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러운 장마, “중국 이모작 때문이야”
  • 김형자│과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7.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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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북평원 밀 수확 후 기온 급상승, 한반도 기상에 영향

장마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런데 요즘의 날씨는 장마철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비가 잠시 내렸다가 금세 맑아지고, 갑자기 천둥 번개가 쳤다가 잠잠해지는 등 변덕을 부린다. 최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허창회 교수팀이 이처럼 변덕스러운 장마철 날씨가 중국 화북(華北) 지역의 거대 농경지에서 이모작을 하기 때문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보통 기후 변화를 얘기할 때 우리는 남극이나 북극의 빙하를 떠올린다. 하지만 연구팀은 ‘중국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 뉴욕에 태풍이 분다’는 나비 효과처럼, 중국의 이모작이 한국과 일본의 장마철 강수량 변동 폭을 키워 집중호우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모작과 날씨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할까.

화북평원 지표면 달궈지면서 대기 불안정

ⓒ 일러스트 황중환
중국에는 3대 평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화북평원이다. 한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곡창 지대다. 예부터 이곳을 장악하면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광활한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어마어마하다. 이곳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밀과 옥수수의 이모작을 하고 있다. 워낙 가뭄이 심해 물이 부족한 지역이라 벼농사 대신 밭농사를 짓는데, 5월에 밀을 추수하고 6월 말에 옥수수 씨앗을 뿌린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밀과 옥수수는 각각 중국 전체 생산량의 50%, 33%를 차지한다.

문제는 이모작 때문에 화북평원이 일시적으로 사막처럼 변해버린다는 점이다.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바뀌는 시기이니 5월보다 6월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밀을 추수한 후 옥수수 씨앗을 심기 전, 그 사이에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한두 달 동안 흙이 메마르면서 사막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게 허창회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로 연구팀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지구 관측위성인 테라(Terra)를 이용해 동북아시아 곳곳의 지표면 온도를 측정한 결과를 보면, 중국 북부 지역과 화북평원에서의 온도가 10도 이상 높게 나타났다. 더운 지역에서의 10도 이상 차이는 엄청난 변화다. 내몽고 사막과 지표면 온도 수준이 비슷하다. 화북평원과 위도가 같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지표면이 3도 이상 높아지지 않았다.

장마보다 무서운 식량 전쟁 부를 수도

평야 지대인 화북평원에서 이처럼 온도 차이가 크게 나는 이유는 뭘까. 이모작으로 첫 번째 작물(밀)의 추수와 두 번째 작물(옥수수)의 씨 뿌리기 사이의 기간에는 땅에 아무것도 없어 지표면에 내리쬐는 태양열을 제대로 식힐 방법이 없다. 따라서 지표면 온도가 급격히 상승해 일시적으로 사막 지역이 되어버린다.

연구팀은 미국 기상연구소가 개발한 기후 모델 실험을 통해 이모작이 활발했던 1985년부터 2005년까지 동북아시아 지역의 기후 변화 양상을 분석해 이모작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기후 모델은 현재와 미래의 날씨나 기후 현상을 수치로 예측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일모작·이모작 등과 같은 모델 설정에 따라서도 갖가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기후 모델 실험 결과 이모작 확대가 화북 지역의 최대 일교차를 1.3도 정도 상승시켜, 결과적으로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여름철 장마 기간 중 강수량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해마다 한국 장마철 평균 강수량은 20%가량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등 변동 폭이 컸는데, 특히 7월 장마가 더 세져 비가 훨씬 많이 내렸다. 장마 기간인 6?7월에 한국의 강수량을 살펴보면, 적은 해에는 120㎜ 감소하는 반면, 많은 해에는 120㎜가량 증가했다.

또 한국의 여름 장마 강수량이 줄어드는 해에는 일본의 강수량이 크게 증가하고, 반대로 한국의 장마 강수량이 늘어나는 해에는 일본 강수량이 크게 감소하는 등 한반도와 주변 국가의 강수량 연계성도 일부 확인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가 농업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많았지만, 농업이 국지적으로 기후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드문 사례다.

물론 우리나라의 장마, 특히 7월의 장마가 강해진 이유가 중국의 이모작 때문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동북아시아의 여름 장마는 뜨거운 지표면과 상대적으로 차가운 북서 태평양의 습기가 많은 공기가 만나 정체전선이 만들어지면서 온도 차이의 영향으로 많은 비를 뿌린다. 그런데 중국의 화북평원 지표면이 뜨거워지면서 온도 차이가 더 커져 대기가 불안정해지고 강수량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그런데 영국의 국제 안보 전문가이자 군사지정학 분석가인 그윈 다이어(Gwynne Dyer)는 흥미로운 경고를 했다. 지금은 중국 이모작이 더 강한 장마를 부를 뿐이지만, 미래에는 이러한 기후 변화가 장마보다 더 무서운 식량 부족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오르게 되면 곡창 지대이던 아열대 지역이 사막으로 변하는데, 중국이 지금보다 훨씬 높은 기온 상승으로 광활한 땅이 사막화돼 식량이 부족해진다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하나가 우리나라와의 연관성이다.

한국은 위도가 높고 삼면이 바다여서 다행히 기후 변화로 인한 사막화 가능성이 적다. 지구 평균 기온이 2도 높아졌을 때, 중국은 평균 3.5도 상승하지만 한국은 1.8도 상승하는 데 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마 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곡물 생산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중국은 기후 변화로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 뻔하다.

최근 중국의 많은 학자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화북평원에서 지하수 양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일모작에서 이모작으로 바뀌고 농업 생산량이 두 배로 늘어나면서 물이 그만큼 많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는 현재의 지하수 양이 1980년대의 10%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지하수 양이 계속 줄어 고갈된다면 이모작도 지속할 수 없어 미래의 중국 식량 사정은 훨씬 나빠질 것이고, 중국은 식량과 물, 주거지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게 한반도와의 충돌을 선택하게 된다는 게 다이어가 내놓은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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