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 ‘1언더파에 10달러’ 소녀, 백만장자 되다
  • 안성찬│골프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7.3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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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리디아 고, 마라톤 클래식 우승…프로 전향 9개월 만에 상금 11억원

“리디아 고의 우승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그는 이제 백만장자 대열에 올랐다.”

‘침묵의 암살자 주니어’ 리디아 고(한국명 고보경). 서울에서 태어난 뉴질랜드 교포다. 17세 2개월의 어린 나이로 백만장자가 된 리디아 고는 이런 닉네임이 어울릴까. 해맑은 얼굴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골프 코스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킬러 영화 <레옹>의 마틸다를 생각나게 한다. 누군가를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한다. 마치 킬러 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가슴속에 깊게 품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침묵의 암살자’는 박인비(26·KB금융그룹)의 별칭이다. 이 두 선수는 틈만 나면 우승권에서 맴돈다. 그리고 우승한다. 총만 안 들었지 라이벌 저격수로 제격이다. 둘 다 표정이 없다. 그래서 둘 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른다. ‘골프 지존’ 타이거 우즈(39·미국)조차 샷 하나하나에 표정이 읽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 AP 연합
올 시즌 루키로 신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리디아 고는 7월21일(한국 시각) 미국 오하이오 주 실베이니아의 하이랜드 메도우즈 GC(파71, 6512야드)에서 끝난 마라톤 클래식(총상금 140만 달러)에서 정상에 오르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4월 스윙잉스커츠 클래식에서 프로 데뷔 첫 승이자 시즌 첫 승을 거둔 이후 일곱 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다시 우승을 추가했다.

상금 21만 달러를 보탠 그는 역대 최연소 기록으로 투어 통산 상금 100만 달러를 돌파했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2승을 올렸을 때 받지 못한 상금을 제외하고도, 프로 전향 9개월 만에 상금으로만 106만1019달러(약 10억9000만원)를 획득한 것이다. 

“샷 때마다 두려움과 긴장감 느낀다”

이는 알렉시스 톰슨(19·미국)이 수립한 종전 기록 18세 7개월을 17개월이나 앞당긴 것이다. 앞서 그는 15세 4개월 2일에 2012년 캐나다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최연소 우승, 2013년 캐나다여자오픈에서 정상에 오르며 첫 아마추어 프로대회 2연패도 달성했다.

아직은 여고생인 그가 이렇게 엄청난 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리디아 고의 천재성은 일찌감치 나타났다. ‘골프 여제’였던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의 예견처럼. 소렌스탐은 현역 시절 ‘자신을 능가할 선수’ 2명을 꼽았다. 올 시즌 US여자오픈 우승자 미셸 위(24·위성미)와 리디아 고였다.

소렌스탐은 “미셸의 앞에는 위대한 미래가 있다. 그는 새로운 세대의 신호”라고 했다. 리디아 고에 대해서는 “나이는 어리지만 탁월한 재능과 성숙미를 갖춰 골프팬은 물론 선수 사이에서도 사랑받는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섯 살 때 클럽을 잡은 리디아는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다. LPGA 투어에서 상위권에 오르는 선수는 모두 그렇다. 다만 그는 남달리 강한 멘털을 갖고 있다. 아울러 대회 때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안다.

그는 이번 마라톤 클래식 최종일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낚았다. 우승의 마침표를 찍는 모습에서 그의 강심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경기를 끝내고 “우승하려면 18번 홀에서 반드시 버디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스윙잉스커츠에서 미국의 스테이시 루이스가 보기를 범할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버디를 잡아 역전승할 때처럼 전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뒤집을 줄 아는 승부사 기질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한 것이다. 

그의 강점은 실수한 뒤의 행동이다. 어이없는 짧은 퍼트 실수에도 고개를 갸우뚱할 뿐 다시 캐디와 대화를 하며 다음 샷을 준비한다. 행운의 이글이나 버디가 찾아와도 그냥 담담하게 덧니가 살짝 보일 만큼만 미소 짓는다.

그는 “경기를 즐기는 게 좋은 성적을 내는 비결”이라면서도 “사람들은 내가 어리기 때문에 경기를 그저 즐길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샷을 할 때마다 두려움과 긴장감을 느낀다”고 토로해 나름으로 심한 압박감을 갖고 있음을 드러냈다. 리디아도 경기 중 압박감을 무표정한 얼굴로 위장한다는 얘기다. 전혀 천진난만한 여고생답지 않은 외유내강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셈이다. 

“장타는 아니다. 다만, 페어웨이를 지킬 자신이 있고 100야드 안팎 거리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핀에 붙일 수 있다.” 쇼트게임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키가 165cm인 그는 올 시즌 16개 대회에 출전해 2승을 거뒀고 톱10에 8회나 들었다. 드라이브 평균 거리는 250.024야드로 73위에 랭크돼 있다. 페어웨이 안착률은 78%로 17위, 그린 적중률은 74%로 13위다. 파 온을 시켰을 때 홀당 퍼트 수는 1.786개로 18위, 평균 퍼트 수는 29.71타로 15위를 기록하고 있다. 샌드 세이브는 50%로 25위, 평균 스코어는 70.21타로 6위다. 언더파를 친 라운드는 40개로 5위, 그중에서 60타대를 친 라운드는 29개로 2위에 올라 있다.

이런 기록을 작성하며 시즌 상금 106만1019달러로 상금 랭킹 3위, CME 레이스 글로브 2481점으로 3위, 롤렉스 올해의 선수 110점으로 3위, 롤렉스 올해의 루키 999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좋아하는 선수는 미셸 위

리디아 고는 골프를 좋아한다. 그가 해본 것 중 골프가 최고라고 말한다. 골프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연령대가 다른 선수와 경쟁하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기에 골프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미셸 위를 좋아한다. 포섬 플레이를 한다면 미셸 위가 1번이다. 그 다음이 렉시 톰슨과 필 미켈슨(남성·미국), 로리 매킬로이(남성·북아일랜드)다. 그런데 미셸 위를 으뜸으로 놓는 이유가 재미있다. 미셸 위가 플레이하는 것을 즐겨 봤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단다. 이것이 그를 강하게 키운 것일까.

리디아는 ‘아침형’ 인간이다. 잠에서 일찍 깨면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스트레칭을 먼저 한 후 골프 연습을 한다. 일부러 틈을 내서 책을 읽는다. 상상력을 키우는 데 그만이기 때문이다. 요거트와 베리를 즐겨 먹고, 피아노도 수준급인 그는 노래방을 자주 찾는데, 주로 레이디 가가의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용돈은 얼마를 받을까.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엄마와 약속한 것이 있다. 1언더파에 10달러다. 그러니 부지런히 언더파를 치지 못하면 용돈이 줄어든다. 때문에 마라톤 클래식에서 우승 상금을 많이 받았어도 15언더파로 우승했기에 용돈은 150달러밖에 안 된다.

그의 캐디백을 보면 역시 드라이버 거리 탓인지 우드가 많다. 주 스폰서가 캘러웨이골프라서 드라이버부터 퍼터까지 모두 캘러웨이 클럽이다. 드라이버는 최신형 엑스투핫 프로로 로프트 8.5도를 사용 중이다. 3번 우드는 헥스투핫 15도, 5번 우드는 빅버사 18도다. 아이언은 에이펙스 프로로 6번부터 피칭웨지다. 퍼터는 오디세이 신형인 탱크 크루저 330 말렛을 쓰고 있다. 재미난 사실은 리디아 고가 캘러웨이 클럽에 한국 토종 브랜드인 MFS의 매트릭스 오직(OZIK) 샤프트를 장착해 성능을 키웠다는 것이다.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에 이어 세계 여자골프 랭킹 2위를 달리고 있는 리디아 고가 올 시즌 여세를 몰아 남은 메이저 대회인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8월14~17일), 더 에비앙 챔피언십(9월11~14일)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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