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강심장’, 박인비·루이스를 꺾다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10.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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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누르고 LPGA 2승 올린 이미림

‘눈이 아름다운’ 강자 킬러 이미림(24·우리투자증권)은 기량에 걸맞게 비교적 운이 따른다. 10월6일 중국 베이징 인근의 레이우드 파인밸리골프클럽에서 끝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레인우드클래식(총상금 210만 달러) 최종일. 16번 홀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2위 그룹에 1타 앞서 나간 이미림. 이날 루이스에게 2타 뒤져 출발했지만 4타를 줄이며 단독 선두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17번홀(파3·122야드)에서 위기를 맞았다. 티샷한 볼이 강한 맞바람으로 인해 왼쪽으로 밀렸다. 한두 바퀴만 더 굴렀어도 워터해저드로 빠질 볼이 극적으로 바위에 걸렸다. 천운이었다. 그는 58도 웨지샷으로 일단 핀 우측의 그린 중앙으로 빼냈다. 거리는 홀과 10미터가 조금 넘었다. 보기만 해서 연장을 가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뒤에서 먼저 스트로크를 한 루이스의 퍼팅 라인이 도움이 됐다. 그는 롱퍼팅을 홀로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18번홀(파5)에서 2온을 노리다가 벙커행. 이것도 절묘하게 핀에 붙여 버디를 잡아 화끈하게 팬 서비스를 했다. 합계 15언더파 277타. 4일 동안 보기는 단 3개였다.

우승으로 손에 쥔 돈은 31만5000달러. 지난 8월 마이어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시즌 2승째였다. 마이어클래식에서 세계여자골프랭킹 2위 박인비(26·KB금융그룹)를 연장전 끝에 잡은 이미림이 이번에는 세계랭킹 1위 루이스를 꺾자 ‘강자 킬러’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 LPGA 박준석 포토, ⓒ JNA 정진직 포토
“다른 선수의 경기엔 무관심하다”

그는 ‘진짜 강심장’일까. 그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냥 다른 선수의 경기에 무관심하다고 한다. 무심한 편이어서 분위기를 타기보다는 덤덤하게 플레이를 가져간다. 아마도 이것이 그를 멘탈이 강한 선수라고 불리게 한 이유 같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클럽을 잡았다. 아버지 권유였다. 아버지는 기술도 가르쳤다. 2년 뒤 대회에 나갔는데 다른 친구가 어찌나 골프를 잘하던지 그를 놀라게 했다. 이때부터 마음속에서 경쟁심이 싹텄다. 2008년 국가대표를 지낸 그는 2009년 드림투어에서 뛰다가 2011년 정규투어 S-Oil 챔피언십, 2012년 기아차 한국여자오픈, 2013년 KG 이데일리 레이디스오픈에서 우승한 뒤 미국으로 눈길을 돌렸다. 3년 정도 국내 무대에서 뛰다가 LPGA 투어로 갈 계획이었다. 친구인 최운정(24·볼빅)의 “이왕 올 거면 빨리 오라”는 말도 작용했다. 퀄리파잉스쿨에서 2위로 통과하며 LPGA 투어에 합류했다.

올 시즌 첫 대회 퓨어실크 바하마 LPGA 클래식에서 공동 33위에 오르며 7531달러를 손에 쥐었다. 3월 JTBC 파운더스컵에서 2위를 했지만 8월 첫 우승하기까지 컷오프도 4번이나 당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2개월 후 다시 정상에 오르며 이미림은 골프팬에게 자신의 이름을 깊이 각인시켰다.

그는 프로 데뷔 후 딱 한 번 주어지는 신인상에 슬슬 욕심을 내고 있다. 물론 ‘100만 달러 여고생’ 리디아 고(17·캘러웨이골프)에게 뒤져 있지만 남은 대회를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다.

그의 강점은 172cm의 훤칠한 키에서 뿜어내는 장타력. 그런데 알고 보면 고루 잘한다. 기록상으로 1위를 하는 것은 없지만 우승권에 늘 머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현재 CME 글로브 레이스에서 1.806(12위), 상금 80만8318달러(14위), 드라이버 평균 거리 262.8야드(8위), 페어웨이 안착률 68%(112위), 그린적중률 73%(13위), 평균 퍼팅 수 30.19타(57위), 그린 적중 시 홀당 퍼팅 수 1.802개(27위), 샌드세이브 40%(92위), 평균타수 71.016(17위)을 기록 중이다.

사실 2승을 거두면서 그에게 찾아온 것은 ‘즐거움’이다. 미국 무대에 데뷔하는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것을 느껴온 그다. 대회 때마다 이동해야 하는 엄청난 거리, 늘 새로운 코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주일이다.

그를 뒷바라지는 사람은 아홉 살 터울의 큰언니다. 언니가 매니저이자 부모 역할까지 해준다. 덕분에 그는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집은 구하지 않고 대회가 열리는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호텔 투어 중이다. 짐을 다 가지고 다닌다. 힘은 들지만 이 또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에게 가장 큰 부담은 외로움이다. 부모님이 보고 싶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싶다. 또 미국 생활이 아직은 낯설다. 이를 최운정이 도와준다. 큐스쿨 때도 최운정과 함께 밥을 먹었을 정도로 친하다. 

성균관대 출신의 이미림은 아직은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즐기고 싶은 것이 많은 사회초년생이다. 자우림과 빅뱅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른다. SF영화를 좋아하며 돼지껍데기를 잘 먹는다. 잘생긴 남자보다는 이해심 많은 배우 소지섭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다.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와 신인상 경쟁

그는 이제 미소도 짓고 여유를 갖고 싶다. 볼이 잘 안 맞을 때는 무조건 클럽을 놓고 쉰다. 롤 모델인 로리 케인(50·캐나다)처럼 골프를 마음껏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즐기고 싶은 것이다. 10월25일 생일을 맞는 이미림이 6개 대회를 치르는 LPGA 투어 ‘아시안 스윙’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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