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보다 더 귀한 손님이 온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07.1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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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 선물로 한국 오는 ‘판다’ 중국 외교의 나침반 역할

이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길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올해 안에 중국의 또 다른 국빈 한 쌍이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이 손님은 지난 1994년 9월에도 한국을 찾아 4년간 머물렀던 바 있다. 경기도 용인의 에버랜드가 보금자리였는데, 방문객들이 이들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면 1시간 이상 줄을 서야만 했다. 이들이 한국을 떠난 이유는 1997년 외환위기 때문이었다. 에버랜드는 손님을 모시는 동안 매년 100만 달러를 중국 정부에 지불해야 했다. ‘보호기금’에 성금도 내야 했다. 날마다 손님이 먹어대는 엄청난 밥값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어린 대나무를 즐겨먹는 손님의 까다로운 식성을 맞춰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1998년 9월 에버랜드는 유지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손님을 중국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그로부터 16년 만에 다시 우리 땅을 밟을 이 손님은 바로 ‘판다(Giant Panda)’다.

해외 송출한 판다는 48마리뿐

판다는 오직 중국에서 서식한다. 중국에서도 쓰촨(四川)·산시(陝西)·간쑤(甘肅) 등 세 곳에서만 산다. 그중 절대 다수가 쓰촨에 있다. 2012년 현재 판다 수는 약 1600마리로 추산된다. 인간에 의해 보호되는 330여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인적이 드문 해발 1400~3500m의 우거진 산림에서 야생으로 지낸다. 이런 희소성 때문에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은 판다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고 상징 마크로 삼았다.

판다의 개체 수가 본래 적었던 건 아니다. 역시 판다를 멸종 위기로 내몬 주범은 인간이었다. 판다의 고기는 섭취할 육류가 부족한 주민들에게 좋은 먹거리였다. 모피는 부유층이 고가로 사들이는 사치품으로 각광받았다. 뼈는 각종 한약재에 들어가는 재료로 거래됐다. 인간은 무분별한 밀렵과 더불어 대규모 벌채로 판다의 보금자리마저 빼앗았다. 20세기 중반 판다는 수천 마리로 줄어들었다. 1949년부터 중국 사회주의 정권은 판다의 가치에 주목했다. 곧 판다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밀렵을 금지하고 해외 밀반출을 막았다. 판다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도 시작했다. 이런 중국의 노력은 1972년에 꽃을 피웠다. 자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판다 ‘링링’과 ‘싱싱’을 선물하면서 양국 관계를 급진전시켰던 것이다.

미국이 판다를 맞이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오래전부터 미국은 판다를 보내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가타부타 반응이 없었다. 1972년 2월25일 마지막 국빈 만찬에서 닉슨 대통령의 부인 팻 닉슨 여사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판다가 그려진 담배를 지니고 있자 “베이징 동물원에서 판다를 봤는데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그제야 저우 총리가 “몇 마리를 보내드리겠다”고 화답했다. 두 달 후 링링과 싱싱은 미국으로 건너갔고, 워싱턴 동물원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귀빈이 됐다. 첫날 관람객 수가 2만명에 달했다.

판다가 외교 무대에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중국은 1957년 러시아에 판다 한 마리를 선물했다. 북한에는 1965년부터 다섯 마리를 보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헌 가치는 극히 미미했다. 이에 반해 링링과 싱싱은 연 100만명의 관람객을 모을 정도로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런 반응에 주목한 중국은 본격적인 ‘판다 외교’를 펼쳤다. 같은 해 10월 일본에 국교 정상화를 기념해 ‘캉캉’과 ‘란란’을 선물했다. 독일·멕시코·호주 등과 수교하면서 보내진 것도 판다였다.

현재 중국이 해외로 송출한 판다는 48마리에 불과하다. 머무르고 있는 곳도 미국·캐나다·일본·태국·영국·프랑스·스페인 등 14개국 19개 지역에 불과하다. 1984년부터 중국은 판다를 멸종위기 동물의 상업적인 거래를 금지한 국제법에 따라 임대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나 동물원은 매년 한 마리당 200만 달러의 임대료를 중국에 내고 있다. 또한 판다가 적응할 수 있는 공간을 새롭게 마련하고 대나무를 중국에서 공수해온다. 전문가나 사육사를 중국에서 초빙하거나 인력을 중국에 파견해 교육한다. 이 때문에 지난 5월 판다 ‘펑이’와 ‘푸와’를 맞이한 말레이시아는 10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판다를 임차한 미국이 내는 돈은 훨씬 많다. 워싱턴·애틀랜타·샌디에이고·멤피스 등 4곳의 동물원에서 11마리를 임차하고 있는데, 한 해 8000만 달러를 중국에 지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각국의 동물원은 판다를 데려오기 위해 온갖 로비를 벌이고 있다. 워낙 인기가 높아 판다의 유무 여부가 그 동물원의 지위와 명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벨기에에서는 판다 유치 문제로 지역 갈등마저 일어났다. 지난해 9월 벨기에는 판다 한 쌍을 15년간 임차하기로 중국과 합의했다. 그 후 벨기에 정부가 판다의 보금자리를 프랑스어권인 남부 왈롱의 파이리 다이자로 결정하자, 네덜란드어권인 북부 플랑드르 주민들이 반발했다. 이 같은 결정에 왈롱 출신인 엘리오 디 뤼포 총리가 부당한 입김을 넣었다는 의혹이 일었다. 올해 3월 영국 BBC는 판다 ‘싱후이’와 ‘하오하오’의 벨기에 도착 소식을 전하면서 “판다를 두고 플랑드르와 왈롱이 벌였던 격렬한 논쟁이 재연되고 있어 두 지역 간 갈등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에서 처음 문을 연 청두(成都) 번식기지에서 대나무를 먹는 판다. 지난 3월26일 방중했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가 방문했던 곳이다. ⓒ 모종혁 제공
양안 관계에서도 판다로 ‘친중 분위기’ 조성

각국에서 판다는 평화의 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중국이 타이완에 보낸 판다 한 쌍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2005년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롄잔(連戰) 국민당 주석이 분단 후 첫 국공(國共)회담을 가진 뒤 판다 기증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타이완 집권 민진당의 반발로 성사되지 못했다. 2008년 12월 국민당 출신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집권하자, 판다 ‘위안위안’과 ‘퇀퇀’이 타이완으로 보내졌다. 지난해 7월 인공수정을 통해 둘 사이에서 암컷 새끼가 태어났다. 이 새끼 판다는 날마다 방송을 타면서 타이완 최고의 인기 스타로 등극했다. 축제 분위기 속에 치러진 출생 100일 기념행사에서 ‘위안짜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지난 1월 일반인에게 공개된 이후에는 하루 1만여 명의 타이완인과 만나고 있다. 개선된 양안 관계를 상징하며 타이완에서 친중(親中)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선봉장 노릇마저 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으로 올 판다를 책임지게 될 에버랜드는 증시 상장을 앞두고 큰 경사를 맞았다. 지난 10년간 에버랜드는 삼성그룹 차원에서 ‘보호기금’에 기부금을 꾸준히 내는 등 판다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 7조~8조원에 달하는 자산 가치에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기업 이미지 향상과 막대한 광고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판다의 한국 재상륙은 한·중 관계 증진을 상징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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