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기든 새누리당은 핵분열된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7.1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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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원-김무성,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 7·14 전대 기점으로 ‘친박’ 퇴조 불가피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캠프를 차렸던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이 다시 북적대고 있다.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전대)를 앞두고 본격적인 당권 경쟁 레이스를 시작한 유력 당권 주자 2명이 경쟁적으로 이 건물에 자리 잡은 것이다. 김무성 의원은 이 건물 2층에, 서청원 의원은 7층에 각각 캠프 사무실을 열면서 당내 최대 경쟁자인 양측이 ‘한 지붕 두 가족’ 살림을 시작했다. 여권 내부 분위기는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차기 당 대표의 눈치를 미리부터 살펴야 할 여권 인사들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친박 중진 의원의 한 보좌관은 “전대가 다가오면서 캠프에 인사를 하려고 가면 두 캠프 모두의 눈치를 살펴야 해 조심스럽다”면서 “혹시나 한 캠프만 자주 간다는 말이 나올까 봐 꼭 두 캠프를 동시에 들르고 있다”고 말했다.

“경선 2위는 최고위원 보이콧할 수도”

2013년 12월17일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왼쪽)과 김무성 의원이 여야 오찬 회동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정당의 전당대회는 축제의 마당이다.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치열한 경쟁 못지않게 국민들에게 당의 존재감과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7·14 전대를 앞둔 여권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전대 이후 당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새나오고 있다. “전당대회 후유증이 클 것”이라는 예상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아예 “전당대회 이후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흉흉한 이야기도 곳곳에서 들린다. 무엇보다 이번 전대가 당내 계파 갈등의 정점에 서 있는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벌이는 혈투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동안 여권 내에서 친박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이 간혹 노출됐지만, 박 대통령을 등에 업은 친박 주류에 의해 대부분 진압됐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출범 2년 차를 맞으며 조기 레임덕 우려가 나오는 마당에 전대를 기점으로 양측이 벌이는 이전투구는 깊은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7월3일 전대에 출마할 최고위원 후보 등록을 마감한 결과, 친박 좌장 격인 7선의 서청원 의원(경기 화성 갑)과 충청권 출신의 6선 이인제 의원(충남 논산·계룡·금산), 비주류를 대표하는 5선 김무성 의원(부산 영도), 당 사무총장을 지낸 홍문종 의원(경기 의정부 을)과 재선의 김영우(경기 포천·연천), 김태호(경남 김해 을), 김을동(서울 송파 병) 의원, 비례대표 초선인 김상민 의원, 그리고 박창달 전 의원 등 전·현직 의원 9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 중 유일한 여성인 김을동 의원이 여성 몫 최고위원직을 낙점받은 상태인 점을 감안하면, 8명의 후보가 나머지 4석의 최고위원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 안팎의 분석에 따르면 전대 경선은 ‘2강 3중 3약’ 구도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지만, 전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당 대표 선거는 ‘2강’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당내에서 미묘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차기 지도부를 선출할 7·14 전대를 일주일 정도 남긴 상황이지만, 당내에서는 전대 이후 구성될 당 지도부 체제에 대한 불안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당내 전략가로 통하는 친박계 한 인사는 “지금 상황이라면 서 의원이든 김 의원이든 2위가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일각에서 2위가 된 사람이 최고위원직을 내려놓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당 대표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지도부를 보이콧한다는 것은 섣부른 전망일 수 있다. 하지만 출범도 하지 않은 차기 당 지도부를 두고 여러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는 건, 그만큼 서 의원과 김 의원 간 감정의 골이 깊다는 점을 반영한다. 서 의원과 김 의원은 김영삼(YS) 전 대통령 가신 그룹인 이른바 ‘상도동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뿌리가 같다. ‘마지막 YS의 직계’라고 불리는 두 사람에게 김 전 대통령이 갖는 애정은 남다르다.

응집력 사라진 ‘친박’,  재편 신호

하지만 최근 두 진영이 벌이는 싸움의 강도를 보면, 30년 지기 정치적 선후배는 이미 옛말이 된 것처럼 보인다. 서 의원이 김 의원의 전과 기록 문제를 거론하며 공세를 펼친 게 대표적이다. 서 의원은 6월15일 기자들과 만나 “(김무성 의원에게) 무슨 전과가 있는지 찾아보면 알선수재 이런 것들이 있다. 더 흉측한 게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서 의원은 또 “야당에 부화뇌동해 동지를 저격하고 박근혜정부를 레임덕에 빠뜨리면서 스스로 정권의 후계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김 의원에게 공세를 퍼부었다. 김 의원도 물러서지 않았다. 7·14 전대를 당내 신구 세력의 대결 구도로 설정한 김 의원은 “박 대통령이 어려울 때 도왔던 것은 나”라면서 “금주 중 박심(朴心)이 누구한테 있네 하는 이야기가 나와 전대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서 의원을 꼬집었다.

두 사람이 대립각을 세우자 당 지도부까지 나서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완구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 의원과 김 의원 모두 자중해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7·30 재보선은 물론이고 누가 당선되더라도 당을 일사불란하게 화합해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당대회 이후 일각에서는 당 대표 낙선자가 당 지도부를 보이콧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양측이 전당대회 이후 사사건건 딴지를 걸면서 차기 지도부 체제의 행로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인 지난 2010년 전대에서 안상수 현 창원시장이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홍준표 현 경남도지사와 지도부 내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당시 당 대표 경선에서 맞붙은 두 사람은 네거티브를 서슴지 않으며 공방을 벌였다. 홍 지사는 당시 TV토론회에서 안 시장이 1997년 옆집의 개가 짖는다고 옆집을 상대로 소송을 낸 이른바 ‘개 소송’을 공개하면서 공세를 펼쳤다. 홍 지사는 당시 전대 직후 안상수 대표 주재의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기도 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두 사람은 이후 당 지도부 회의 때마다 수시로 부딪쳤다. 두 사람의 감정 대립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안 시장과 홍 지사는 여덟 살 차이인데, 서 의원과 김 의원 역시 여덟 살 차이다.

새누리당이 전대 이후 새로운 구도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은 그동안 새누리당 내 주류로 군림해온 ‘친박’이 퇴조할 것이라는 분석과 궤를 같이한다. 현재 새누리당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비대위원장 시절 공천을 해준 인물들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새누리당 내 계파는 친박 주류와 비주류 그리고 비박 진영으로 갈라졌지만, ‘범(汎)친박’이라는 큰 울타리가 어느 정도 응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특히나 박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높은 상황에서 친박은 유용한 보호막이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임기 마지막 날인 6월30일 경기도 의정부시 가릉역에서 급식 봉사에 앞서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김문수·친이계 등 제3지대 역할론 부각

하지만 박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하락하면서 ‘친박 딱지’의 효용성이 떨어지고 있는 만큼, 친박 주류와 비주류, 비박이라는 계파 구도는 의미가 희석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 친박 색깔은 자연스럽게 옅어질 수밖에 없고, 경선 주자였던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을 중심으로 한 당내 주류와 비주류로 줄 서기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당 장악력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계파 갈등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전대 이후 친박의 색은 옅어지고, 당내 주류와 비주류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중간지대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 세력 구도가 큰 틀에서 양대 계파로 정리되겠지만, 틈새에 있는 옛 친이계와 초·재선 의원 그룹의 움직임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역할론이 부각될 전망이다.

그동안 당내에서 김 전 지사가 차지해온 비중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앞서 김 전 지사의 총리 발탁설이 제기될 당시, 김 전 지사가 총리 카드를 받을 것이라는 예측의 근저엔 당내 입지가 약한 그가 총리로서 친박계와 교감을 시도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청와대는 김문수 총리 카드를 접었다. 친박 내부에서 “천막 당사 시절 김문수를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인기를 높인 것은 박 대통령이었는데,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배은망덕한 행동을 해왔다”며 김 전 지사에 대한 해묵은 반감을 드러냈다는 말도 나온다.

김 전 지사가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당내에 독자적인 영향력을 키워나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전 지사는 7월3일 재보선 출마를 부탁하기 위해 이른바 ‘십고초려’를 하러 대구까지 온 윤상현 사무총장에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출마는 제자리가 아닌 것 같다”며 “선당후사를 위한 자리는 민생 속이다. 조금 더 낮은 곳에서 제자리를 찾겠다”고 출마 요청을 거부했다.

전대 이후 당내 세력 재편과 맞물려 친이계의 부활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친이계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의 행보와 함께, 정두언 의원과 임태희 전 의원이 부각될 수 있다. 정 의원은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연루돼 의원직 상실 위기를 겪었지만, 최근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돼 의원직 유지에 파란불이 켜진 상태다. 임 전 의원은 애초 기대했던 경기 평택 을 지역 출마는 막혔지만, 당으로부터 수원 정 출마를 권유받은 상태다. 특히 두 의원은 옛 친이계로 분류되지만 모두 친박계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당내 역학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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