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잔말 말고 한판 붙자”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4.09.0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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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민당 2인자 이시바 간사장, 입각 관계 없이 내년 총리 도전

 2012년 9월26일 자민당 총재 선거. 이시바 시게루 후보는 199표(지방 대의원 165표, 국회의원 34표)를 얻어 아베 신조 후보를 1차 투표에서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과반수를 얻지 못한 탓에 결선투표를 해야 했다. 이시바 후보의 당선이 점쳐졌지만 당내 국회의원들만 참가하는 2차 투표 결과는 그에게 충격으로 돌아왔다. 득표수 89표. 108표를 얻은 아베에게 패배했다.

당내 최대 파벌의 지지를 업고 출마했기에 대다수 사람은 이시바를 차기 자민당 총재, 나아가 총리가 될 것으로 봤다. 지방 대의원들은 그를 강하게 밀었다. 기존 자민당 리더들에게 불만을 갖고 있었고, 주관이 뚜렷한 이시바의 리더십에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2007년 9월 1기 정부에서 중도하차한 아베의 유약한 이미지와 대비됐다. 그런데 막상 결선에서는 이 강경한 이미지가 발목을 잡았다. 지방 의원들과 달리 국회의원들은 이시바의 강성 이미지를 부담스러워했다.

선거 결과, 자민당의 권력은 두 사람이 나눠 가졌다. 총리는 아베, 당권의 핵인 간사장은 이시바가 맡았다. 과거 한 차례 물러난 적이 있던 아베를 떠올리며 많은 사람은 새 총리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결국 이시바에게 총리 자리가 넘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2년 12월16일 총선 승리를 축하하며 아베 신조 당시 자민당 총재(왼쪽)와 악수하는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간사장. ⓒ EPA 연합
간사장직 내놓으라는 아베에 결국 굴복

하지만 오산이었다. 달라진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 카드를 들고나왔고, 1기 정부와 달리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각종 선거에서 연승하고 있다. 이시바 간사장은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줄어들었다.

아베 총리에게 이시바 간사장은 내년 가을에 열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존재감이 약해졌다고 이시바 간사장의 힘까지 빠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간사장은 공천권과 자금을 총괄해 당내 세력 확장에 유리한 자리다. 지난해 1월 이시바 지지 세력인 ‘무파벌연락회’가 결성되는 등 당내 세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시바가 간사장직을 내려놓길 원하고 있다. 그래서 9월 초로 예정된 내각 개편에서 신설되는 안전보장법제 담당상 자리를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 총재 선거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이시바 간사장은 장관직을 거절하고 오히려 “간사장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각 인사권이 총리 고유의 권한인데도 제안을 거절하고 오히려 “간사장을 하겠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아베는 두 번째 카드를 꺼냈다. 지방창생 담당상을 제안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시바 간사장 입장에서는 안전보장법제 담당상이라는 자리는 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둘러싼 법안을 심의할 때 국회에서 답변해야 하는 책임자다. 만약 입각하게 된다면 야당의 집요한 공격 대상이 되고 이미지 손상을 각오해야 한다.

반면 지방창생 담당상은 조금 다르다. 지방의 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부처인 만큼 지방 의원들이 지지 기반인 이시바 간사장의 입장에서 나쁘지 않은 자리다. 장관직을 수행하면서도 차기를 도모할 수 있다. 게다가 아베 총리의 제안을 연거푸 거절할 경우 일어날 당내 고립도 부담이 됐다. 안전보장법제 담당상을 거절한 직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인사는 총리의 전권 사항이다”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이시바 간사장의 공개적인 불참 표명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와키 마사시 참의원 간사장 역시 “안보 정책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정책에 대한 개인의 의견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조직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게 상식이다”고 힐난했다.

이시바 간사장을 말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강경파’ ‘웃지 않고 날카로운 사람’ ‘논리 정연한 정치인’ 등이다. 강하고 날카로운 이미지로 대표되는 정치인이다. 그 역시 세습 정치인이다. 1957년생으로 게이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미쓰이 스미토모 은행원으로 일하다, 정치가인 부친이 사망하자 지역구를 물려받아 정계에 입문했다. 9선 의원으로 정치 입문 이후 줄곧 외교·안보·국방 분야를 담당했다. 방위청장관 시절에는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각종 TV토론에 출연해 강한 군대와 헌법 개정 등을 주장하는 강경 우파 정치인이다.

ⓒ EPA 연합
아베 측 “장기 집권 최대 걸림돌은 이시바”

아베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의 헌법 해석 변경을 추진하는 과정에 이시바의 의견이 반영되었더라면 지금보다 더욱 강한 내용이 담겼으리라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헌법 해석 변경 문제에서 자민당이 연립정권인 공명당과 협의하는 과정을 지켜본 후 그는 “아베 총리가 공명당의 주장을 너무 많이 수용해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가 내세운 입각 거부 이유는 이랬다. “아베 총리가 내 생각과 다르다.” 그러면서 그는 “국회 답변에서 총리와 다르게 주장하면 당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100% 총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아베 총리가 9월 초 발표할 2기 내각은 장기 집권을 위한 출발점이나 다름없다. 총리의 측근들은 이시바 간사장을 밀어내는 일이 장기 집권으로 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 본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은 과거의 교훈 때문이다. 1978년 당원 예비선거에서 후쿠다 다케오 당시 총리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지원을 받은 오히라 마사요시 간사장에게 졌다. 이런 전례 때문에 이시바 간사장을 내각으로 내보내야 안심하고 내년 가을 총재 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본다.

또 다른 이유는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가 깊지 않다는 점이다. 아베 1기 정부 시절인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자 당시 이시바는 의원 총회에서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 분명히 해주기를 바란다. 총리직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정면으로 공격했다. 아베 주변에서는 당시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이시바의 난(亂)’이라고 불리는 입각 거부를 한 차례 겪으면서 일본 내 관심은 미래 권력을 향한 두 사람의 경쟁에 쏠리고 있다. 이시바 간사장의 당내 입지가 좁아질지, 아니면 새로운 리더로 부각될지는 한·일 관계의 기상도를 변화시킬 만큼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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