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하면 뭐 하나, 나중에 딴소리하는데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9.1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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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1년, 정부와 유족 합의서 ‘휴지’ 될 판

대형 참사가 터지면 국민들의 공분이 일어나고 여론은 들끓는다. 정부 부처와 관계 기관은 여론을 의식해 서둘러 대책을 발표한다. 다음엔 피해자 측과의 합의에 급히 나서고, 해당 사건은 잊혀져간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되풀이되는 ‘참사 해결 공식’이다. 안타깝게도 세월호 참사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 듯하다. 유족들은 강경한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 정치권은 속수무책의 무능함을 드러내고 있다.

시사저널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 당시 정부가 유족들과 무엇을 협상했고 어떤 대책을 내놓았는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당시 정부 당국과 유족 측이 합의한 합의서도 입수했다.

“사고조사반, 수사권 없어 진실 규명 불가능”

2014년 7월18일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 희생 학생 유족이 충남 태안군 백사장항 해수욕장 인근 사고 현장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7월 태안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이 구명조끼 없이 교육을 받다 바닷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늘 그렇듯 ‘안전 불감증’ 문제로 여론이 들끓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사고 직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더 이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관계 부처 중 교육부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사고 다음 날 바로 해병대 캠프 사고 관련 대책본부를 구성하고 관련 내용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나승일 차관을 본부장으로 하고 여성가족부와 공주대학교도 참여시켰다. 차관이 직접 본부장을 맡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사고대응총괄반·사고조사반·사후대책반으로 나눠 파트별로 신속히 대처하겠다는 의욕적인 계획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유족들은 장례 이후 대책본부의 행보가 ‘용두사미’였다고 주장한다. 당시 대책본부에서 사고조사반이 맡은 부분은 사고를 조사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사고조사반의 역할은 해당 학교의 교장 등 몇 명에게 징계를 내리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가뜩이나 태안 해병대 캠프 관련 수사가 지금까지도 의혹을 받고 있는 터라 사고 조사를 제대로 하겠다는 교육부의 말에 유족들은 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는 유족들이 사고조사반의 업무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대책본부에 몸담았던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사고조사반의 업무 범위는 학교와 업체의 계약 부분 등과 관련한 징계 조치 수준이다. 수사권이 없는 상태에서 관련 사건을 직접 조사하겠다고 나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이 말은 형식 논리로는 맞다. 그러나 애초 권한이 제한돼 있는 상태에서 ‘사고조사반’을 따로 꾸렸다는 것 자체가 ‘보여주기 식’ 아니었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당시 서남수 교육부장관이 사고 직후 유족들을 방문해 나눴던 대화는 이러한 지적에 설득력을 싣는다. 사고 다음 날인 지난해 7월19일 서 장관은 유족들을 방문한 자리에서 “시간대별로 철저히 경찰이 조사를 해서 결과가 나오면 발표를 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유족들은 “진실이 왜곡될까 봐 걱정돼서 그런다. (수사가 제대로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서 장관은 “그렇게 하겠다. 서울 올라가는 대로 (경찰) 상급 부서에도 협조를 요청해 수사가 제대로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본부에 대한 유족들의 기대가 단순히 교장을 문책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해병대 캠프 참사에 대한 수사 문제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가장 ‘뜨거운 감자’다. 이 때문에 재수사 필요성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사선상에 올랐던 한 여행사는 인터넷에 수련 프로그램을 홍보하며 버젓이 ‘씨랜드 참사, 해병대 캠프 참사 등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고 홍보를 하고 있다.

보상 협상 과정도 깔끔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아이들 장례식 전날에야 장례를 치르고 나면 보상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급히 법조계 전문가 등을 수소문해 7억원 정도가 적정 액수라는 답을 얻었다. 이 금액을 협상에 나설 상대편 핵심 관계자에게 미리 이야기하자 “적정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협상이 진행됐다.

2013년 7월18일 고교생 5명이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항 인근 바다에서 실종된 후 경찰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유족 “별지 합의서 있다”, 교육부 “몰랐다”

협상 테이블에는 교육부 관계자와 교육부장관을 대신한 공주대학교(국립) 총장 및 관계자 등이 나와 있었다. 이들은 6개 항목이 적힌 합의서를 들고 왔다. 항목 모두 유족이 아닌 정부 측에서 작성한 것이었다.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당시 합의 내용이 담긴 합의서를 입수했다. 6개 항목은 ‘국가보상금 3억원 지급’과 함께 ‘국가 차원의 의사자 건의’ ‘위로금 지급’ 등이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위로금 액수가 빠져 있었다. 유족들은 “금액을 명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당시 관계자들은 구체적 액수가 적힌 합의서에 사인하기를 망설였다. 다만 ‘법이 정하는 최대한 수준으로 보상될 수 있도록 노력’이라는 문구가 액수를 대신했다. 그러자 당시 자리에 배석했던 공주사대부고 총동문회 관계자가 “별지에 따로 합의서를 작성하자”고 나섰고 그렇게 해당 자리에서 본 합의서와 함께 별지 합의서가 작성됐다. 별지 합의서에 언급된 위로금은 공식 합의서와 동일한 내용이었으나 구체적 액수가 적혀 있었다.

당시 대책본부에서 사후대책반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해당 별지 합의서에 대해 “별지에 대해서는 장관은 물론 나도 몰랐다. 당시 공주대 총장이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 분 사인이 없는 별지 합의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별도 합의서의 법적 효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공주대 총장이 교육부장관을 대신해 배석한 상황에서 별지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유족 입장에서는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당시 자리에 참석했던 유족 대표 이후식씨는 “별지 합의서를 작성할 때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증인’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선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합의서 내용에 적힌 ‘국가 차원의 의사자 건의’ 부분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대책본부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에 건의했으나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의사자 지정에 대해) ‘노력’한다고 했지 해주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후식씨는 “‘국가 차원’에서 건의를 하겠다고 했는데 그러한 주장은 말이 안 된다. 그럴 거면 유족들이 개인적으로 의사자 신청을 하지, 뭐 하러 국가 차원으로 도와준다고 한 것이냐. 실제로 1명은 의사자 지정이 됐는데 그것도 유족이 개인적으로 신청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본지가 입수한 정부 측과 유족들 간의 합의서에는 ‘노력한다’ ‘요청한다’ 식의 표현이 눈에 많이 띄었다. 장례를 치르고 나자 정부는 위로금이 명시된 또 다른 합의서를 들고 유족 중 2명과 합의를 봤다. 이 합의서에는 “법이 정하는 최대한 수준으로 보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나와 있다. 그 위로금의 액수는 2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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