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대학언론상] 개발 환상의 이면, 그곳의 밤은 두려웠다
  • 변재훈·최시은(한국외대) (webmaster@sisapress.com)
  • 승인 2014.10.0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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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지연 지역 우범지화…주민들 치안 불안에 떨어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시사저널 대학언론상’이 6편의 수상작을 냈습니다. 기자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한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수상작들 속에는 예비 언론인들의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다소 투박하고 덜 매끄럽지만 풋풋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원문을 게재합니다

변재훈(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과 4년)
최시은(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3년)


서울 시내 35개 뉴타운 지역 가운데 여러 곳이 원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백지화되고 있다. 당장 해당 지역의 치안이 문제다. 좁은 골목이 많아 범인의 도피가 쉽고 주거 환경이 열악해 우발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원주민이 떠난 빈집은 범행 장소나 은신처로 전락하고 있다. 일부 지역은 급격하게 슬럼화하고 있어 주민들의 불안은 커져만 간다.

하지만 당국은 CCTV를 비롯한 방범시설 추가 설치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건축 연한 등을 고려했을 때 뉴타운 지역 대다수는 전면적인 재개발이 불가피하다. 사업 보류 지역에 막대한 방범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해당 지역의 치안 불안이 현안으로 떠오르자, 서울시는 ‘범죄 예방  환경 설계’(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를 복안으로 내놓았다. 도시 공간 개선 및 재조정을 통해 범죄 기회를 차단하는 CPTED는 해외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방범 기법이다. 서울시는 CPTED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범죄심리학자, CPTED 전문가, 경찰, 행동심리학자, 커뮤니티 디자이너 등 총 10인의 범죄예방디자인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의 자문과 시 공무원들의 현장 방문을 통해 마포구 염리동이 CPTED 시범지역으로 선정됐다.

 

슬럼화로 주민들의 불안이 커져가고 있는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 뉴타운 예정 지역. ⓒ 시사저널 최준필

CPTED 사업에 주민들 반응 시큰둥

시범사업이 시작되면서 염리동 일대에는 벽화와 조형물이 설치되고 주민 쉼터 등이 조성됐다. 현지 주민의 ‘지킴이’ 지정, 전봇대 번호등 설치 등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염리동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뀌었다. 노란색 전신주에는 1?69번까지 번호가 쓰인 LED등과 비상벨이 설치됐다. 누군가 위험에 처했을 때 지정된 지킴이집의 벨을 누르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염리동 소금길’은 이렇게 탄생했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염리동 주민들의 범죄 두려움은 9.1% 감소했고 동네에 대한 애착은 13.8% 늘어났다.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서울시는 이 사업을 대림2동·도봉동·구로동·상도동 등 1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실제 염리동 주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이전보다 불편하다는 사람이 많았고, 상당수는 서울시 행정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응답 주민 중 3분의 1은 소금길 사업에 관해 ‘모른다’고 답했다. 21번 가로등 근처에서 만난 세탁소 주인은 “시에서 저렇게 해놓고만 가고 누구 하나 설명해주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소금길을 알고 있는 주민들조차 재개발될 지역에 불필요한 예산을 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들의 상황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벽화 등이 입소문을 타며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범죄율은 낮아졌다. 하지만 직접적인 효과는 의문이다. 현장 경찰관들의 가장 큰 애로는 순찰차 진입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인데 도로를 정비하지 않는 이상 개선하기 어려운 일이다.

비단 염리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서울시 뉴타운 사업 대상 571개 구역 중 사업 포기 지역 88곳, 사업 추진이 미결정된 곳 185곳,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지역 256곳 등이다. 이들 지역에서도 방범 대책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예컨대 뉴타운 사업지역이었던 이문동 상황이 그렇다. 이문동 주민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동네 치안에 대해 주민들이 체감하는 불안은 70%대에 육박했다.

인근에 밀집된 유흥가와 주택가의 취객, 비행 청소년, 오토바이 배달원 등이 대표적인 불안 요소였다. 그렇다고 감시카메라 설치를 환영하는 것도 아니었다. 상당수는 실효성에 의문을 갖고 있었고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불쾌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오히려 많은 주민은 한 번씩 지나가는 순찰차를 보면 안도감이 든다고 했다. 치안 인력 확충 및 순찰 강화가 주민들의 치안 불안 해소에 효과적인 셈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희망과는 달리 관할서인 동대문경찰서는 인력 및 예산 부족으로 적극적인 범죄 예방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고육책으로 비번인 날에도 자원해 탄력적으로 근무하고 있으나 근본 처방은 못 된다는 지적이다. 

불안한 주민들, CCTV 설치 요구 빗발

치안 취약 구역에 대한 일반적인 해법은 CCTV 등 방범 설비 확충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호소한다. 실효성 있는 CCTV 카메라 1대를 설치하는 데 2000만원가량 든다. 이렇게 큰돈이 들기 때문에 재개발 지역에 CCTV를 무작정 설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게다가 카메라 높이 등 고려해야 할 요소도 적지 않다. 더욱 큰 문제는 CCTV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다. CCTV 설치에 대해 동네 유흥업소나 숙박업주들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반면 자녀가 있는 주민들은 설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의 CCTV 설치 요구에 해당 구의 의원들도 적극 나서고 있다. 자기 동네에 감시카메라를 늘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의 환심을 사야 하는 구의원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숫자를 늘리려다 보니 저화질 감시카메라가 등장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문동에는 저화질 카메라가 많아 방범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경찰이 요구하는 CCTV는 최소 200만 화소급 이상인데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2013 범죄 예방 디자인’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CPTED의 성공 조건으로 제도화, 당사자 간 체계적인 협업 구조, 구체적 전략 수립 등을 강조하고 있다. 영국은 내무부 주도로 CPTED 제도화에 힘쓰고 있다. CPTED 전문 경찰제는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영국의 CPTED 전문 경찰은 건축 개·보수 과정부터 범죄 환경 예방 관련 설비 유무를 조사하고 인증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CPTED는 주민들의 거주 공간과 지역 커뮤니티의 구조와 배치를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작업이다. 때문에 주민들의 협조·동의·참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시민과 경찰이 함께 법죄 상황과 범죄 기회에 대해 분석하고 위험성을 평가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도시 공간 변경을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이 협의한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야마구치 현의 방범모델단지가 꼽히고 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협력 치안 역시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개념 설정 및 용역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분야인데, 현장에서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경찰 주도의 방범 설비 확충에는 한계가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변화다. 실제로 경찰은 범죄 발생 지역 차량들의 고성능 블랙박스 카메라를 수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민간 경비업체와의 MOU(양해각서) 체결도 활성화되고 있다. 동대문경찰서는 지난해 10월부터 ‘여성 귀가 홈 안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독거 여성에게 경찰이 사설 경비업체인 에스원·KT텔레캅과 함께 홈 시큐리티 시스템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치안 취약 시간대(밤 10시~새벽 2시)에 발생하는 치안 인력 부족을 보완하고 있다.

지자체·경찰·주민·학계 등이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시도해볼 만하다. 함께 치안 실태를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치안 거버넌스’를 통해 재개발 지역의 일시적인 치안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찰은 치안 대책 및 방범 계획을 적극 홍보하고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치안 대책을 수립하는 데 반영할 수 있다. 자율방범대, 여성 귀가 도우미 등 주민들의 자율적인 치안 활동도 적극 활용될 수 있다. 지역 주민도 치안 서비스의 공동 생산자로 참여하는 것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과정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동경의 도시였던 서울의 이면을 마주하고, 선망의 직업이었던 기자의 어려움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기사는 우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모교가 위치한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은 범죄에 취약한 좁은 골목과 열악한 방범 설비를 가지고 있다. 2006년 ‘이문 뉴타운 4개 재정비 촉진 구역’으로 지정된 이래, 8년째 재개발 지연 지역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곳곳이 주민과 개발 당국 간의 갈등으로 뉴타운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지역 슬럼화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기사의 객관성 확보를 위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주민 20여 명의 목소리를 기사에 담았다. 치안 취약 시간대인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돌아다니며 조명 밝기 및 치안 위협 요소 등을 확인했다. 2주간의 취재 기간 동안 많이 배우고 값진 경험을 했다.

기사 말미에 CPTED와 협력 치안이라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이는 2010년대 이후 경찰과 지자체에서 적극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현 방안에서는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 부재 및 전시 행정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특히 재개발 지연 지역이 갖는 특수성과 난제들을 해결하는 맞춤형 정책이 없어 아쉬웠다. 지역 주민들 또한 치안의 공동 생산자로 참여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해 보였다. 취재를 하면서 주민들의 냉소적인 반응, 행정 실무자의 회피 등 어려움이 있었다. 그들이 내 지역, 내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해결을 위한 노력을 했으면 한다.   

지면 사정상 담지 못한 이야기가 많아 아쉬웠다. 문제의 원인과 실체를 확인하고 나름대로 해법을 모색해보는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는 큰 보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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