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잊혀지는가
  • 윤길주 | 편집국장 ()
  • 승인 2014.06.1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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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잊혀지는 건가. 아이는 아직도 차디찬 바닷속에 있는데 팽목항의 잠자리가 익숙해져 가끔씩 깊은 잠에 빠지는 내 육신이 너무 밉다. 배고파 먹는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게 한스럽다. 아이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저 바다 밑에 있는데….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위로의 말이 이렇게 거추장스러울 수가 있을까.”

 진도실내체육관에서 50일 넘게 담요를 접지 못하고 있는 세월호 유족의 말입니다. 그의 눈물샘은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말라버렸고, 가슴엔 한 줌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방파제를 깨부술 듯 몰아치는 파도가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0일이 넘었습니다. 6월6일 현재 290명이 사망하고 14명은 실종 상태입니다. 분노·슬픔에 빠져 있던 사람들은 점차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TV에서 세월호 뉴스는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매일 신문 1면에 실리던 세월호 구조·사망·실종자 숫자는 어느 날부터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대신 유병언이 밀항했느니, ‘김 엄마’가 그를 보호하고 있느니 하는 기사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계속 허탕만 치면서도 영화라도 찍듯이 탈주자 유병언 얘기를 쏟아냅니다. 290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가 ‘검찰 대 유병언’의 흥미진진한 숨바꼭질이 돼버렸습니다.

 세월호 국정조사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증인 신청을 두고 여야가 옥신각신하더니 하는 짓이 완전 따로국밥입니다. 6월2일 야당 의원들만 팽목항을 방문했고, 3일 세월호 희생자 49재 추모행사도 여당은 인천, 야당은 안산에서 했습니다. 진상 규명을 하자는 건지, 국민 눈이 따가워 어물쩍 쇼를 하자는 건지. 국정조사 난맥은 여당 책임이 큽니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는 성역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저것 토를 달며 국정조사를 맥 빠지게 하는 게 국가개조를 하겠다는 사람들의 태도인지 묻고 싶습니다. 애초부터 면피용으로 국정조사 시늉만 한 것은 아닌지 의심됩니다.

 선거도 끝났습니다. 더불어 세월호 이슈도 묻힐 것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그랬고,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도 그랬습니다. 반짝 호들갑을 떨다 몇 사람 목 날리고 그걸로 끝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가안전처 신설 등 재난 체계를 새로이 구축하겠다지만 사람은 그대로인 채 조직을 바꾼들 소용이 없습니다. 세월호 선장, 사고 당시 투입됐던 해경과 지휘부, 그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말짱 도로묵입니다. 정부가 규제 개혁을 외쳐도 일선 6급 주사가 깽판을 부리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정부·여당은 ‘혁신’ ‘개조’ 같은 식상하고 거창한 구호를 외칠 게 아니라 파편처럼 흩어진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하나하나 꿰맞춰 국민에게 낱낱이 공개하십시오. 2014년의 부끄러운 기록을 그대로 남겨 다시는 그런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잊혀지고 있습니다. 유족과 진도 체육관 차디찬 바닥에서 몸을 웅크리고 아들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은 “잊혀지는 게 가장 두렵다”고 호소합니다. 국회는 세월호 참사를 정쟁의 제단에서 내려놓고, 백 번 천 번이라도 팽목항으로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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