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 백수원 한국인터넷진흥원 박사 ()
  • 승인 2014.07.0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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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법재판소 판결 이후 찬반 팽팽

지난 5월13일 유럽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uropean Court of Justice)는 구글 이용자들에 대해 자신들이 남긴 부적절한 개인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며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개인과 관련된 정보의 삭제 요청권, 이른바 ‘잊혀질 권리’에 대한 찬반 논쟁이 팽팽하다.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진 이후 약 한 달 동안 구글에 접수된 정보 삭제 요청은 4만1000건을 넘어섰다. 구글은 6월26일(현지 시간) 삭제 요청을 받은 정보를 검색 결과에서 삭제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잊혀질 권리’ 도입, 어떻게 봐야 할까.  

백수원 한국인터넷진흥원 박사

범죄자라도 ‘잊혀질 권리’ 인정받아야

현대 사회는 기록의 사회다. 기록은 인류가 가진 정보를 후세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만큼 인류 사회를 받치고 있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보가 영원히 존속한다는 것, 그리고 그 정보가 영원히 기록된다는 것은 전체 인류에게는 매우 유용한 일이지만 한 개인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유발하기도 한다. 사실 인터넷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정보를 찾거나 검증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또 어떤 사건에 연루된다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검색엔진이 발달하면서 정보의 유통 시스템은 획기적으로 변했다. 이제는 누구나 모든 정보를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 검색엔진을 통한 개인정보 검색과 그로 인한 변화 양상에 경종을 울린 것이 바로 이번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에서 유의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바로 원(原)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부분이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원데이터에 대한 삭제는 인정하지 않되 이 데이터의 검색 결과에 대한 삭제 요구는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이는 어떠한 정보가 사실에 기초한 합법적 정보이기 때문에 삭제할 수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더 이상 해당 개인과 무관한 정보라면 그 정보와 해당 개인의 ‘관련 고리’는 삭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해당 정보가 검색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당연히 해당 정보의 검색 또한 가능하다. 하지만 해당 정보와 관련이 없는 사람의 이름을 특정 검색엔진 사업자 측 사이트에 입력했을 경우, 이 정보는 검색창에 드러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유럽은 개인정보에 관한 정보 주체의 권리를 인정하는 심사 기준을 ‘합법성(legitimacy)’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합법적인 정보라면 정보 주체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번 판결의 경우에는 합법적인 정보임에도 이를 삭제할 수 있는 정보 주체의 권리가 인정됐다. 다만 그 인정은 정보의 완전한 삭제가 아닌 검색엔진 창에서 해당 정보와 관련된 주체의 이름을 쳤을 경우 해당 정보가 검색되지 않는 형식으로 구분했다. 결국 정보 주체의 권리 인정 이유를 해당 정보의 합법성이 없는 경우 외에 ‘관련성(relevance)’이라는 심사를 통해서도 가능하게 한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법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사실 이러한 정보 자체의 삭제는 현행법 또는 그동안 축적돼온 법리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가 살아 있는 상황에서 정보 주체와의 관련성만을 지우는 ‘링크 삭제’는 그동안의 법리로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온라인상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훼손이 인정되면 정보 자체를 삭제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나, ‘링크 삭제’는 이와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정보의 삭제에 해당되는지에 대해서는 유권해석이 필요하다.

이제 정보 범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아무리 사소한 기록이라 할지라도 그 생산과 유통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범죄자들조차도 당연히 ‘잊혀질 권리’ 자체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다만 그 인정의 범위와 그 인정을 판단할 주체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표현·언론의 자유 해치지 말아야

최근 유럽사법재판소는 구글은 개인에 관한 자료에 대한 링크를 삭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반대로 언론사인 신문사에는 삭제할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다. 이 판결 이후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논의됐던 ‘잊혀질 권리’가 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는 지워지지 않고 언제든지 검색이 가능하다. 디지털화된 정보는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나 복제·수정·조작·저장이 용이하며 원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복제물을 생산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기술은 관련 기사를 매우 신속하고 정확하게 검색·집적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특히 이 정보가 언론사의 기사를 통해 유통될 때는 더욱 사정이 복잡해진다. 과거의 언론 기사는 실질적으로 유통기한이 있었던 반면, 이제는 데이터베이스 기기의 성능이 허락하는 한 유통기한도, 정보로서의 가치 상실도 발생하지 않게 됐다. 잊혀질 권리의 도입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잊혀질 권리는 우선 자신이 직접 작성한 글이나 문서가 다른 사람에 의해 도용당하는 경우에 문제시된다. 이 경우는 현행법상 자기 정보 삭제 요구권에 의해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에 관한 사실’이 다른 개인이나 언론기관에 의해 유포되는 경우에는 아직 완벽하게 입법화돼 있지 않다. 이 경우 자신에 대한 얘기를 삭제해달라고 요구하거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다른 개인이나 언론기관이 삭제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면 언론기관의 표현의 자유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언론기관으로서는 수집한 자료를 모두 삭제해야 하기 때문에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일 것이다. 개인에 대한 삭제 요구와는 달리 언론기관에 대해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모두 삭제해달라고 요구할 권리를 인정한다면 자칫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예상 밖의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에서 쟁점이 된 것처럼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링크해주는 구글(google)이나 네이버(naver) 등에는 링크를 삭제해서 해당 정보가 인터넷상에서 보이지 않도록 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 유럽사법재판소는 검색엔진회사가 링크를 삭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반면, 언론기관에 대해서는 삭제 의무를 부정했다. 언뜻 보면 검색엔진회사에만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링크를 삭제하면 결국 다른 개인이나 언론기관의 정보나 기사 내용도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효과를 내기 때문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나와 관련된, 다른 사람이나 언론기관이 표현한 정보’에 대해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인정하고 있지 않다. 현행법상의 개인정보 삭제 요구권을 무한정 확대할 경우, 타인의 표현의 자유 특히 언론기관의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 자칫 정치인과 공인이 자신의 과거를 세탁하는 명분으로 삼을 수 있기에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우려 또한 상당하다. 이 때문에 잊혀질 권리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의 근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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