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꽃무늬 몸뻬바지 옷감도 예술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09.2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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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천연색> 등 대규모 전시회 연 설치미술가 최정화

요즘 설치미술가 최정화의 작품이 사방에 넘실거리고 있다. 문화역서울284에서 전관을 털어 1990년대부터 최근, 그리고 향후 최정화의 작업 방향까지 보여주는 <총천연색>이라는 대규모 전시회를 10월 중순까지 연다. 리움 개관 10주년 기념 <교감>전에는 나선형 계단으로 둘러싸인 로툰다 천창에서 로비로 이어지는 공간에 18m짜리 <연금술>이라는 최정화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최치원, 풍류탄생>전에도 최정화의 가짜 도리아 식 기둥이 해인사의 묘길상탑처럼 놓여 있다. 10월 국립현대무용단의 <불쌍>에는 그의 설치 작품이 무대에 직접 등장하고 주요 모티브가 된다. 도처에 최정화의 작품 이미지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옛 서울역사에서 열리고 있는 <총천연색>은 서울역의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다. 서울역 광장의 풍경은 늘 스산하다. 노숙인과 열변을 토하는 종교인, 비둘기가 광장의 주인처럼 머무를 뿐 서울역을 이용하는 그 많은 사람들은 서울역 광장이라는 공간을 ‘어서 빨리 벗어나야 할 곳’ 정도로 여기며 눈도 마주치지 않고 흩어진다. 이렇게 스산한 공간을 최정화는 ‘꽃처럼’ 만들어놓았다. 재료는 싸구려 플라스틱 소쿠리나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공, 그리고 장난감이다. 특히 역 광장에 설치된 높이 7m의 거대한 8개의 소쿠리 기둥으로 이뤄진 <꽃의 매일>이란 작품은 최정화 식 ‘놀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이는 이를 보고 ‘환갑상의 고임’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어떤 이는 단청이라고 불렀다. 최정화는 “각자 보고 느끼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각자의 예술로 남으면 그것이 정답”이라고 말했다.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 아래 앉아 있는 최정화. ⓒ 시사저널 박은숙
당신이 느끼는 것이 바로 예술

그는 초록·빨강·노랑 등 무속화를 떠올리게 하는 원색의 ‘유치’한 색상과 실생활에서 흔하게 보는 싸구려 소재, 쓰레기, 모란시장에 널려 있는 꽃무늬 몸뻬바지의 옷감으로 작업을 한다. 모두 한국 사회의 현대화 과정에서 부정되거나 무시당했던 소재들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작업은 그를 세계 도처의 비엔날레에서 가장 자주 초대하는 한국 작가로 만들었다. “서양에선 내 작업을 ‘재미(fun)있다. 우리는 신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데 네 작업이 그렇다. 그래서 너를 불렀다’고 한다. 비엔날레에 초청할 때도 나를 개막 3개월 전쯤 미리 부른다. 내 작품을 비엔날레를 알리는 간판으로 삼아 미리 설치한다. ‘예술은 미끼’라는 걸 실천하는 것이다. 접객·호객을 위한 ‘미끼’로 쓰는 것이다. 내가 외국의 미술관이나 시 정부와 작업할 때 첫 번째 요구하는 조건이 자리를 고를 수 있는 권리다. 두세 번 정도 방문해 설치할 자리를 고르는데 주로 인민광장이나 시청 앞, 공원 등이다.”

예술 방식에 대해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나에게 생존은 중요한 단어다. ‘왜 미술 해?’라고 물으면 ‘먹고살려고’라고 답한다. 바깥에서 전시해서 먹고살려면 (상업용) 간판보다 세야 한다. 풍선을 이용한 작품도 맥줏집 풍선에서 출발한 것이다.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도 먹고살기 위해 시작된 게 아닐까. 거기에 기원이나 기도라는 개념이 나중에 추가된 것일 뿐이다.” 

“생활 자체가 예술이다”

그래서인지 최정화는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 그게 내 직업”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이번 <총천연색> 전시에는 이른바 ‘최정화 컬렉션’이 총출동해 서울 연지동에 있는 작업실 창고가 텅텅 비었다. 최정화 컬렉션은 남이 보면 중고품, 심하게 말하면 한때 애틋하게 여기다 쓰고 버려진 생활 쓰레기다. 인형, 요강, 싸구려 프라모델, 이발소 그림, 신기료장수의 오래된 의자, 자개장, 로봇류의 플라스틱 가면 등. 그는 이것을 쌓기도 하고, 줄 맞춰 세우기도 하고, 자신의 작품과 조합하기도 하는 방식으로 ‘예술’을 완성했다.

그는 낡은 물건 애호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예술은 항상 옆에 있는 것이다. 생활 자체가 예술이다. 나는 (옛) 물건을 만날 때가 제일 신난다. 어마어마한 얘기를 걸어온다. 쓰다 버려진 물건에 쌓인 시간·사연·손길, 그런 부분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여기 전시회에 나와서 내 작품과 함께 설치된 중고품은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상 받으러 온 물건들인 셈이다. 내 전시를 보러 왔던 사람이 ‘우리가 버렸던 것인데 이걸 왜 여기 갖다놓았나’라고 하던 말이 기억난다. ‘지우고 싶었던 것’이란 말도 많이 한다. 나는 (전시에 출품된 중고품을) 가난과 연결시키는 것이 불편하다. 내 작품에 등장하는 얘네들은 상처와 향수다. 현대 예술은 밸런스를 찾아주는 것이다. 모든 생활의 도구를 모아서 질서를 잡아 배치하면 밸런스 잡힌 조각이 되고 예술이 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이유에서 실리콘으로 만든 배추 수십 포기를 실은 손수레와 그 옆에 칠이 벗겨질 정도로 낡은 소반을 켜켜이 쌓은 탑, 홍콩에서 건너온 수백돈이 넘는 황금꽃을 독립 공간에 함께 전시했다. 최정화 식 ‘믹스 앤 매치’인 것이다. 

그의 최근 작업은 ‘쌓기’에 집중되고 있다. ‘연금술’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예전보다 더 반짝이는 물건을 홀쭉하게 쌓아 올리고 있다. 이번 <총천연색>전에는 싸구려 줄무늬 비닐백을 거대하게 쌓아올린 탑이나 화장실 청소용 솔을 쌓아올린 게 등장했다. 화장실 청소용 솔로 만든 조명탑은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예술 작품은 주술이자 연금술이다. 작가가 이름을 얻는 것은 어마어마한 술법으로 되는 게 아니라 관객과 통했느냐가 문제다. 대중이든 다중이든 사람과 통해야 한다. 애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다 각자의 취향대로 찾아볼 수 있게 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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