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루 집안’에 박영선 설 땅은 없다
  • 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8.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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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부재로 표류하는 ‘새정치연합호’…친노 좌장 문재인 행보 주목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제1야당의 존재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끝없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7·30 재보선 참패 이후 ‘박영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띄우며 당 재건을 꾀했지만, 세월호 특별법에 발이 묶이면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40일이 넘는 단식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의 면담 요청을 거부한 박근혜 대통령과 재보선 승리 이후 급격히 강경 모드로 돌아선 새누리당의 지금 모습은, 방한 기간 중 세월호 유가족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여 감동을 선사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사뭇 비교된다. 이처럼 정부·여당이 공격 빌미를 상당부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이를 활용하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 자중지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심한 행태를 연출하고 있다.

문제는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여당과의 협상 끝에 두 차례의 합의안을 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당내 강경파와 세월호 유가족들의 반발에 부닥쳐 추인을 번번이 거부당하는 등 당의 리더십이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유가족들이 박 위원장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표출하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어 세월호 특별법의 출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당 혁신을 이루기는커녕 제1야당으로서의 존재마저 부정당하며 새정치연합호(號)는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내몰렸다.

8월19일 새정치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에 재합의한 뒤 열린 의원총회에서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뉴시스
박영선 “친노가 사사건건 반대” 불만 토로

당 대표 격인 박 위원장의 리더십은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의 잇단 추인 불발 사태를 겪으면서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그간 당내 소장·강경파의 대표 주자로 평가받았던 박 위원장은 지난 8월4일 정치권에서 ‘독배’로 일컬어지는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고 첫 일성으로 “낡은 과거와 단절하겠다”며 ‘투쟁 정당 탈피’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가 첫 작품으로 내놓은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이 두 차례나 거부되면서 과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선명성’은 부메랑이 됐다. 특히 1차 합의안이 파기된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등에 업고 우여곡절 끝에 타결한 2차 합의안마저 당내에서 추인이 불발된 것은 ‘박영선 리더십’ 자체가 아예 부정당하는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으로부터 “적과의 동침을 했다”는 비난을, 당내에선 “의사 결정의 절차와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새누리당으로부터는 “협상 파트너로 믿기가 어렵다”는 불신을 받으며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박 위원장의 위기는 ‘독단적 리더십’ 탓에 스스로 자초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1차, 2차 합의안이 거부당하는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합의안에 대한 협의가 없었다”며 박 위원장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였던 터다. 당내에서도 제대로 된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박영선의 멘토’로 불리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8월1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 특별법은 최근 유가족들과는 물론 당내 소통도 부족했다고 자인한다”고 박 위원장의 소통 부족을 지적했을 정도다. 박 전 원내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 위원장이 내 말을 듣는다고 하는 얘기는 박 위원장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박 위원장이 주변의 조언이나 의견을 들을지는 몰라도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외국인투자촉진법을 둘러싼 여야 간 협상 파행 사태 당시 일화를 거론하기도 했다. 박 전 원내대표는 “당시 법사위원장이었던 박 위원장이 나하고 처리해주기로 약속했었는데, 의총에서 갑자기 일어나더니 반대한다고 얘기해 당황스러웠다”며 “내가 찾아가 화를 냈더니 ‘제가 이렇게 할 줄 알면서 그러시는 거라 생각했다’고 하더라”고 소개했다.

원내대표 경선 당시 자신의 우군이었던 당내 강경파들이 자신의 결단을 존중해줄 것이라고 오판한 것도 ‘독단적 리더십’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원내대표 경선 당시 박 위원장을 지지했던 당내 강경파 그룹인 ‘더 좋은 미래’ 소속 의원들은 이번에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놓고 두 차례의 추인 거부를 이끈 주역들이었다.   

일각에선 당내 역학 구도상 박 위원장의 리더십 위기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를 겸하면서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쥔 박 위원장이 ‘당 혁신’을 내세워 기존의 당내 역학 구도를 흔들려고 하는 데 대한 각 계파의 반발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이는 재보선 참패 상황에서 당내 의원들이 비대위 성격을 ‘혁신형 비대위’로 규정하긴 했지만, 각 계파의 속내는 ‘관리형 비대위’를 원했다는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김철근 새정치전략연구소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새정치연합은 몇 개 계파의 담합 구조이기 때문에 어느 대표가 들어서도 단일대오를 통해 한데 힘이 모아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박 위원장의 리더십 문제도 있지만, 이것이 새정치연합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정치공학적으로만 보면 결국 (각 계파는) 박 위원장이 혁신 비대위원장이 되길 원치 않는다”며 “이번 세월호 특별법을 계기로 박 위원장을 흔들어 힘을 못 쓰게 하고, 비대위원장이라는 자리만 유지할 정도로만 해놓은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해 박 위원장은 최근 사석에서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親盧) 진영을 겨냥해 “당내 친노들이 매 사안마다 사사건건 반대를 하면서 지도부를 흔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8월4일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7·30 재보선 당선 의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문 의원 단식, 친노·강경 그룹에 시그널 준 것”

이런 맥락에서 박영선 위원장의 최근 행보가 ‘비상 대권’을 넘어 ‘차기 대권’을 바라보는 행보로 비쳐지면서 당내 대권 주자들의 견제 심리가 발동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이 관측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당내 친노계의 좌장 격인 문재인 의원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와 맥이 닿아 있다. 문 의원은 8월15일부터 일주일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그는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여야의 극적 타결 가능성이 거론됐던 19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고(故)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를 찾아가 단식 중단을 호소하며 동조 단식에 돌입했다.

박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재합의안에 대해 유가족들을 설득하고 있던 당시 문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유족들은 이미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보했다. 대신 특별검사라도 괜찮은 분이 임명될 수 있게 하자는 상식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유족들이 지나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문 의원은 같은 트위터 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씨와의 면담을 요청하는 데 방점을 두긴 했지만, 정치권에선 박 위원장과 유가족들이 재합의안을 놓고 설전을 벌이던 시점에 문 의원이 이런 글을 올린 것은 유족들의 손을 들어준 행위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야권 진영의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당직자는 “재협상을 타결한 날 문 의원이 단식을 하고 유족들의 편을 들어준 것은 당내 친노·강경 그룹에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짚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문 의원의 행보는 차기 당권을 겨냥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물론 정치권에선 문 의원의 행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원내의 한 핵심 인사는 “문 의원이 선의로 동조 단식을 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이제 둘 다 단식을 접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김씨가 단식을 접고 싶어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어떻게 접느냐”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김영환 의원은 “(문 의원이) 단식하는 것을 말릴 순 없는 일이지만, 그것보다는 당 지도부와 함께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문 의원의 행동이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박 위원장을 흔들어 차기 당권을 친노가 잡으려는 상황에 세월호를 꿰맞추려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며 “문 의원은 야당 대선 후보를 지냈던 사람으로서 국가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동조 단식을 하면서 정치가 올스톱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것은 대선 후보를 지낸 공인으로서 올바른 처신이 아니다”고 쓴소리를 했다.

8월19일 문재인 새정치연합 의원(오른쪽)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 중인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조기 전대론 재부상…“12월 초 가능” 지적도

어쨌든 박영선 위원장은 현재 고립무원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박 위원장에겐 중도·온건 성향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비노(非盧) 그룹이 잠재적 우군으로 남아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별다른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 비노 그룹으로 분류되는 한 재선 의원은 “그간 박 위원장과 껄끄러웠던 중도·온건파들이 박 위원장을 옹호하는 이상한 상황이 됐다”고 현 상황을 꼬집기도 했다.

박 위원장의 이런 ‘벼랑 끝’ 처지는 박 위원장이 앞으로 자신의 거취를 두고 장고에 들어가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실제 박 위원장 주변에서도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며 전격적인 사퇴 결단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만약 박 위원장의 사퇴가 현실화될 경우, 새정치연합은 리더십 공백기를 맞으며 대혼란 상황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당 안팎에선 ‘과도기적’ 비대위 체제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당의 구심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기 전당대회론’이 대두되고 있다. 범친노계로 분류되는 한 재선 의원은 “어차피 과도 체제에서 무엇을 하기란 쉽지 않다”며 “당을 조기에 정상화하기 위해선 새로운 구심점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특별법 추인 거부 정국에서 당내 각 계파 진영이 보여주고 있는 행보를 보면 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하반기 국회 일정 등을 감안할 때 조기 전대를 한다고 해도 12월 초에나 가능해 내년 2월께로 예상되는 정기 전대 시기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아직까진 가능성이 작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의 리더십이 올바로 서지 못한 채 흔들리는 새정치연합의 모습을 지켜보는 정치 전문가들의 시선은 냉랭하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새정치연합은 정치적 아노미 상태다. 손과 발, 머리와 몸뚱이가 모두 따로 놀고 있다”며 “이렇게 계속 따로 놀면 공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율 교수도 “지금의 새정치연합은 정당의 모습이 아니다. 정당 존재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며 “정치권이 합의한 사항을 장외 집단에 허락을 받는 게 말이 되느냐”고 성토했다. 그는 “국민 상당수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입장에 공감하지만, 그들의 주장을 따라야 한다는 것과는 또 다르다. 새정치연합도 유가족의 아픔을 공감하되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해 그 주장이 무리하면 내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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