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의 미래, 친이보다 더 쪽박일 것”
  • 서상현│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7.2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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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해되는 친박근혜계…좌장도, 결집력도 없어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끝난 다음 날인 7월15일 국회 의원회관. TK(대구·경북) 지역 한 초선 의원실에는 세 명의 보좌관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셋 다 보좌진 생활이 20년 가까운 베테랑들이었다. 한 사람은 PK(부산·울산·경남) 쪽 의원 보좌관이었고, 또 한 사람은 얼마 전 한 공기업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며 “요즘 말로 ‘여피아(여의도+마피아)’입니다”라고 농담조로 자신을 소개했다. 화제는 전당대회를 통해 본 ‘친박(親朴)계’의 앞날이었다.

“솔직히 친박이라 함은 2004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 전후부터 정치적 운명을 함께해온 사람들 아니냐. 지금 당에는 서청원·홍문종·이학재·윤상현·김재원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초선부터 ‘월김(越金)’하는 행렬이 이어지지 않겠는가. ‘신주류’(김무성 대표)에 줄 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박근혜 망해라’라는 결과가 결코 아니다. 우리도 살고 당신도 살기 위해선 이렇게 가선 안 된다고 느끼는 표심이 모인 결과다.” “VIP(박 대통령)는 가만있는데 그동안 짐의 뜻은 이렇다며 이름 팔아먹은 친박계에 엄중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오더’라는 이름으로, 전횡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월적 권력을 누려왔는데, 이제 그 인의 장막을 펼쳤던 당신들은 나가라,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보여준 것으로 본다.”

7월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오르지 못한 서청원 의원이 먼저 연단을 내려가고 있다. ⓒ 뉴시스
초선 의원 “우리는 친박 아닌 곁눈질박” 자조

신랄했다. 세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기자는 ‘어떻게 지금까지 이렇게 참아왔을까. 이렇게 억눌려왔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친박의 미래는 친이(親李)보다 더 쪽박일 것”이란 말은 울림이 컸다. 기자는 내친김에 다른 TK 지역 초선 의원실에 가봤다. 그 의원은 새누리당 다수의 초선들을 가리켜 “우리는 친박이라고 하기엔, 진짜 친박들이 인정치 않는 ‘곁눈질박’에 더 가깝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겪었던 고충을 토로했다.

“우리가 대정부질문이나 상임위 회의 중에 부처 장관과 관계자에게 추궁을 한다 치자. 그러면 곧바로 친박 핵심들에게서 ‘당신, 정부에 반항하는 거야?’ ‘정부에 그렇게 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칼을 겨누는 것과 같아’ 등의 말이 나온다.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 바로잡으려는 것인데, 그들은 그것을 반기·반항·저항으로 본다. 우리는 2012년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절 공천을 받은 사람들이어서 박 대통령에게 심정적 빚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박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김무성 당 대표가 들어서서 뭔가 출구·활로, 그런 것이 생긴 것 같다.”

이날 기자가 여권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여의도 정가에서 들은 친박계의 미래는 한마디로 동굴이었다. 그 근거를 몇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는 차기 대권을 노리는 이른바 ‘잠룡’으로 거론되는 인물 중 친박계가 전무하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에다 김무성 대표까지. 공통점은 ‘비박(非朴)계’ 인사들이고 모두가 박 대통령과 척을 진 경험이 있는 것이다.

여권의 한 전략통은 이런 말을 했다. “박 대통령은 ‘현재 권력’이다. 2016년 20대 총선을 목전에 둔 의원들은 ‘미래 권력’에만 관심이 있다. 지금으로 봐선 대권에 김 대표가 가장 가까이 가 있는 것 아니겠나. 언제 그 밑에 설지 곁눈질하고 있을 것이다.”

둘째, 친박계에는 좌장이 없다. 중간 보스가 없으면 계파 내부가 느슨해진다. 서청원 최고위원을 친박계 맏형이라 일컫지만, 불명예스러운 전당대회 패배자라서 역할을 못하기보다 제대로 안 할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많다. 정몽준-김황식 서울시장 후보 경선, 정의화-황우여 국회의장 경선, 이번 김무성-서청원 전당대회 경선까지 친박의 결집은 한마디로 모래알과 같았다. 앞서의 전략통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기용을 악수로 보는 이가 많다. 당에 남아 친박계 작은형으로서의 역할을 더 하고, 계파 정치 보스로 자리하는 것이 친박계 생존을 위해 필요했다. 그가 빠짐으로써 친박계의 밀도와 무게가 함께 떨어졌다. 원래 친박의 피 역시도 농도가 옅었는데 말이다”라고 말했다.

셋째, 지역별 분화가 이뤄질 것이란 분석이 있다. 이미 수도권과 충청권에선 새누리당의 세가 약하다는 결과가 지방선거로 나타났다. 이탈자에 대한 통제력까지 잃었다. PK는 김무성 대표와 김태호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TK는 전당대회 직전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로 “서청원 지지”를 선언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건강한 여당으로’라는 대세를 알면서도 서청원 의원을 밀겠다고 한 것은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한 발짝 더 들어가면 “김무성도 서청원도 둘 다 아니다”라는 말이 된다. TK는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로 뭉칠 가능성이 있다.

風雨同舟의 방점은 ‘우리는 원수’

무엇보다 김 대표가 ‘공천 학살’을 두 번이나 당한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한 번은 친이에게, 또 한 번은 친박에게 당했지만, 번번이 살아난 그가 어떤 식으로 고도의 보복성 정치행위를 할지 주목된다고 말한 이도 있다. 혹자는 이번에 그가 두 번씩이나 강조한 ‘풍우동주(風雨同舟)’란 표현에 주목했다. 언론에서는 ‘비바람이 불어도 우리는 한 배를 탄 사람들’이라 해석했지만, 실제 연원을 보면 ‘우리는 원수지간이지만 비바람이 불어 한 배를 탈 수밖에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우리는 원수’라는 것이다.

이번 전대 결과를 평가하는 종합적인 목소리는 다음과 같다. 대선 후보 세평에 오르는 이들은 개별적인 잠룡의 형태로 암약할 것이다. 수도권 내 소신파는 계파 대결 속에서 모두를 견제할 것이다. 친박 골수는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외치며 세 확장에 힘쓸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김무성 대표에게 줄을 설 것이다.

친박계의 앞날은 결국 박 대통령이 앞으로 국정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달렸다. 집권 2년 차지만 해놓은 것이 없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총체적 인사 난맥을 보며 과연 준비된 대통령이었는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내기도 한다. 국정 운영을 성공적으로 할 것이라고 보는 이는 드물다. ‘원조 친박’으로 분류되는 한 중진 의원은 “이러다 진짜 레임덕이 올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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