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웅진 신부에게 면죄부 줘선 안 됩니다”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4.06.1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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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예수회, 교황의 음성 꽃동네 방문 저지 위해 바티칸에서 시위

교황이 온다. 1989년 요한 바오르 2세가 방한한 이후 25년 만이다. 8월14일부터 4박 5일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과 대전, 충북 음성과 충남 서산 등을 방문한다. 그런데 유독 한 곳의 방문을 두고 교계와 장애인계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로 충북 음성의 꽃동네다.

6월3일 천주교 산하 작은예수회 소속 신부 등 여섯 명이 바티칸으로 출국했다.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교황청에 직접 전하기 위해서다. 작은예수회는 전국 20만 회원들과 함께 국내외 80여 곳의 장애인 생활 공동체를 운영 중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단체다. 이들이 40여 년의 전통을 지닌 사회복지시설, 대한민국 ‘민간 복지’의 대표 격인 꽃동네에 교황이 방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6월4일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기도회에서 작은예수회 박성구신부(작은 사진 왼쪽)가 시위를 하고 있다. ⓒ 작은예수회 제공
첫 번째는 복지 예산 문제다. 국고보조금의 상당액이 꽃동네에 지원되면서 복지시설의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꽃동네는 음성 이외에도 경기도 가평과 강화, 충북 옥천 등 곳곳에서 요양시설을 운영 중이다. 작은예수회가 ‘요셉의 집’이라는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가평군의 경우에도 복지 예산 중 60~80%가 가평 꽃동네에 편중 지원되고 있다고 작은예수회는 주장한다. 이에 대해 꽃동네 측은 장애인복지법 등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라 정당한 예산을 지원받는다 밝히고 있다.

꽃동네를 둘러싼 지속적인 횡령 의혹도 교황 방문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충북 음성 꽃동네 오웅진 신부는 땅 투기 의혹으로 1998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03년에는 국고보조금 등의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7월 음성 지역 주민들이 오웅진 신부가 수백만 평의 땅을 자신과 꽃동네 관계자 명의로 구입한 후 오 신부가 대주주로 있는 꽃동네 유한회사에 넘기는 등 횡령 의혹이 있다며 청주지검 충주지청에 고발장을 냈다. 매입한 땅은 18만평에 달했고, 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해 사업 목적과 다른 의도를 가지고 유한회사를 설립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서울대교구 측이 바티칸 방문 막으려 했다”

4월15일 꽃동네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작은예수회는 ‘한국판 마피아 꽃동네 방문은 안 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400만평이 넘는 땅과 유한회사 주식을 소유해 배임·횡령 혐의를 받는 오웅진 신부가 지배하는 꽃동네를 방문하는 것은 오 신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음성 꽃동네는 보도자료를 통해 “횡령 의혹은 광업권을 소유한 업체 관계자가 꽃동네를 중상모략하기 위해 제기한 것으로 2007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며 “지난해 7월에도 이 관계자가 다시 횡령 등의 혐의로 고발했으나 검찰이 무혐의 불기소 처분했다”고 밝혔다. 작은예수회는 이 기자회견 이후 작은예수회 회장인 박성구 신부에게 압박이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명동성당 모임에서 천주교계 인사로부터 “로마 교황청에 가면 이쪽도 그쪽도 다 좋지 않은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또 작은예수회 측은 “서울교구 측에서 바티칸행을 막으려고 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바티칸 출국을 앞둔 5월28일, 작은예수회는 서울교구로부터 공문을 받았다. 전날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대화를 다시 할 기회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대화를 거부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사제 직분의 ‘직무정지’를 내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서울교구 측에서 제시한 시기는 6월3일 오후 2시. 바티칸으로 떠나는 비행기 출발 시각은 6월3일 오후 1시10분이었다. 박성구 신부는 “직무정지를 당하더라도 바티칸에 가는 것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 국민과 한 약속이니 가야 한다”고 했고, 이 과정에서 작은예수회에서 내분이 일었다. “직무정지를 당하면 우리는 끝”이라며 박성구 신부의 출국을 막은 것이다. 작은예수회는 “주교님과 대화 시기를 6월10일 이후로 미뤄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출국날인 3일 오전 서울교구 비서실을 통해 전달했다. 서울교구 측은 “(작은예수회 측으로부터) 공문은 받았고 주교님께 전달한 상태”라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16일 방문하기로 예정된 충북 음성군 꽃동네. ⓒ 시사저널 박은숙
교황 꽃동네 방문, 누구 작품인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이 나타날 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겠다는 작은예수회의 애초 계획은 깨졌다. ‘교황의 한국 방문은 환영하지만 꽃동네를 방문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바티칸 경찰에 압수당했기 때문이다. 규정에 어긋나는 크기가 문제였다. 결국 플래카드 없이 A4용지 크기의 피켓을 들고 바티칸 광장에 섰다. 당시 모습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까운 곳에서 직접 봤다고 작은예수회 측은 전했다. 또한 김경석 주바티칸 대사에게도 꽃동네 관련 국내 언론 보도자료를 전달하면서 “교황청에 꼭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박성구 신부는 “유엔이 제정한 장애인권리협약에도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돼 있다”며 “교황이 꽃동네에 방문하는 것은 한국 천주교회가 18세기 수준의 장애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전 세계에 드러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교황의 꽃동네 방문 일정은 어떻게 잡힌 것일까. 일각에서는 전두환 정권 이후 정·관계 인사들이 꾸준히 꽃동네를 방문한 사례를 통해 꽃동네가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 가장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최고 성직자’라는 말도 나온다. 이번 교황 방한에 정진석 추기경과 염수정 추기경의 힘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꽃동네를 관할하는 청주교구장을 맡아 꽃동네를 설립하는 데 여러모로 도움을 준 정진석 추기경은 모친의 시신을 꽃동네에 안장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2014년 1월 서임 당시 이시종 충북도지사의 축하 메시지에 대해 “교황 방한이 성사된다면 꽃동네를 방문하실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할 예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오웅진 신부는 2013년 8월 로마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했다. 당시 꽃동네 측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으로 있을 때 꽃동네를 알게 됐으며, 약속했던 것을 지키기 위해 교황이 오 신부 일행에게 알현 기회를 특별히 허락하면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교황 방한을 두 달 앞둔 현재, 성 베드로 광장에서 ‘꽃동네 방문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본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떤 행보를 취하게 될까.

 

장애인계도 “꽃동네 방문 안 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꽃동네의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와 격리돼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며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했다. 음성 꽃동네에서 6년간 생활하다 2004년 시설을 나온 배덕민씨(48세, 뇌병변장애 1급)는 “꽃동네에 방문객이 오면 문을 열어서 보여주기도 하고, 반말을 하는 등 인권 침해가 빈번하다”며 “꽃동네 시설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보호자가 필요한데 연고가 없는 사람의 경우 나갈 수가 없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사회복지법인 ‘무지개 공동회’ 대표인 천노엘 신부는 “한국의 복지시설 실태는 심각하다. 소외되고 장애가 있는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분리돼 생활하는 꽃동네가 알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이 사회에서 정상적 생활을 하는 것이 장려되어야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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