯에 치를 떨었다.

김대중 정부의 도·감청 총책들. 임동원(왼쪽)·신건 전 국정원장은 재임 중의 불법 행위를 부인했으나 불법 감청과 정치사찰 혐의로 구속됐다. ⓒ 연합뉴스
방향감각 잃은 검찰의 무정견이 불신 키워

야당 의원들이 딱 떨어지는 증거를 제시하며 도청 사실을 폭로했음에도 무혐의 처리한 검찰의 행적은 이 사건의 또 다른 ‘백미’다. ‘권력과 도청’의 특별한 함수관계를 확인시켰다는 점에서다. 검찰은 “기지국을 통째로 옮기면서 도청하려는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지 않는 한 휴대전화 도청은 불가능하다”고 딴청을 피웠다. 이번의 카카오톡 감청 사태와 관련해 김진태 검찰총장 등이 무슨 말을 해도 국민이 불신하는 소이는 바로 이런 데 있다. 과거 국회의원이 생생한 자료를 들이대도 아니라며 잡아떼던 정보기관과, 수사를 하겠다면서 되레 정권을 감쌌던 검찰의 부끄러운 과거 때문이다.

도·감청은 권력에 대항하는 정적과 비판자들을 옥죄는 데 가장 효과적이고, 그래서 모든 권력자가 유혹을 느끼고, 검찰 스스로가 도·감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게 도·감청 망령이다. 자기반성 등 도·감청에 관한 한 의식 전환이 급선무지만 과거와 달라진 게 거의 없어서다. 달라진 것이라곤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장비다. 전화국 교환대에 선을 걸쳐 엿듣던 아날로그 시대에서, 위성을 동원해 번호 미상의 발신지까지 30초 내에 찾아내는 초(超)디지털 시대로 바뀌었다.

이처럼 정보통신기술(ICT)이 고도화한 시대에 권력자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정보든 캐낼 수 있다. 카카오톡 대표가 서버 감청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지켜질지 의문이거니와, 검찰 수뇌부가 사적 대화를 일상적으로 모니터링할 법적 근거도 인력과 설비도 없다고 했지만 국민들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과거 정권에서 검찰이 권력과 한 몸이 돼 표적·보복 수사를 일삼은 전력을 꿰고 있어서다.

국정원 도·감청 사건 당시의 ‘수상쩍은 자세’와 ‘대통령의 일갈이 떨어지자마자 본격화한’ 이번 카카오톡 감청 사태의 배경도 불신을 더한다. 청와대의 호통에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는 검찰의 무정견에 실망한 국민들이기에 이병기 국정원장 체제의 국정원이 자기 개혁을 외쳐도 선뜻 수긍하지 못한다. 국민은 ‘선의’의 도·감청은 행여 가능할지 몰라도 ‘착한’ 도·감청 자료 활용까지를 기대할 수 없음을 확신한다. 국민의 이 같은 시선과 심사를 바로 읽는 게 오늘날 ‘사이버 사찰’ ‘재갈 물리기’ 등과 동의어로 비치는 카카오톡 감청 파동을 슬기롭게 추스르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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