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견’만 늘고 ‘감시견’이 없다
  • 최진봉│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 승인 2014.08.0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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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신뢰도 좀먹는 ‘폴리널리스트’ 전성시대

7월 초 현직 언론인 두 명이 또다시 청와대로 들어갔다. 청와대는 7월2일 국정홍보비서관에 천영식 문화일보 전국부장을, 그리고 뉴미디어비서관에 민병호 데일리안 대표를 각각 내정했다. 언론인들의 청와대 직행은 이제 특별한 뉴스거리도 안 될 만큼 일반적인 일이 됐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이후 꾸준히 현직에 있는 언론인들을 청와대 주요 요직에 임명해왔다. 마치 본사에서 계열사 직원 차출해 가듯 필요하면 언제든지 언론인들을 현직에서 바로 청와대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의 부름을 받은 언론인들은 대통령의 참모로 직행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박근혜정부는 6월8일에는 윤두현 YTN플러스 전 사장을 홍보수석에 임명했다. 앞서 지난 2월에는 청와대에 입성하기 하루 전까지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뉴스 해설을 진행했던 민경욱 전 KBS 문화부장을 청와대 대변인 자리에 앉혔다. 이것이 그리 생경한 모습은 아니었다. 박근혜정부 초대 홍보수석이었던 이남기 전 수석도 SBS미디어홀딩스 사장 자리에서 곧바로 청와대로 직행했다.

7월15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춘추관에서 정무직 내정 인사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권에 ‘언론 로비’ 벌이는 등 부작용 심각

이 같은 언론인들의 청와대행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비일비재했던 일이다. 김은혜 당시 MBC 보도국 뉴스편집센터 차장이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고, 유성식 당시 한국일보 정치부장은 정무수석실로, 김두우 당시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은 정무2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SBS 출신인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과 하금열 비서실장 역시 언론인으로서 현직에 있다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로 직행했다.  

문제는 무너지고 있는 언론에 대한 신뢰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인이 취재 현장에서 청와대로 직행하는 것은 언론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행위로 많은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임받아 정부와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하던 언론인이 하루아침에 정부를 대변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은 언론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다. 정치권력의 감시견(watchdog) 역할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감시 대상이던 대통령의 참모로 변신해 대통령의 충견(faithful dog) 역할을 하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공정성이라는 언론인의 사명을 뒤로한 채 권력에 연줄을 대고 자리를 보상받으려는 언론인들을 일컬어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을 합친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언론인들이 현직에서 청와대로 직행하는 것이 관행처럼 자리 잡게 되면 정·관계에 진출하려는 야망을 가진 언론인들이 취재와 보도 활동을 통해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대신, 직·간접적으로 힘 있는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즉 언론인들이 정계 진출을 위해 교묘한 편파 보도를 통해 정치권에 ‘언론 로비’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묘한 편파 보도를 통한 언론 로비는 결과적으로 언론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공정 보도를 파괴하는 ‘아주 못된 짓’이다.

따라서 언론인이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을 정하는 순간 당사자는 바로 사퇴하고 언론계를 떠나야 한다. 언론사에 사표도 안 낸 상태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자신의 인맥과 보도 기능 등을 정계 입문에 활용하는 행위는 언론 윤리를  훼손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디어오늘 보도(2007년 7월25일자)에 따르면,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기자 출신 정치인들의 옛 기사와 칼럼들을 분석한 결과 특정 대선 후보를 띄우거나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행위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저버리고 국민들을 우롱한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5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의에 청와대 비서실의 윤두현 홍보수석이 참석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언론인 정·관계 진출 제한 규정 마련해야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많은 언론사들은 언론인들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도의 공정성과 공영성 확립에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인식해 언론인들이 지켜야 하는 윤리 규정을 자체적으로 제정해두고 이를 지키도록 독려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오래전부터 뉴스 프로그램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제작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언론사들이 자체적으로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무 규정으로 정해 시행해오고 있다. 외국 언론사들이 정치적 중립성을 의무 규정으로 정한 이유는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앵커나 기자들이 취재 활동·뉴스 진행을 통해 사회적 이슈나 사건에 대한 정보·해설을 수용자인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윤리 규정에 대한 강제성이 없어 윤리 규정을 이행하는 언론인을 찾는 게 더 어려운 실정이다.

언론이 본연의 사회적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언론인들의 정·관계 진출에 대한 규정을 만들고 이를 강제화할 필요가 있다. 법적 규정과 언론사 자체 윤리규정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언론인들은 매체를 통해 유권자에게 늘 다가가는 존재로 언론 보도의 신뢰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때문에 언론사 퇴직 후 1년 이내에는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해 규제할 필요가 있다. 또 언론사 내부에 언론인들의 정치 참여와 관련된 윤리 규정을 만들어 언론인들의 정치 참여를 엄격히 금지시켜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즉시 모든 방송 제작과 취재 및 보도 현장에서 퇴출시키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 시행할 필요가 있다.

언론인이 정계에 진출하는 데 1년의 유예 기간을 두는 것이 다른 공직자에 비해 너무 가혹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인으로 현직에 있으면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유리한 보도를 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고, 이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1년이라는 기간이 결코 긴 시간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대다수 언론사들은 기자윤리강령을 만들어 기자들이 이를 준수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징계를 하고 있다. 미국 언론사들의 기자윤리강령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지는 원칙은 공정성, 신뢰성, 정확성, 언론인의 품위 유지 등이다. 이러한 원칙들은 언론인이 어떠한 정치적인 압력과 회유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국민들을 위해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수행할 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정계 진출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관행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언론인들의 정계 진출을 규제하는 구체적인 법적·제도적 장치와 규제 방안을 마련해 언론이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역할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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