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대학언론상] 장애인의 이동은 고단한 여정이었다
  • 신중섭 우태경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webmaster@sisapress.com)
  • 승인 2014.09.24 14: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휠체어 타고 저상버스 탑승 체험…기사 불친절, 환승 꿈도 못 꿔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시사저널 대학언론상’이 6편의 수상작을 냈습니다. 기자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한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수상작들 속에는 예비 언론인들의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다소 투박하고 덜 매끄럽지만 풋풋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원문을 게재합니다

신중섭(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4학년)
우태경(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1학년)

휠체어를 타고 버스를 기다리는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장애인이나 교통 약자가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광경도 본 적이 없다. 저상버스가 도착해도 리프트(경사판)는 제대로 내려줄지, 혹시나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진 않을지, 탑승하고 나서는 어떤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지 등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가 왔지만 일반버스라 그저 보내야 했다. 정류장 전광판에 표시되는 ‘저상’이라는 글자가 그 순간만큼은 간절했다. 햇빛을 한껏 받은 아스팔트의 열기가 머리끝까지 느껴지던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마침내 273번 저상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운전기사와 눈을 마주치고 버스 쪽으로 다가가니 아무 말 없이 버스 뒷문에 설치된 리프트를 내리려 했다. 원래 버스 기사는 장애인 승객에게 탑승 여부와 도움 등을 묻도록 돼 있다. 리프트가 내려왔지만 문 앞에 있던 가로수 탓에 제대로 고정되지 못했다. 고맙게도 근처에 있던 외국인이 앞으로 가라고 급하게 버스 기사에게 손짓했다. 리프트 하강 시간 자체는 1분 남짓에 불과했다. 그 1분 남짓한 시간도 버스 기사의 작동 미숙으로 리프트가 가로수에 부딪치는 바람에 지연된 것이다.

 

한 뇌병변 장애인이 저상버스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저상버스 기사 “많아야 하루 1명 이용”

버스를 타니 조금 혼란스러웠다. 휠체어를 어디에 위치시켜야 하는지 몰랐다. 낑낑거리고 있으니 기사가 “의자 젖히고 거기 고정하세요”라고 한마디 했다. ‘거기’가 무엇인지, 휠체어의 무엇을 ‘거기’에 고정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출발해버렸고 휠체어는 심하게 흔들렸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우왕좌왕하다 장애인 표시가 돼 있는 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 두 명이 비켜주고 나서야 의자를 뒤로 젖힐 수 있었다. 버스 기사가 말한 ‘거기’는 따로 마련된 고정 장치였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설명문을 읽고 휠체어를 고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동행자 없이 혼자서 이 모든 것을 해야 한다면 넘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짧은 거리라고 해도 장애인들에게 ‘이동’은 순탄하지 않은 ‘여정’일 것만 같았다. 그들은 비장애인처럼 편하고 쉽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일까.

시민들에게 대중교통은 원하는 곳까지 편하게 가도록 도와주는 절친한 벗이다. 하지만 친숙한 벗이 장애인이나 고령자, 영·유아를 동반한 교통 약자에겐 두려운 존재다. 서울시는 교통 약자를 위해 많은 장치를 마련했다. 대부분은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을 중심으로 준비돼 있다. 저상버스, 서울시 장애인 노약자 무료 셔틀버스, 중증장애인 이동 차량 무료봉사대, 장애인 콜택시 등이다.

그중에서도 저상버스는 출입구에 계단이 없고 차체 바닥이 낮으며 리프트가 장착돼 있어 교통 약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다. 2014년 7월 말 기준 서울시 전체 시내버스의 31.2%가 저상버스다. 과거에 비해 흔한 편이다. 서울시는 2017년까지 저상버스 비율을 55%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의 저상버스 비율은 높아지고 있지만 이용하는 장애인은 그리 많지 않다. 중랑 공영차고지에 직접 찾아가 260번 저상버스를 운전하는 기사에게 물어봤다.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많아야 하루에 한 명 정도인데 행사가 있을 때나 조금 늘어나는 정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장애인을 위한 버스라지만 실상 장애인이 버스를 타는지 의문이다” “장애인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승객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직접 살펴보기로 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역·강변역·여의도·청량리 버스환승센터와 강남대로 신논현 버스정류장을 돌며 4시간 30분 동안 관찰해봤다. 멈춰 선 397대의 버스 중 저상버스는 107대였고 저상버스 이용 승객은 461명이었다. 리프트를 이용한 지체 장애인이나 교통 약자는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휠체어 탑승은 미안한 일”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박성우 과장은 “서울의 저상버스 이용률이 낮은 것은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부족한 저상버스 수와 서울의 환승 시스템을 문제로 꼽았다. 현재 서울의 교통 시스템은 환승 중심이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거나 다른 권역의 목적지에 가려면 버스 혹은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야 한다. 정상인들도 이리저리 환승하는 것이 꽤 번거로운 일이다. 하물며 장애인들에게 환승은 커다란 장벽이 아닐 수 없다. 박 과장은 “모든 노선에 저상버스가 충분히 배차된 것도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장애인들은 첫 버스를 탈 때뿐 아니라 환승할 때도 대기 시간이 길다. 그나마 해당 구간에 저상버스가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저상버스가 없으면 중간에서 아예 발이 묶이고 만다. 택시를 잡으면 될 것 같지만, 장애인 콜택시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장애인들은 그동안 이동권을 위해 지하철공사 측에 인프라 구축을 요구해왔다. 실제로 인프라가 갖춰지자 장애인들의 지하철 이용이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장애인이 붐비는 시간에 버스를 타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미안한’ 일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 일쑤다. 박 과장은 “이들의 시선 때문에 장애인들이 버스 탑승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체험한 결과 리프트를 내리고 올라타는 데 걸린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시민들의 도움과 이해가 있다면 이동에 크게 방해받지 않을 수준이다.

일부 버스 운전기사들의 태도도 문제다. 버스 기사들을 대상으로 인식 개선 교육이 시행되고 있지만 불친절함은 여전하다.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 약자를 위해 마련된 저상버스 기사 중에는 사람이 가득 찼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도움 여부 등을 묻지 않거나, 휠체어 고정 장치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기사도 체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시민의 인식 개선, 버스 기사의 불친절, 인프라 미흡 등이 개선되지 않으면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은 요원해 보였다.    

저상버스의 실태에 대한 서울시의 생각은 어떨까. 서울시청에 전화를 걸어 저상버스 담당 공무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담당 공무원은 “저상버스가 처음에는 장애인을 위해 도입됐지만 현재는 교통 약자와 일반 시민을 위한 차량 고급화 차원에서 추가 확대를 계속하는 것”이라며 “장애인의 이용률이 낮다고 저상버스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속적으로 저상버스 수를 확대하고 있지만 장애인 및 교통 약자가 대중교통을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시대는 멀어 보였다. 도시 곳곳으로 들어가는 마을버스는 편리하지만 저상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장애인도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교통 약자 이동편의증진법’은 있으나 마나 한 것 같다. 이용률이 낮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하는 당국이나 장애인 탑승 시 기다리는 시간을 귀찮아하는 시민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장애인은 우리 가족이자 이웃이라고.

 

ⓒ 시사저널 임준선
10여 년 전 서울에 저상버스가 도입된 이후 매년 저상버스 비율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러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장애인은 이용하지도 않는 비싼 버스를 계속 왜 늘리느냐” “장애인은 타지도 않는데 버스 구조 때문에 공간만 비좁다”며 저상버스 증차를 중단하자는 의견도 있다. 소수의 장애인이 이용한다고 해서 저상버스 증차를 중단하자는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취재 과정에서 휠체어를 탄 승객을 본 적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저상버스 숫자가 적어서 장애인들을 보기 힘든 것일까’ ‘장애인의 수가 적어서 그들을 발견하기 힘든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왜 장애인의 저상버스 이용률이 낮은 것인지 확인해보고 이용률이 낮다면 무엇 때문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장애인의 버스 이용률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버스 승강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저상버스 번호와 도착 시간, 탑승 인원 등을 기록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서울을 한 바퀴 돌며 4개의 환승센터(강변·서울역·여의도·청량리)와 신논현 정류장에서 장애인이 탑승하는지 알아봤다.

휠체어를 빌려 버스에 탑승해본 것은 잊지 못할 기억이다. 우여곡절 끝에 수동 휠체어 한 대를 겨우 빌려 정류소에 대기하는 것부터 하차까지 체험했다. 저상버스가 과연 편한지 장애인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여러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된 값진 시간이었다. 더욱이 수상까지 하게 돼 올여름의 기억이 남다르다. 이 기사를 읽고 많은 사람이 “장애인은 저상버스 이용을 별로 안 하는데 왜 그렇게 투자하지?”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이웃인 장애인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묶여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