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이 병역 면제 루트 됐나
  • 김경윤│스포츠서울 기자 ()
  • 승인 2014.08.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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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엔트리 24명 중 군 미필 13명 금메달 못 따면 후폭풍 거셀 듯

브라질월드컵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은 엔트리 발표 과정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른바 ‘홍명보의 아이들’로 불리는 선수를 대거 발탁했다는 이유에서다. 명확한 기준과 원칙 없이 ‘자기 사람’을 챙겼다는 질타가 끊이지 않았고, 영화배우 김보성의 ‘의리’ 열풍과 맞물려 ‘엔트으리’를 짰다는 비난을 들었다. ‘엔트으리’ 논란은 야구계로 번지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회는 최근 인천아시안게임(AG) 최종 엔트리 명단을 발표했는데, 객관적인 실력보다는 병역 미필 선수 위주로 선발했다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AG에는 총 24명의 선수가 출전한다. 투수는 김광현(SK), 양현종(KIA), 안지만·차우찬·임창용(이상 삼성), 한현희(넥센), 봉중근·유원상(이상 LG), 이재학(NC), 이태양(한화), 홍성무(동의대) 등 11명이 발탁됐다. 홍성무는 아마추어 선수 쿼터를 받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포수는 강민호(롯데)와 이재원(SK)이 낙점됐다. 내야수는 박병호·강정호·김민성(이상 넥센), 오재원(두산), 황재균(롯데), 김상수(삼성)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외야수는 김현수·민병헌(이상 두산), 나성범(NC), 손아섭(롯데), 나지완(KIA) 등 5명이다.

지난 7월29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넥센과 한화의 경기에서한화 선발 이태양이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7월8일 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웨스턴팀 투수 양현종(KIA)이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중 군 미필자는 13명이다. 차우찬·한현희·유원상·이재학·이태양·김민성·오재원·황재균·김상수·나성범·손아섭·나지완·홍성무는 금메달을 따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다.

병역 미필자를 구단별로 살펴보자. 절묘하게 대다수 구단이 1~2명의 군 미필 선수를 대표팀 명단에 올렸다. 삼성·NC·넥센·롯데가 각각 2명, 한화·KIA·두산·LG가 각각 1명씩이다. SK를 제외한 전 구단의 군 미필 선수가 이름을 올렸다. 구단별로 군 미필 선수를 안배했다는 오해를 살 만하다.

2006년 도하AG 군 미필 14명, 동메달 수모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한 선수의 성적과 국제 경험, 기량을 살펴보면 ‘오해’는 더 짙어질 수밖에 없다. 기술위원회는 2차 엔트리 명단에 포함된 삼성 우완 윤성환(군필)을 탈락시킨 대신 이태양을 선발했다. 최종 엔트리 발표 시점(7월28일)을 기준으로 윤성환은 9승 5패 방어율 3.43을 기록했고, 이태양은 4승 5패 방어율 4.42를 마크했다. 경험과 성적 면에서 이태양이 떨어진다. 내야에서도 각종 국제대회에서 안정적인 기량을 선보인 2루수 정근우(한화), 3루수 최정(SK)이 탈락한 대신 김민성·황재균·김상수가 포함됐다. AG 같은 단기전에선 수비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기 때문에 경험 많은 베테랑 선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표팀 사령탑인 삼성 류중일 감독은 엔트리 발표 자리에서 리더의 부족 현상에 대해 “전혀 상관없다.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다”라고 잘라 말했다.

정부는 지난 1973년 국위 선양을 하는 체육인과 예술인에게 혜택을 주고자 체육병역특례법을 입법했다. 이후 올림픽·AG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에게 병역 혜택이 주어진다. 매년 20명 정도가 이 혜택을 받고 있다.

야구선수에게는 AG 금메달이 병역 혜택의 유일한 길이다. 야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제외됐으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도 2006년을 마지막으로 병역 혜택이 사라졌다.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야구선수들이 AG를 통해 병역 면제를 받는 것은 다른 종목에 비해 비교적 쉬운 편이다. 이번 인천AG 야구 경기에 참가하는 국가는 총 10개국이다. 일본·타이완·중국을 빼면 대다수 팀의 실력은 매우 떨어진다. 일본은 사회인 야구선수 위주의 ‘3진급’ 선수가 출전하며 타이완도 자국 리그 대표 선수가 대거 불참한다. 타이완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국가지만 이번 AG부터 체육인에게 금메달 병역 혜택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타이완은 AG 중에도 정상적으로 자국 리그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라 대부분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가 AG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야구 대표팀의 역대 AG 성적은 매우 좋다. 프로 선수가 뛰기 시작한 1998년 방콕AG부터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2006년 카타르 도하AG를 제외한 모든 AG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렇기에 AG는 야구계에 병역 혜택을 주는 수단으로 변질된 느낌이다. 매번 AG 엔트리엔 병역 미필 선수가 다수 이름을 올리면서 논란이 반복됐다. AG가 병역 미필 야구선수의 합법적 병역 면제 루트로 전락해버렸다는 비난이 일 만하다.

최종 엔트리 상당수 최근 불안한 모습

문제는 군 미필 선수 위주로 AG 최종 엔트리를 구성했다가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2006년 도하AG 때다. 당시 대표팀은 일본·타이완 대표팀에 패하며 동메달에 그쳤다. 그때 22명의 대표팀 선수 중 군 미필 선수가 14명이나 됐다. 이번 인천AG(13명)는 물론 금메달을 땄던 2010년 광저우AG(11명)보다 훨씬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당시 대표팀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활약하던 추신수(현 텍사스)를 제외해 논란을 낳았다. 김재박 당시 대표팀 감독은 선수 선발 과정에서 “추신수의 기량이 검증되지 않았고 기왕이면 병역 혜택은 국내 선수에게 주는 게 낫다”고 밝혀 논란이 커졌다. 이해관계 속에 최강 전력으로 팀을 꾸리지 못한 대표팀은 타이완 대표팀에 2-4로 패했으며 사회인 야구선수가 주축이던 일본 대표팀에도 7-10으로 졌다.

물론 인천AG는 원정이 아닌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여서 우리 대표팀에 유리하다. 가장 강력한 경쟁 팀인 타이완이 도하AG 때의 전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다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만에 하나 금메달을 따지 못할 경우, 엔트리 문제에 대한 논란과 함께 국민적인 후폭풍이 거세게 불 것으로 예상된다.

설상가상으로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 중 상당수가 최근 프로야구 정규 시즌 경기에서 불안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팀 마무리 투수로 꼽히는 임창용은 AG 최종 엔트리가 발표된 이후 3경기에서 3.2이닝 동안 3실점하며 컨디션 난조에 시달리고 있다. 임창용과 함께 대표팀 더블 스토퍼로 꼽히는 봉중근도 7월30일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흔들리고 있다. 대표팀 에이스로 꼽히는 양현종도 8월5일 잠실 두산전에서 4.1이닝 8실점으로 부진했고 이태양은 최종 엔트리 발표 이후 2경기에서 6.1이닝 동안 15실점했다. 이태양을 빼면 대표팀 우완 정통파 선발 투수는 아마추어인 홍성무가 유일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매번 반복되는 AG 야구 엔트리 선발 문제는 야구계는 물론 전 체육계가 고민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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