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다음엔 살인 기계 그 뒤엔 냉혹한 권력과 자본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4.06.25 14: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 대학생에 인기 끄는 드라마 <닥터 이방인>

최근 한 북한 관련 전문지에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닥터 이방인>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이 드라마가 북한 대학생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 그 이유는 남한이 북한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라면 이런 드라마에 대해서는 반감이 먼저 앞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북한을 다루는 드라마는 조금 변화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북한에서 퍼지고 있다는 한류 드라마에 대한 인기는 어쩌면 북한을 바라보는 대중문화의 이런 변화된 시각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닥터 이방인>은 남한의 외과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북한에 갔다가 거기서 천재 외과의가 돼 탈북한 박훈(이종석)이라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에서 박훈의 아버지가 북한에 가게 된 것은 김일성을 수술하기 위해서다. 남북 관계의 안정을 위해 희생된 인물이다. 박훈은 북한에서 의사로 성장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살리는 수술만큼 죽이는 일도 많이 했다고 털어놓는다. 드라마는 인권의 사각지대로서 북한의 현실을 드러내면서 드라마틱한 주인공의 성장 배경으로 활용하고 있다.

ⓒ SBS 제공
엄밀히 말하면 박훈은 남한 사람이지만 북한에서 성장했다는 측면에서 북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북한에서 만난 재희(진세현)와 사랑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그러니 탈북했다고는 하나 탈북 과정에서 재희와 헤어지게 된 그는 남측도 북측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제목처럼 <닥터 이방인>인 것이다. 게다가 낯선 남한의 의료 체계는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그를 부유하게 만든다. 북한이 인권의 사각지대로서 병원에서조차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이라면 남한 역시 생명보다 돈이 먼저인 세상이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 박훈으로서는 어느 곳이든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건 <닥터 이방인>이 북한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 드라마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저 일방적으로 동정적이거나 적대적인 것이 아니다. 물론 북한을 ‘테러 집단’처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하다. 결국 박훈의 연인인 재희가 남파된 것은 총리의 사주에 의해 대통령을 혼수상태에 빠뜨리기 위한 음모 때문이다. 대통령의 심장 수술을 박훈이 하게 만들어 그를 조종해 대통령을 혼수상태에 빠뜨리고 대신 총리가 실제 권력을 휘두르려는 것. 즉 북한을 테러 집단처럼 다루고는 있지만 거기에는 권력에 눈먼 남한 권력층의 문제도 동시에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방적이지 않다. 박훈이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든 것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오로지 생명으로서 인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남북한 양자가 모두 비판의 대상이 된다.

‘북한인=살인 기계’ 21세기 반공 콘텐츠

이런 시각은 이미 2012년에 방영됐던 MBC <더킹 투하츠>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이 드라마는 북한 특수부대의 여자 장교 김항아(하지원)와 남한의 왕자 이재하(이승기)가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결국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물론 이 드라마는 남남북녀를 내세운 로열패밀리의 멜로드라마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남북 관계가 이러한 멜로 관계 같았으면 하는 바람을 깔고 있다. 마치 결혼이 통일과 같은 뉘앙스로 다가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남과 북으로 갈라지면서 서로에게 갖게 된 뿌리 깊은 금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측이 그토록 ‘빨갱이’라고 세뇌시켰던 북한 사람과, 북측이 그토록 미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배척했던 자본주의 문화가 그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더킹 투하츠>는 남북한 양자의 문제를 동시에 들춰내고 북한을 동등한 파트너로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줬다.

이러한 남북 관계의 변화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햇볕정책을 반영하며 쏟아져나온 탈(脫)반공 영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영화는 남북 간의 대치 관계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러한 경향은 비교적 최근작인 <의형제>에서도 엿보인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는 화해 무드를 보여주기보다는 북한의 남파 공작원 이야기를 비극적으로 풀어내는 작품이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용의자> 같은 작품이 그렇다. 이런 영화에 등장하는 남파 공작원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살인 기계처럼 그려진다. 그런 그들이 남한에 내려와 생활하면서 남측 사람에게 차츰 동화돼간다는 것. 이 과정에서 이들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누군가의 음모와 맞서 싸우게 된다. 결국은 북한의 혹독한 체제 속에서도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이들 영화는 궁극적으로 휴머니즘의 승리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들 최근의 대중문화가 그리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여전히 막연하며, 온전한 북한이라기보다는 남한의 판타지가 투영된 산물이라는 한계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파 공작원으로 주로 그려지는 북한에 대한 이미지에는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이 있다. <쉬리> 같은 작품부터 일관되게 그려져온 북한 사람에 대한 ‘살인 기계’ 이미지는 한때 반공 콘텐츠들이 만들어놓았던 ‘빨갱이’ 이미지의 21세기적 재현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킹 투하츠>에서 북한군 장교의 이미지는 막연하게 호전적이고 더 잘 싸울 수 있을 것처럼 준비된 모습이다. ‘헝그리’한 느낌까지 더해지면 야전에서 이들을 이겨낼 수 있는 남한 병사가 별로 없어 보일 정도다. <닥터 이방인>의 천재 외과의 박훈은 이 막연한 북한에 대한 이미지의 또 다른 해석처럼 보인다. 북한에서 수련했다는 박훈은 마치 특수 훈련을 받은 남파 공작원처럼 무언가 남한의 의사와는 다른 능력과 경험치를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 SBS 제공
북한 사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여기에는 두 가지 심리가 어른거린다. 그 하나는 북한 사람이 남한 사람과는 막연히 다를 거라는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고, 그 두려움의 능력을 통해 남한의 문제를 통쾌하게 해결해내고 싶은 이율배반적인 욕망이다. 북한에서 온 이런 막연한 두려움의 존재는 그래서 남한의 문제를 헤집고 들어온다. 남한의 문제란 다름 아닌 자본의 문제다. <닥터 이방인>이 박훈이라는 이방인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건 남한 권력층이 가진 비리와 자본주의에 점철돼 생명마저 돈과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한 우리들의 문제다.

자본과 권력의 문제는 최근에는 남북 간 체제의 문제를 압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쓰리데이즈>나 <닥터 이방인>에서도 북한은 이득만 된다면 테러를 자행하는 집단으로 묘사된다. 흥미로운 건 이것이 체제나 이념의 문제라기보다는 국가의 이익(주로 자본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이다. <쓰리데이즈>에서는 심지어 돈을 받고 남측과 공조해 테러를 벌이는 ‘북한’이 등장한다. <닥터 이방인>은 남측의 총리와 북한이 공조해 대통령을 죽이려는 음모를 그린다. 즉, 자본과 권력의 문제가 남북 관계에서 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오히려 더 솔직한 것인지도 모른다. 대중은 이제 막연히 남북 관계의 문제를 단순한 이념이나 체제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 권력의 문제이고 또 자본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가 단순화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남한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판타지가 투영된 시각이다. 그 시각은 이제 과거 ‘빨갱이’로 표상되는 단순함에서는 분명히 벗어나고 있다. 또한 체제로 나뉘어져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을 타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라 결국은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거기에는 여전히 낯선 이방인이 어른거린다. 막연히 살인 기계이면서 막연히 동정적인.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