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인형 껴안고 자는 상금왕
  • 안성찬│골프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8.14 11: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효주, 한 시즌 최다 7억7000만원 획득…“100만 달러도 시간문제”

2012년 6월 일본 그린이 발칵 뒤집혔다. 17세 여고생 때문이다. 일본 효고 현 롯코 국제G.C.(파72)에서 끝난 일본 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산토리 레이디스 오픈 최종일 경기에서 김효주(현재 19세, 롯데 소속)는 무려 11타를 줄이는 ‘신들린 샷’으로 합계 17언더파 271타를 쳐 정상에 올랐다.

전반 9홀에서 7개의 버디를 낚은 데 이어 후반에 4개의 버디를 추가하며 11언더파 61타를 쳐 3일 동안 선두를 지켰던 사이키 미키(일본)를 제치고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구옥희가 2003년 기록한 JLPGA 투어 18홀 최소타 62타를 갈아치운 것이다. 당시 국가대표였던 김효주는 대원여고 2학년이었다. 일본 언론에서 그를 ‘괴물’로 표현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 그의 우승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이에 앞선 2012년 4월 일본보다 기량이 한 수 위인 한국 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롯데마트여자오픈에서 아마추어 자격으로 내로라하는 프로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세계여자골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그해 10월 프로로 전향한 김효주의 행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소리 소문 없이 ‘김효주 시대’를 열어나갔다.

ⓒ 김효주 제공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와 여러모로 닮아

재미있는 점은 이번 시즌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를 휩쓸고 있는 리디아 고(17·한국명 고보경)와 여러 면에서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리디아 고는 최근 100만 달러의 상금을 돌파했다. 최연소 기록이다. 김효주도 한 시즌 최다 상금을 돌파했다. 그는 7억7017만원을 벌어들여 2008년 한 해 동안 신지애가 획득한 7억6518만원을 넘어섰다.

둘 다 아마추어 시절에 프로 대회에서 2승을 올렸다. 장타자도 아니다. 또한 특별히 뛰어난 기술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외모도 수려하지 않다. 수채화와 같은 순수함을 풍긴다. 그냥 앳된, 10대 소녀 같은 느낌을 준다. 리디아 고는 여전히 여고생이고, 김효주는 대학생(고려대)이라는 점만 다르다.  

그런데 ‘돈복(錢福)’이 따른다. 김효주에겐 앞으로 총상금 5억~8억원짜리 대회가 12개 더 남았다. ‘100만 달러 소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는 올 시즌 13개 대회에 출전해 금호타이어여자오픈·기아차한국여자오픈·한화금융클래식에서 우승하고, 톱10에 10회나 들었다.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리디아 고의 강점은 강한 멘털이다. 김효주의 장점은 무엇일까. 아이언샷이다. 100m 내외의 거리는 원하는 대로 핀에 붙인다. 그리고 판단이 빠르다. 버려야 할 홀과 안아야 할 홀을 계획하고 그대로 실행한다. 버디를 잡아야 할 홀에서 반드시 퍼트를 성공시킨다.

그는 올 시즌 평균 스코어 70.13타로 1위, 평균 퍼트 수 29.92개로 14위, 그린 적중률 77.78%로 2위, 페어웨이 안착률 87.91%로 1위, 드라이브 평균 거리 256.53야드로 22위에 올라 있다. 드라이브 거리를 빼면 모든 것이 완벽한 기록이다.  

필드에 나서면 한없이 강해 보이는 김효주는 집에서는 애교덩어리다. 평소 진을 즐겨 입는 보이시한 스타일로 ‘시크’해 보이지만 집에서는 애교를 부리는 막내딸이다. 특히 부모님 앞에서만 춘다는 일명 ‘꿈틀춤’ ‘시소춤’이 가족을 즐겁게 한다. 아직도 강아지 인형을 끌어안고 잔다. 외국 대회에 나갈 때도 갖고 다닐 정도다. 그는 일기를 쓰면서 멘털 훈련을 한다. 스윙 변화를 비롯해 경기 내용, 그리고 자질구레한 일상까지 일기장에 적는다. 특히 경기가 잘 풀렸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고 있다.

그는 자동차를 좋아한다. 프로가 돼서 상금을 타면 자신의 애마를 갖고 싶어 했다. 기아차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후 부상으로 카니발을 받았다. 하지만 그에겐 면허증이 아직 없다.

우승 후 인터뷰하는 김효주. ⓒ 김효주 제공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우승”

잘나가는 그도 고민을 한 적이 있을까.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후 털어놓았다. “티를 안 내서 그렇지 마음고생이 심했다. 우승 기회가 많았는데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늘 성적이 상위권을 맴돌았는데 우승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우승하겠지’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에게도 약점이 있을까. 체력이 생각보다 약하다. 때문에 종종 집중력이 떨어져 우승권에서 멀어진다. 특히 50m 안팎의 어프로치샷에도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 때문에 그는 거리에 대한 컨트롤 능력에 집중하고 있다.

대회 참가나 연습할 때를 빼면 뭐 하고 지낼까. 언니랑 논다. 최고의 친구이자 조언자다. 영화도 함께 보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아직 남자친구가 없다. 남자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다. 그래서일까. 그는 화장하기를 극도로 꺼린다. 화장은 불편하고 낯설다. 어쩔 수 없이 했다가도 바로 지워버린다.

하지만 연예인은 좋아한다. 만나보고 싶은 사람은 누굴까.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김수현이다. 골프를 같이 하고 싶은 연예인은 현빈이다. 기회가 된다면 라운드를 함께 해보고 싶단다. 그는 우승한 한국여자오픈과 금호타이어여자오픈에서 최종일 경기 때 빨간색 옷을 입었다. 마치 타이거 우즈(39·미국)처럼. 때문에 옷이 없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개의치 않는다. 우승했으니까. 앞으로도 레드 의상으로 조합할 생각이란다. 그는 먹는 걸 즐긴다. 시금치 피자를 좋아한다. 그런데 요리는 못한다. 지난해 계란 프라이를 처음 해봤다고 한다.

대회 중에 있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한 가지. 프로들은 경기 중에 티잉 그라운드나 페어웨이를 걸어가면서 바나나 등을 먹곤 한다. 4~5시간 동안 경기를 하면 식사 때를 놓치기 때문이다. 김효주는 샷을 하면서 김밥을 먹은 적이 있다. 주변에서 “일단 먹었으니 다 먹고 치자”고 하자 김효주는 “내가 칠 차례인데 어떻게 다 먹고 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입에 김밥을 넣은 채로 샷을 했다. 그러고 나서 마저 씹은 뒤 삼켰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펑샨샨과 친하다. 중국에서 열린 금호타이어여자오픈에서 처음 만났다. 연습 라운드를 하면서 서로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 이야기도 나눴다. 펑샨샨도 김효주처럼 김수현과 현빈을 좋아한다. 펑샨샨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배워 우리말을 웬만큼 한다. 

김효주가 골프를 잘하는 것은 원래 볼을 갖고 노는 것을 즐긴 덕도 있다. 그중에서 골프는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운동이다. 그에게도 아쉬운 것이 있을까.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늘 남아 있다. 메달을 획득하고 국위 선양을 하는 게 꿈이었는데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2016년 브라질에서 열리는 올림픽 꿈을 키우고 있다. 

그런 다음 큰 무대에 진출할 꿈을 갖고 있다. 아직은 이르다고 그는 생각한다. 국내에서 기량을 좀 더 쌓은 뒤 미국 무대를 노크할 계획이다. 김효주는 “방에 문구가 하나 붙어 있다. 어머니가 침대에 누우면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은 것인데 ‘버디는 기쁨, 파는 평온, 보기는 집중’이라는 글귀다”라고 말했다.

그도 같은 생각일까. 아니다. 그에게 버디는 기쁨이 맞다. 그러나 파와 보기는 그냥 ‘화(火)’다. 우승하기 위해 휴대전화 메신저까지 지우면서 경기할 정도로 ‘승부사’ 기질이 있는 김효주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