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전쟁이 아니다
  • 김인숙 | 소설가 ()
  • 승인 2014.07.31 13: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0년대 초반, 해외에서 1년 반 정도를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있던 시절이 아니라 국내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국내 신문의 해외판을 구독하거나, 아니면 일주일에 한 번씩 발행되는 교민 정보지의 뉴스 코너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뉴스의 궁핍 때문에 사는 게 좀 힘들지 않을까 예상했으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보기에 괴롭고 듣기에 화나는 뉴스를 아침저녁으로 보지 않아도 되니 살 것 같았다. 한동안은 그랬다. 그해에 엄청난 사건이 많았다. 대한항공 여객기가 제주에서 추락했고, 성수대교가 무너졌고, 지존파 사건이 일어났고,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 내가 뉴스를 보거나 말거나 세상은 돌아가고, 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끔찍한 사건들도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루는 이런 일로 놀라고, 하루는 저런 일로 놀라는데, 놀라는 것으로만 끝나면 좋겠으나,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이 분노이거나 슬픔일 때가 훨씬 많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보도를 보면서 계속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전쟁을 몸으로 겪어본 적이 없으니 전쟁이 무엇인지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전쟁은 늘 내가 생각하거나 아는 것보다 더 끔찍하고 더 가혹한 것일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팔레스타인 소년이 산 채로 불태워져서 죽었다는 보도를 보았을 때, 그 전후 사정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전쟁은 그렇게 잔인하고 사람을 그렇게 참혹하게 만든다.

그런 와중에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 사건이 일어났다. 희생당한 여객기 승객들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는데, 그 무고한 희생자들 중에는 에이즈를 연구하는 학자도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축구팀의 원정 경기를 응원하러 가던 축구팬도 있었다. 세상에. 축구를 보러 가다가 미사일에 맞았다는 것이다! 이 열정적인 축구팬이 나만큼이나, 혹은 나보다 조금이나마 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관심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전쟁은 그들 내부의 문제로 일어난다. 그러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온갖 국제적인 문제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전쟁은 자신의 자리를 내준 남의 싸움일 때가 많다. 그리고 이유 없이 사람들이, 아이들이, 축구를 보러 가던 축구팬이 죽는다. 그것도 너무나 참혹하게 죽는다. 우크라이나에서 말레이시아 여객기의 후처리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 희생자들은 그곳에서 전쟁 포로조차 못 되는 취급을 받는 것 같다. 보도 화면을 보고 있는 내내 마음이 참혹하다. 세상은 내가 보거나 말거나, 내가 어디에 있거나, 내가 무엇을 상상하거나, 이토록 참담하다.

희생자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바친 꽃이 공항 앞에 쌓이는 것을 화면으로 보았다. 팔레스타인에서는 그 꽃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여전히 죽어가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 대답을 내리기가 무력해진다. 그러나 어쩌면 소박한 대답부터가 시작일지 모른다. 이것이 그들만의 전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전쟁은 나와 상관없는 아주 먼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그들이 함께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일지도. 그러니, 이제 마음으로나마 꽃부터 바쳐야겠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제3회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참가]  [시사저널 페이스북]  [시사저널 트위터]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